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가인권위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결과
공공기관 비정규직 증가 “정부지침 결정적 영향”
하위직·여성 비정규직화 우선 순위
이번에 발표 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자기관 등 정부 및 지자체 주요 기관에 분포된 비정규직의 규모를 세밀히 분석해서 개별 기관별로 비정규직 비율을 산출해 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더 큰 의미는 비정규직노동자 뿐 아니라 공공부문 구조조정 주무부처 등을 포함하여 총 40개 기관에 대하여 인사관리 담당자, 노동조합 간부, 정규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심층면접조사를 실시해서 각 기관별로 비정규직의 노동실태 뿐 아니라 증가원인을 분석해 낸 것도 흥미롭다.
비정규직 분포, 단순노무에서 기관 핵심 업무까지
전체의 28.4%를 차지하고 있는 38개 기관 비정규직을 고용형태별로 보면 계약직이 1만6,605명(8.4%), 일용직이 1만0,871명(5.4%), 시간제 5,045명(2.5%), 파견 1,444명(0.7%), 용역 1만3,936명(6.9%), 특수고용 9,514명(4.7%) 등 다양한 형태로 분포하고 있었다. 담당하는 업무도 청소, 식당 등 간접부서의 단순 업무에서부터 직업상담, 우편배달, 연구원, 정비업무 등 기관의 핵심 업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곳은 기관유형별로는 교육(54.1%), 문화예술(41.4%), 전기가스수도통신(38.2%), 보건의료복지(26.5%) 분야이며, 기관형태로는 위탁기관(83.8%), 학교(54.1%), 출자기관(42.3%), 출연기관(26.4%)의 비정규직 비율이 평균치(26.3%)보다 높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 조차 간접고용 인원이 구체적으로 표시된 기관을 제외하고는 청소, 식당, 경비 등 시설관리 분야의 용역 및 민간위탁 업체 소속 인원이 제외된 수치다. 또한 공공기관에 공익근무 요원이 투입되는 경우가 상당수로, 이 경우에도 실제 정규직의 상시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병원과 우정사업본부 등을 제외하면 이 인원은 대부분 누락됐다. 또 기관의 일선 부서단위에서 임시적으로 채용하는 일용직, 시간제 고용도 정확히 보고 되지 않았다. 실례로 KBS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1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여기에는 계약직과 파견직만 포함되었고 방송작가, FD, AD 등 제작부문의 비정규직 대부분이 집계에서 누락됐다. KBS 역시 조사대상 기관의 전체적인 비정규직 비율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정책기획국장은 “결국 정규직 업무가 비정규직 또는 간접고용으로 형태를 달리하면서 공공부문의 심각한 비정규직 남용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는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회가 18일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개최됐다.
기획예산처·행자부 지침. 비정규직 증가 요인 꼽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중앙정부 업무를 분산하고 공공업무 기능을 민영화 하는 구조 개편 과정에서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비정규직화는 IMF 구제금융 이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강도 높게 추진되면서 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 등 부처를 중심으로 인력감축과 함께 주변업무에 대한 민간위탁, 매각 등의 외부화를 추진하도록 지시하거나 공공업무 용역에서 요구되는 신규인력을 거의 대부분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충원해온 것도 비정규직 증가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동부는 새로 도입된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예다. 노동부 비정규직은 예전에는 일용직과 기타직 보수요원으로 운영됐는데 1996년부터 민간 계약직으로 직업상담원을 42명 채용한 후 IMF 직후 1998년에 1,296명으로 상담원 채용을 대폭 증가시키면서 그 비중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현재는 2,424명으로 노동부 전체 비중의 47.3%다.
국세청의 비정규직은 구조조정에 의해 기능직 공무원을 정리해고 한 이후 그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한 경우에 해당한다. 95년 국세청은 2년의 유예기간을 둔 후 세무서의 통폐합하고 감원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단행, 기능직 공무원 신분이었던 교환원은 214명을 조기퇴직, 직권면직 조치했다. 국세청은 99년 이들을 다시 계약직으로 재고용 했는데 재고용 된 167명은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닌 월급 90만원을 받고 다른 어떤 복리후생이나 연금도 없는 계약직 노동자가 됐다.
서울대병원은 98년 교육부의 경영혁신지침에 의해 인력감축, 외주용역도입 확대, 조직개편, 인건비 억제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됐고 교육부의 정원관리 때문에 필요한 인력을 임시계약직 등으로 채용함으로써 비정규직을 증가시켜 왔다. 서울대병원은 정규직 4,329명이고 비정규직은 간접고용인 용역을 포함하여 1,458명으로 전체의 25.2%가 비정규직이다. 고용형태별로 보면 간접고용인 용역이 797명, 파견이 91명이며 직접고용 중에서는 단시간이 440명으로 가장 많고 계약직 130명이다. 특히 분당병원은 단시간 비중이 적은 대신 파견과 용역 등 간접고용이 정규직의 절반을 넘고 전체 인원 중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이른다. 노조의 반대가 적은 분당병원은 출발부터 신인사제도 모델을 근간으로 파견, 용역 등 아웃소싱을 광범위하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관리규정 미흡, 노동조건 더 악화
이번 인권위 보고서에서는 “1998년 이후 공공부문의 문제점으로 관리층을 중심으로 상위직 조직이 비대화됐다는 것이 지적됐는데, 실제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및 산하기관의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인력감축 및 민간위탁의 주된 대상은 하급직의 기능직 공무원이나 여성 노동자, 상용직 노무원 등 ‘약자들이 집중적인 감원의 희생양이 되어 주로 비정규직이 됐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뿐 아니라 행정자치부도 대부분이 여성인 상용직 사무보조원을 100% 감원했고 이후 일용직으로 전환해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연구원도 명예퇴직 대상자를 여직원과 고령자에 집중했으며 이후 여직원 업무는 파견으로 대체한 상태다. 노동부 비정규직 역시 직업상담원의 73.6%가 여성이며 일용직 사무보조의 99%가 여성이다. 즉,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 지침으로 대부분의 기관에서 공통적으로 인력감축, 민간위탁을 추진했지만 정원과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채 부족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늘려나갔는데 그 구조조정의 폭풍은 하위직, 여성들을 집중해서 강타한 셈이다.
또한 이렇게 늘어난 비정규직을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체계가 부실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정규직 관리담당 부서가 하부 단위에 위임되면서 실체적 규모나 근로실태 내용이 잘 파악되지도 않는다. 정규직과의 차별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일 기관에서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계약직, 상용직, 일용직, 민간위탁 용역 노동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어, 동일노동 차별대우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고 정규직 없이 비정규직만 수행하는 경우도 있으며 업무보조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계약직은 보통 1년 단위, 일용직은 3개월 단위로 계약이 체결되는데 수차례 계약을 반복 갱신되고 있었다.
근속이 3~4년 되는 비정규직 계약직의 경우 상여금을 포함해도 월 100만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철도청은 매표담당 계약직의 경우 기본급은 60만원이며, 시간외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및 기타수당을 모두 합하여 월급여는 138~152만원 수준. 미화원의 경우는 총 급여가 월 63만원이고, 선로유지보수 노동자의 경우 일당 4만4,000원 적용받고 있으며, 그나마 용역업체 소속은 월 80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경란 기자(eggs95@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 2004.03.19 11:2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