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노동자 최초로 근골격계 질환 집단산재 인정
경북대 병원노동자, 다른 병원-산업으로 확산될 듯

2004-05-11 오전 9:56:55

경북대 병원 노동자 31명이 병원 노동자 중 최초로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한 산재 요양을 승인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 산재 요양 승인 결정은 그동안 병원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거부해왔던 근로복지공단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어서, 앞으로 병원 사업장 내 유사한 산재 요양 신청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경북대 병원 노동자 31명, 산재 요양 승인 받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윤영규)는 지난 8일 경북대 병원 노동자 31명이 병원 노동자 중 최초로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한 산재 요양을 승인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특히 이번에 산재 승인을 받은 31명의 노동자들은 수술실, 공급실 등 병원 내 7개 부서에 소속된 이들로서, 척추 디스크와 그 외 근골격계 질환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져 그동안 산재 승인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왔던 병원 내 유사한 산재 요양 신청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보건의료노조 정상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11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병원 노동자의 집단 산재 인정은 그간 장시간 노동, 파행 근무, 부적절한 자세 문제 등 열악한 노동 조건에 노출돼 산재가 불가피했던 병원 노동자들의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다른 병원 사업장은 물론 그 동안 주로 금속 산업에 국한해 근골격계 질환을 인정해왔던 산재 범위를 다른 산업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경북대 병원-근로복지공단 구태의연한 대응에 상황 악화 자초

한편 경북대 병원이나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들의 산재 보상 요구에 대해서 거부와 ‘떠넘기기’로 일관해 오다, 산재 환자들이 집회, 농성 등의 행동을 한 뒤에야 비로소 산재를 인정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북대 병원은 산재 신청에 대해서 “산재 신청하는 사람에게 병가를 인정할 수 없고, 승인 없이 병가에 들어가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등 고통을 호소하는 산재 환자들을 ‘꾀병’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경북대 병원측이 지난 3월 의사를 제외한 1천2백여명 직원의 근골격계 질환 증상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질환 증상자 8백21명에게 임시 건강 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과도 모순되는 태도이다. 한 편으로는 병원 내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산재 환자들을 인정하는 것은 거부해 왔던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한 술 더 떴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청 접수 후 7일 이내에 승인여부를 결정한다’는 기일을 초과한 채 산재 승인을 미뤄오면서, 선례가 없었던 ‘근골격계 특별 조사팀’을 만들어 환자들이 제출한 각종 진단서와 인간 공학적 평가 등 기본 자료를 부정하고 처음부터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근로복지공단의 무책임한 태도는 결국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과 산재 환자들의 집회, 농성 등 저항에 직면한 후에야 결국 산재 승인을 하는 쪽으로 태도가 변했다. 구태의연한 대응을 하다 상황 악화를 자초한 셈이다.

이런 정황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10명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 산재 요양 신청시에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근로복지공단 내 지침대로 이행했을 뿐”이라며 “이 과정에서 시일이 경과되는 것을 참지 못한 보건의료노조나 산재 환자들의 밀어붙이는 태도는 유감스러웠다”고 반박했다. 그는 “앞으로는 현재 지침 수준으로 규정돼 있는 절차 등을 법제도적으로 보완해 이런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근본 대책 마련 필요해

한편 이번 일을 계기로 병원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근로복지공단과 산재 승인 절차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보건의료노조는 11일 성명을 통해 “병원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역학조사와 임시 건강진단을 통해 그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한 후, 작업 환경이나 자세 문제 또 휴식 시간이 보장되지 못하는 장시간 노동 등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11일 논평을 통해 “이번 산재 요양 인정은 대부분 노동부의 ‘근골격계 질환 인정 기준’이 되는 작업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발생했다”면서 “비합리적인 노동부의 해당 고시는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또 “산재 승인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이 보여준 태도는 공단과 산재 승인 과정이 개혁돼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면서 “산재 승인 과정은 ‘선보장 후판정’으로 바뀌어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환자는 즉각 치료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