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인정해야”
고 정유홍씨 ‘산재 불승인’ 결정에 유족들 단식 농성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용한(news4u) 기자

▲ 단식 농성 중인 고인의 남편

ⓒ2004 김용한

지난달 4월 27일 오전 10시 20분경 대구 지하철 아양교 역사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중국인 이주노동자 고 정유홍(35)씨.

그는 자신보다 먼저 한국 땅을 밟은 남편과 귀엽고 사랑스런 자식인 아들(12세)만 남겨둔 채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지난 8일 기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6일째 단식 농성 중인 고인의 유족들을 만나 그들이 벌이고 있는 불만과 단식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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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복지공단 입구 앞에 놓여진 현수막들

ⓒ2004 김용한

이번 문제는 다음과 같은 고인의 유서 내용을 계기로 확산되었고, 이후 고인의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유족과 근로복지공단간 힘 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제가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회사 사장이 돈주지 않습니다. 노동부에 가서도 해결 못했습니다. 외국인도 사람이다. 왜 일을 했는데 사장은 돈은 안 주는가. 나는 돈이 없어 집에 못 간다. 방법이 없어 죽음을 택했다.”(고 정유홍씨의 유서 중)

정유홍씨는 2000년 5월 한국에 들어와 미등록노동자로 있다가 2003년 9월 합법화 조치 처분에 따라 합법적으로 등록을 마친 이주노동자였으며 노동부 산하의 대구고용안정센터에서 취업승인(M컴퓨터자수)을 받아 B자수에서 일을 해오다 퇴사 직후 사고를 당한 경우이다.

체불 임금 문제 처리 과정에서 자살

▲ 근로복지공단 항의서한 전달하는 날(6. 4)

ⓒ2004 이주노동자대책위

이와 관련해 사업주는 망자의 사망사건(자살)과 관련해 경찰조사까지 받았고, 근로복지공단 서부지부(대구)로부터 자체 조사까지 받았으나 유족들이 그토록 바랐던 ‘산재 승인’ 결정 대신에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가 나오자 유족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고인의 지인인 김효정(조선족 동포)씨에 따르면 “언니(정유홍씨)가 죽기 전에도 4월 29일자 비행기표를 갖고 고용안정센터에 찾았지만 노동부(고용안정센터 지칭)는 도리어 상담보다는 화를 내었다”고 밝혔다. 그는 “언니 문제를 고용안정센터가 좀 일찍 파악해 해결해 주었다면 자살까지는…”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고용안정센터의 한 직원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다녀가는 외국인들인데 일일이 기억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하면서 “특별히 불친절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원들이 내방객들에게 좀더 친절하게 하도록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고인 남편 “아내의 억울한 죽음 해결해 달라”

▲ 망연자실한채 단식하고 있는 유족들

ⓒ2004 김용한
고인의 유족과 민주노총,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대경연합, 산업보건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대구지역공동대책위원회는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의 죽음이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으나, 우리가 자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가 일해 온 회사의 작업환경, 지인의 증언, 죽음 직전의 고용안정센터 방문 등이 그의 억울한 죽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항변했다.

또한, “비행기 표까지 사놓은 채 고용안정센터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사업주의 말만 믿고 되돌려 보낸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관련해 재조사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을 왜 사태를 악화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산재불승인’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영천에서 건설업 노무일을 하고 있는 고인의 남편 장정하(37세·한족)씨는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내의 한을 풀어주기 전에는 결코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장씨는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해 달라”며 고인이 취업을 신청했던 곳인 대구고용안정센터에서의 항의농성 20여일, 근로복지공단 서부센터 항의방문,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에서의 단식농성으로 ‘산재불승인’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는 “고용안정센터나 서부지부, 근로복지공단 모두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여 억울한 내 아내의 죽음마저 하찮게 취급하려는 것이 가장 속상하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법 조항에 따른 문제”

‘산재승인’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고인의 죽음에는 동정이 가고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나, 법적인 문제로 접어들면 우리도 엄격히 법 조항에(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이번 일로 인해 우리도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막무가내 점거농성을 하며 업무에 방해를 주어 우리도 상당히 피로하고 어려운 상황이다”며 난감해했다.

▲ 고인 정유홍씨의 영정, 죽은자는 말이 없고…

ⓒ2004 김용한
유족들의 단식 5일째이던 지난 7일 현장에서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경수(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목사는 “고인이 죽기 전인 4월 24일, 26일에도 사장과의 관계성 속에서 임금 체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를 찾아간 바 있다는 내용이 파악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고인이 회사로 찾아갔을 당시에도 사장은 고인에게 불법 체류자로 남게 한다는 압박이나 임금을 나중에 지불한다는 등의 진술이 있음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이 안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재조사를 촉구했다.

고 목사는 “고인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부분도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환청, 정신적 불안감이 나타날 정도로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났음에 산재불승인 판정이 난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 고인의 산재 승인 부분을 검토한 근로복지공단 서부센터의 한 담당자는 “우리도 유족들이 제시하는 부분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조사하였다”고 답변했다.

유족들의 조사 불만에 대해선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지 않는 사안을 갖고 유족과 이주노동자 단체가 재조사를 언급하는데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 외에 고인의 업무상 재해를 입증할 만한 부분이 추가로라도 발생한다면 우리의 조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법적인 절차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9층 복도에서 수일째 새우잠을 자며 ‘산재 불승인’에 대한 항의 단식으로 기약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재심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유족 및 이주노동자대책위와 근로복지공단간의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 정유홍씨의 죽음에 대한 경과
이주노동자대책위 경과 보고 내용

고 정유홍(여·35세·중국 요령성)

유족으로는 망인보다 2년 앞서 입국해있던 남편(한족·37세)과 중국에 아들(12세)이 있으며, 가족 중 망인의 여동생과 남편의 형이 한국에 있음.

– 2000년 7월 21일 한국에 입국
– 갈비식당 주방에서 약 3개월간 일한 후 대만 관광상점에서 1년 2개월 정도 근무
– 2002년 5월경부터 남편(한족)이 하고 있던 건설현장 팀에게 식사 제공하는 일을 함.
– 2003년 7월-9월까지 정부의 합법화조치로 등록하면 체류 5년이하일 경우 자유롭게 출국가능함. 망인은 이때 등록함.
– 2003년 11월 4일 M컴퓨터자수에 취업
– 2004년 4월 21일 퇴사
– 2004년 4월 27일 오전 10시 20분경 안심방향 지하철아양교역에서 지하철 열차에 뛰어 들어 사망

대책위 활동 경과

4월 27일 동부경찰서에서 이주노동자단체로 연락해옴.
4월 28일 노동청(고용안정센터) 조사 시작
4월 29일 공대위 단체들 대책논의 시작
4월 30일 고용안정센터와 M컴퓨터자수 항의방문
5월 1일 114주년 노동절정신계승 기념 행사장에서 선전활동
5월 3일 근로복지공단 면담요청서 발송
5월 4일 민변대구지부장 면담
5월 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5월 7일 고용안정센터장 고발
5월 9일 대구지역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5월 12일 고용안정센터 항의 기자회견 및 천막농성 시작
5월 14일 근로복지공단 서부센터에 중대재해발생신고
5월 20일 사업주 문답조사
5월 22일 유족보상청구서, 사망경위서, 진술서 등 서류제출 항의농성 시작
5월 24일 정신과 전문의 및 변호사 면담
5월 25일 산재승인촉구 결의대회/ 산재승인촉구를 위한 근로복지공단 대구본부장 면담
5월 27일 자문의협의회
5월 28일 서부센터 공권력투입, 자료공개 및 조사과정 참여요구, 분향소 설치
5월 29일 서부센터장 면담요구했으나 공권력으로 원천봉쇄
5월 31일 불승인결정서 접수, 이주공대위전체 대책회의
6월 3일 산재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 규탄대회 / 이주노동자대책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