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동부 산하기관 비정규직 무더기 계약해지 ‘물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현주소
정부 비정규직 대책 “정원, 예산 포괄적 접근 필요” 지적

지난해 말 발표될 예정이었던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던 비정규직이 무더기로 계약해지된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는 등 사회적으로 실업과 일자리의 질(비정규직으로의 취업) 문제가 심각성을 더해가는 상황에서 정부 산하기관이 비정규직을 길거리로 내몰아 빈축을 사고 있다.

산업안전공단 비정규직 50% 계약해지

한국산업안전공단(이사장 김용달)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비정규직 300여명 가운데 50%인 150여명을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실상 계약해지했다. 공단은 그 동안 직접 운영하던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사업을 지난해 하반기 민간 위탁하기로 결정했으며 ‘건강도우미’ 사업은 지난 96년부터 시행 중인 ‘소규모사업장 보건관리기술지원 국고대행(민간운영)’ 업무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통합했다.

이에 따라 이들 사업에 투입됐던 비정규노동자 150여명은 올해부터 더 이상 공단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 특히 이들의 90%는 여성이다.

지난해 하반기는 직업상담원노조 파업,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본부장 분신 및 파업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화 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한층 뜨거웠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노동부 산하기관이 비정규직을 대거 ‘정리’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예산과 인력이 묶여 있는 공단이 조만간 나올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부담을 느껴 미리 비정규직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연말께 정부 산하기관에서는 상시근무 등 정규직과 거의 같은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고 나머지 비정규직은 정규직과의 차별을 개선하라는 것을 뼈대로 한 정부 비정규직 대책이 나오지 않겠냐는 추측이 돌았다.

실제 뇌심혈관계질환 예방 업무를 담당했던 비정규노동자 A씨는 “당시 이 말 저 말이 나돌았다”며 “정부 대책이 나오면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사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규직과 거의 같은 업무인 만큼,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A씨는 또 “근로복지공단에서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든 뒤에 한 노동자가 분신하고 파업까지 벌여 산업안전공단도 불안해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산업안전공단은 발끈하고 나섰다. 공단은 “뇌심혈관계 질환 사업 같은 경우, 산업재해는 계속 증가하는데 공단 자체로는 인력이 적기 때문에 활성화시키기 위해 민간으로 위탁한 것”이라며 “인위적인 계약해지가 아니라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단은 또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부담스러워 공단이 비정규직을 정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공단 결정, 납득할 수 없어”

하지만 이번 민간위탁, 사업통합 결정에 해당 비정규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건강연대 최은희 정책국장은 “건강도우미와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은 공단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며 “주체를 바꾸고 사업을 종료하는데 충분한 평가가 이뤄졌는지 의심스럽고, 이 문제가 공론화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동국대 산업의학과 김지용 교수도 “민간위탁은 책임을 공공에서 민간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라며 “반드시 충분한 검증과 공론화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직접 일을 했던 비정규노동자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업무를 담당했던 비정규노동자 B씨는 “사업장에 직접 찾아가서 교육도 하고 건강진단도 받게 하는 이 사업은 수익보다 공익성이 우선시되는 일”이라며 “민간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B씨는 특히 “사업주가 예방 사업 자체를 귀찮아하는데도 정부기관에서 하는 것이어서 응해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사업은 공단이 지난 2001년 시작한 것으로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뇌졸증, 심장마비, 고혈압 등의 예방을 위해 교육, 건강진단, 건강관리까지 도와주는 일이다. 간호사, 영양사, 운동처방사로 구성된 40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은 3개 지역본부, 17개 지도원에서 일을 했으며 근속년수는 1년에서 3년 사이다. 비정규노동자 B씨는 “4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 사업만을 위해 채용됐다”며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직과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했고, 상시근무를 하며 다른 팀 정규직 업무를 지원하는 등 거의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공단이 특정 사업을 위해 1년 단위 계약직노동자를 대거 채용한 것은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사업이 처음이었던 만큼, 상당한 의지를 갖고 출발한 것은 분명하다.

‘건강도우미’ 또한 공단이 주요하게 진행하고 있는 ‘Clean 3D(클린 3D)’ 사업 가운데 하나다. 이 사업은 소규모 사업장의 작업환경을 개선해 재해를 예방하고 동시에 구인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지난 2001년 10월부터 추진됐다. 건강도우미는 간호사 출신 주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진단 등 업무를 맡아 왔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약 100여명에 이르며 공단과 6개월에서 1년 정도 단기 계약을 맺었다. 특히 지난 2002년 말 공단이 작성한 ‘Clean 3D’ 사업 성과평가 보고서에서 건강도우미 운영 대상 기업 1,624개소 가운데 1,261개소(74.9%)가 “건강도우미 사업이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것 등을 근거로 공단은 자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해지 한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과 해당 비정규노동자들의 의문에 대해 산업안전공단은 “뇌심혈관계질환 민간위탁과 건강도우미 사업통합을 위해 충분히 검토했다”면서 “그러나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정부 승인해 문제 없다”

민간위탁과 사업폐지 결정이 지난해 하반기 갑작스럽게 결정됐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당 비정규노동자 150여명은 계약만료 기간인 지난해 12월31일까지 공단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2년 동안 일했는데 12월 31일까지 구두로든, 문서로든 공식적인 통보는 전혀 없었다.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낀다. 10월 말부터인가 민간위탁 얘기가 돌았지만 상급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답변했다. ‘설마설마’ 했다.”(뇌심혈관계 질환 예방사업 A씨)

“2001년 3개월, 2002년 8개월, 2003년 10개월 등 3년 동안 건강도우미 일을 했다. 지난해 업무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초 쯤에 공단으로부터 올해(2004년)도 볼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12월 말이 돼서야 공단과 다시는 계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황당했다. 지금은 그냥 놀고 있다.”(건강도우미 C씨)

이렇듯 갑작스러운 민간위탁 결정에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사업팀 비정규노동자 일부는 산업안전공단 본부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또 통상 공공기관에서 사업이 민간으로 위탁될 때 외부기관에 용역 등을 통해 철저한 점검이 이뤄지는 것이 관례인데 공단은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공단은 “민간위탁, 사업통합 결정은 용역을 주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내부에서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며 “충분히 검토했고 정부의 승인도 있었던 만큼, 문제될 것은 없다”고 답변했다.

‘비정규직’ 정부 산하기관의 공통된 고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얘기만 나오면 산하기관 및 공기업들은 갑갑한 심정이라고 토로한다. 산업안전공단은 비정규직 계약해지가 조만간 나올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 영향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예산과 정원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나올 경우,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고스란히 산하기관의 몫이기 때문에 별개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한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은 예산과 정원으로 먹고 사는 곳”이라며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예산과 정원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정원이 묶여 있는 한 인력이 필요해도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장애인공단에도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강사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한 관계자도 비슷한 문제의식이다. “근속기간이 길고 상시근무에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를 시켜야 하고, 나머지 비정규직들은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대책의 골격 아니겠느냐. 예산과 편성인력은 정해져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고스란히 공단의 몫이다. 정부 대책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관평가다 뭐다 또… 한 마디로 복잡해진다. 정규직을 조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임원을 정리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예산과 정원 등 본질적인 부분까지 다각적인 내용을 담아내지 않을 경우,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정책기획국장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급속하게 증가하게 된 원인은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한다는 목적 아래 지난 98년 이후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가 추진했던 구조조정 및 경영혁신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박 국장은 “그동안 진행됐던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시정되지 않는 한, 정부 대책이 편법을 조장해 오히려 현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 높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기존 정규직을 유지하면서 비정규직의 수를 줄이고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하며,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예산, 정원 문제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소연 기자 dandy @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20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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