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택시가 교통사고 40% 차지하는 이유
도급-지입제로 살인적 장시간노동, ‘월급제’만이 대안
2004-05-12 오전 9:06:28
‘도로위의 난폭자’,’달리는 흉기’. 일반 시민들이 택시를 흔히 일컫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의미하듯 택시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위치하지만, 동시에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인된’ 교통수단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매우 긴요하지만, 택시 이용객들이 항시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
최고의 교통사고율을 자랑하는 한국택시
언론의 사건-사고란에 자주 등장하는 택시사고. 택시 교통사고는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사태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민주택시연맹이 작성한 에 따르면, 서울 법인택시의 경우 전체 교통사고율의 4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법인택시는 대당 최고 5명이 승차인원임에도 불구하고 버스와 비교해도 사망자와 부상 인원이 가장 많을 뿐만아니라 교통사고 건수도 가장 많다. 전국 법인택시의 31%를 차지하는 서울시 소재 법인 택시의 경우 사고율이 40%에 달해 개인택시보다 무려 18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건수는 9배, 사망인원은 6배다.
민주노총 산하 민주택시연맹은 법인택시의 사고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이유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택시와 트럭 충돌 교통사고. 도급-지입제 등 불법적 임금체계가 택시노동자를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 과속과, 법규 위반, 난폭운전은 여기서 기인한다. ⓒ연합뉴스
“불법적 임금체계가 사고를 부른다”
민주택시연맹이 법인 택시가 높은 사고율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지목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기우석 민주택시연맹 기획국장은 택시업계에 만연한 불법적 임금체계를 지목한다.
기우석 민주택시연맹 기획국장은 “사납금제, 도급제, 1인1차제, 지입제 등 온갖 불법적인 임금체계가 택시 기사를 장시간-저임금 노동으로 몰아 넣고 있다”고 말한다.
택시업계에 적용되는 현행 법률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운송수입료전액관리제법’으로 이 법에 따르면 ‘월급제’를 제외한 사납금제, 도급제, 1인1차제, 지입제 등 기타 임금체계는 사실상 불법이다. 하지만 관계부처의 묵인으로 한편으로는 관행이란 이름으로 월급제를 시행하는 업체는 서울시 소재 2백59개 업체 중 20개 업체에 불과하다. 결국 서울시 택시업체 92%정도가 불법적인 임금체계로 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 기획국장은 이런 현실에 대해 “새로 진입하는 택시노동자의 경우 사납금제나 도급제가 합법적인 임금체계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라고 말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불법 임금체계인 ‘사납금제’는 매일 특정 액수를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 초과 수입을 택시노동자의 몫으로 가져가는 제도이다. 서울시 택시업계 사납금은 일일 8만5천원에서 11만3천원으로 평균 9만4천원 정도가 된다. 다음으로 성행중인 도급제는 크게 일도급과 월도급으로 나뉘는데, 일도급의 경우 1일 사납금으로 5만원을 납부하고, 월도급의 경우 월 2백20만원 정도를 선납한다. 도급 역시 사납금만 내면 개인택시처럼 운영하면서 초과 수입은 온전히 택시노동자의 몫이 된다.
사납금제의 경우 일일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고스란히 택시노동자의 ‘빚’으로 남게 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는 요즘 사납금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택시노동자 일반의 주장이다. 결국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서는 택시노동자는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기 기획국장은 “사납금제보다 도급제나 지입제가 불법성과 위험성이 더욱 높다”고 지적한다.
도급제는 1일 사납금(일도급)이나 월 선불금(월도급)을 납부하면 그 기간만큼 개인택시처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해 택시 노동자는 기본 11시간에서 24시간 연속 운전 등 장시간 노동을 자처한다. 간혹 택시노동자가 졸음 운전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도급택시일 확률이 매우 높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택시의 경우 3일 연속으로 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고, 법인택시의 경우도 지역에 따라 제한을 두고 있다.
또 도급택시가 사고율이 높은 이유는 택시면허가 없는 사람까지 택시를 운전하기 때문이다. 무면허 운전의 경우는 택시회사와 택시 기사간 1대1의 근로계약에서 보다는 ‘지입차주’가 업체와 기사 사이를 중계하는 과정에서 자주 발견된다.
지입차주는 해당 택시 업체에 지입보증금으로 2천5백만원, 월지입료로 1백20만원가량을 납부하고 5대 내지 10대 정도의 차량을 불하받아 운영하는 소사장을 일컫는다. 이들 지입차주는 택시노동자를 채용할 때 택시운전자격증이나 개인 신상에 대한 확인도 없이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채용된 택시운전자의 경우 4대 보험은 물론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입제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납금제, 도급제, 지입제 등은 불법성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당초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택시업의 취지와 달리 택시업은 오로지 ‘돈벌이수단’으로 전락한다.
기 기획국장은 “불법적 임금체계에 들어온 택시노동자에게서 어떻게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는가. 오로지 손님을 ‘돈’으로만 볼 뿐”이라고 반문했다. 택시가 거리의 난폭자로 전락하는 대목이다.
민주택시연맹, “대안은 월급제 도입뿐”
민주택시연맹은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월급제’를 주장한다. 월급제는 택시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택시 서비스의 질도 향상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라는 주장이다.
기 기획국장은 “월급제를 실시한 업체에 소속된 택시노동자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고 말한다. 월급제를 시행하게되면 일일 7시간20분을 기준으로 정액 월급을 받고 그 이외 노동에 따른 수입은 정해진 비율에 따라 성과급조로 택시노동자에게 지급된다. 사납금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택시노동자는 한결 여유가 생기고 그만큼 승객에 대한 서비스를 고민할 수 있다.
따라서 월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업체에는 입사지원자로 넘치고 있다. 사납금제를 실시하고 있는 업체에 운휴차량이 30%가 넘는 상황을 감안하면 크나큰 차이인 셈이다.
한편, 기 기획국장은 “월급제 도입은 비단 노동자에게만 이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월급제를 도입했을 경우, 이직율이 낮기 때문에 안정적인 고용이 가능하고, 지원자가 많기 때문에 운휴차량이 적어 그에 따른 손실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노동조건이 양호하기 때문에 사고도 줄어 사고에 따른 배상비와 수리비, 보험율 등이 크게 줄어 경영상태가 좋아진다는 주장이다.
민주택시연맹에 따르면, 실제 월급제를 도입한 K운수의 경우 월급제 도입으로 노사가 모두 이득을 봤다.
공공의 서비스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택시. 불법적인 경영으로 택시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는 것은 물론,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언제까지 택시업계에 만연한 불법행위를 존속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