“복귀해서 또 탄압 받으면 어쩌나”

정신질환 산재요양 청구성심병원 노조원들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퇴진 요구

지난해 8월 정신질환 산재를 인정받아 7개월간의 요양을 가졌던 보건의료노조 청구성심병원지부 조합원 임아무개씨(39)는 15일 현업 복귀를 앞두고 1월부터 적응기간을 거쳐 왔다. 하지만 병동 수간호사였던 임씨가 거친 적응 프로그램은 병동 수간호사 업무가 아닌 단순히 병원을 출입하면서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일이었다.

지난 12일 보건의료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청구성심병원 앞에서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구속과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뒤 우울이나 불안 반응 등을 보이며 이전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적응장애를 앓았던 임씨. 노조 일을 하면서 감금, 강제사직, 왕따를 당했다는 그에게 계속되는 가슴 통증, 수간호사 회의 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현상 등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서야 알았다. 따라서 임씨에게는 복귀 후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본연의 업무보다도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 자신이 싫어하는 이들을 맞닥뜨렸을 때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동료들이 인사도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곧 업무를 하게 되는데 당연히 불안하지요. 남아 있는 조합원들도 탄압받고 있는데 저희들이야 오죽하겠어요.”

업무 복귀 후 거의 혼자서 일을 하게 되는 ‘중앙공급실’ 수간호사직을 배정받은 임씨는 그래도 상황이 낳은 편이다.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고 요양 기간을 거쳤다는 권아무개 씨(36세)는 다시 예전의 근무처로 복귀해야 한다. 권씨는 지난 2001년 총무과장에게 뺨을 맞은 일부터 시작해 병원 부원장을 비롯한 5~6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등 수차례 폭행을 당한 끝에 8일을 입원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유일하게 남성 조합원인 그에게 폭언, 폭행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고 혼자서는 퇴근도 하지 못하는 일까지 생겼다. 결국 심리불안과 불면증, 우울증, 십이지장 궤양 등에 시달리다가 산재로 인정받았다.

“적응 기간에 동료들이 말 한번 걸지 않더군요. 마주치기만 해도 부담됩니다. 복귀하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별로 걱정되지 않아요. 하지만 예전과 비슷한 상황은 금방 연출될 겁니다.” 권씨는 “용서할 수 없다”며 고통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적응장애 판정을 받아 요양을 했던 이아무개씨(29)는 “괴롭혔던 수간호사와 함께 일하지 않아 왕따는 당하지 않겠지만, 새로 업무 배치를 받은 부서 과장이 노조탄압이 극심했던 사람이라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업무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 인정을 받았던 청구성심병원지부 조합원 4명이 요양을 끝내고 15일 업무에 복귀한다. 당시 산재 인정을 받은 조합원들을 8명이었고 때마침 분만휴가를 시작한 한 명을 제외하고 7명이 요양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요양기간이 끝나지 않은 2명과 육아휴직 중인 1명을 제외한 4명이 7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하는 것이다.

이들의 복귀를 앞두고 보건의료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병원 이사장의 구속과 부당노동행위 책임자인 병원장, 행정부장 등의 징계 및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 5일부터 매주 금요일 병원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노조탄압이나 부당노동행위와의 연관성 없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하지만 공단은 업무상 차별로 인한 질환 발생은 인정했고, 이사장을 비롯한 일부 병원 관계자들은 13건의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인정돼 부당노동행위로 정신질환이 발생했다는 노조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따라서 노조와 시민단체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조합원들의 정신질환을 유발한 만큼 그 책임자들의 퇴진 없이는 복귀해도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사무처장은 “그동안 병원하고 떨어져 있으면서 치료가 이뤄졌는데 병원환경 같은 것은 변한 게 없다”며 “노조탄압이 심할 때 행정부장이었던 사람이 병원장이 되는 등 전혀 바뀌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재발방지 대책 등을 위해 노조는 병원 쪽에 면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병원 쪽은 원장실과 총무과 출입문을 잠그는 등 면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산재 당사자들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닌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것”이라며 “이사장 구속을 주장하는 등 우리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데 면담이 제대로 되겠냐”고 주장했다.

한편 요양기간이 끝나지 않은 전 노조 간부 이아무개씨는 ‘주요 우울증’으로 인해 현재까지 심각한 기억력 감퇴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환경과 분리될 경우 증상이 호전되는 ‘적응장애’와는 달리 주요 우울증은 상당한 치료기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환 장애증’(심리적 원인으로 신경계에 이상 증상 유발)을 앓고 있는 나머지 한 명의 조합원은 ‘병원 복귀’라는 말만 들어도 실신하는 증상을 보여 요양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김학태 기자(tae@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 2004.03.15 10: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