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1500만원 남긴 학습지 여교사의 죽음
[심층취재] 구몬 ‘회원늘리기 강요’ 시달려 사망?…회사측은 부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조호진(mindle21) 기자
▲ 고 이정연씨의 통장. 통장에는 카드사로부터 현금서비스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2004 구몬학습노조
학습지 교사로 근무하던 20대 여성이 돌연 사망한 뒤에 그가 134개의 가짜 회원과 1500만원대의 부채를 남긴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습지 회사의 과도한 영업 강요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노조측은 이 여교사가 회사측의 회원늘리기 강요 등에 시달리다가 1500만원대의 부채를 남긴 채 사망했다고 주장한 반면, 회사측은 “감사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관리자가 적발되면 징계 처리한다”며 노조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구몬지부(이하 구몬지부)는 지난 8일 구몬학습 교사였던 이정연(여·28·동울산지국)씨가 회사의 학습지 회원 늘리기의 일환인 가짜 신입회원 강요에 시달리다 지난 4월 19일 숨졌다고 주장했다. 울산대학교병원이 지난 4월 19일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이씨의 직접 사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부전’이라고 되어 있다.
구몬지부 노조측은 “이씨가 숨지기 한 달 전부터 업무과로를 호소하는 등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있었다”면서 “숨진 이씨를 비롯해 대다수 학습지 교사들이 회사측의 가짜 신입회원 만들기 강요에 시달리고 있다”며 구몬학습 발행 회사인 공문교육연구원(주)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가짜회원에 시달리다 1500만원 가량의 빚을 지고 세상을 떠났다”
구몬학습의 ‘2004년 교사별 실적관리현황’에 따르면 고 이정연씨는 지난 3월까지 국·영·수학 등 7개 과목을 맡아 204개(공교육의 수업일수에 해당되며 학습지 교사들은 이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의 학습지를 가르쳐 매월 250여 만원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이씨가 실제 가르친 학습지 숫자와 수입과는 큰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씨가 숨진 뒤 관리하던 학습지 204개 가운데 다른 교사에게 47개만 인수인계됐다”며 “자체 조사한 결과 134개가 가짜회원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가짜회원에 대한 회비를 수개월간 부담하면서 1500만원 가량의 빚을 지게 됐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렸으며 결국 사망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노조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씨뿐 아니라 함께 근무하던 동울산지국 교사 상당수가 일인당 10∼20개의 가짜 회원을 가지고 있는 등 회사의 무리한 실적 강요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와 교사들은 회사측의 강요에 의해 가짜회원을 등록할 경우 한 명당 15000원 이상을 회사에 물어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씨가 안고 있던 가짜회원이 130명∼150명 정도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씨는 매달 200만원 정도의 적자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주변 교사들의 진술이다.
이씨는 지난해 8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카드사에서 매월 100여 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돈은 가짜회원 납입으로 쓰였다는 게 주변 교사의 주장이다. 이씨는 특히 올해 3월부터 현금서비스가 어려워지자 사채를 빌리기 시작했고 4월 한 달 동안 400여 만원의 빚은 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구몬지부는 8일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회사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이정연 교사의 영정 앞에 회사는 무릎 끓고 사죄해야 한다”며 “회사가 부당하게 취해온 이득을 배상토록 하는 운동을 벌이고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 불인정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은 이씨를 추모하기 위한 리본 달기를 비롯해 ▲공문교육연구원(주)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 ▲오는 26일 이정연교사 추모제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료들 “한 달 전부터 힘들다고 호소했다”
10만 명의 학습지 교사들은 누구?
‘위탁계약’ 형식… 근기법 사각지대
‘대교 눈높이’, ‘구몬학습’, ‘재능교육’, ‘웅진’, ‘한솔’ 등 메이저 학습지 회사에 소속된 교사는 10만 명 가량 된다. 대학졸업생부터 주부까지 여성이 대다수인 이들 교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정방문을 해 학습지를 통해 학생들을 지도한다.
교사들은 개인사업자등록을 통해 회사와 ‘위탁계약’을 하며 산재나 퇴직금은 전혀 없다. 성과에 따라 수당을 받는 ‘특수 고용직 노동자’이다. 따라서 회사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 등 신분상 불이익이 발생한다. 회사의 부당영업 강요 등은 이처럼 취약한 신분에 의해 발생한다.
학습지 회사들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96년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라는 판결이 남에 따라 이들 교사들은 근로기준법에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노조는 법외노조로 존재하고 있다. 노조는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학습지교사, 레미콘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100만 특수고용자들이 근로기준법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인권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다며 ▲17대 국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책과 제도 개선안 마련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실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구몬지부노조는 회사가 교사들의 피해를 통해 매년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조는 학습지 회사들이 ▲학습지를 그만둔 학생의 회비를 교사가 대신 내도록 강요(속칭 ‘홀딩’) ▲가짜 신입회원 등록 강요(속칭 ‘가라회원’) ▲자기주도학습(교사에게 학습지 구독을 강요하는 방식) 등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이정연씨의 동료교사 차정화(여·37·동울산지국)씨는 13일 “회원이 줄어들면 면담과 독촉전화를 통해 압박감을 주고 끝내 실적이 저조하면 퇴사 압력을 받는다”며 “일부 관리자들은 인격공격성 모멸감을 주고 심지어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실적을 강요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차씨는 또한 “정연씨는 회사측의 부당 영업 강요를 순순히 받아들여 관리자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입금독촉에 쫓겨 카드깡과 사채를 쓰는 등 심적인 압박감에 시달렸다”며 “죽기 한 달 전부터 주변 교사들에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는데… 회사가 준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가 정연씨를 숨지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어머니 유숙자(59·울산시 동구)씨는 8일 “회사측의 잘못된 영업 강요 때문에 카드깡을 하고 사채를 빌리고 대출까지 받은 사실을 딸이 죽은 뒤에야 알았다”며 “취직해 번 돈으로 시집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알았지 빚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눈물을 흘렸다.
회사측 “왜 가짜회원을 떠안았는지 모르겠다”
▲ 구몬학습 교재들… 학습지 교사들은 가정을 방문해 이 교재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2004 구몬학습
구몬학습 관계자는 가짜 신입회원 강요와 탈퇴 회원 떠안기 등은 일부 지점에 국한된 것일 뿐 회사가 부당 업무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구몬학습 관계자는 8일 “이씨가 왜 그렇게 (가짜회원) 부담을 떠안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가 부당 영업을 강요했다는) 노조의 주장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구몬학습은 모범적인 학습지 회사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씨와 (사망과) 관련해 구몬학습만 집중 추궁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구몬학습은 감사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관리자가 적발되면 징계 처리한다”며 “요즘 교사들에게 부당한 영업을 강요할 경우 사회 문제가 생기는데 어떻게 강요가 있을 수 있겠느냐, 강요와 협박은 없다고 본다”며 노조와 동료교사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씨가 근무했던 동울산지국의 한 관리자는 “이씨는 학부모로부터 회비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착하고 순진한 성격이어서 회원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씨가 과거에 건강에 문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리자가 불안감 조성… 어쩔 수 없이 가짜 회원을 썼다”
‘대교 눈높이’ 교사들도 회사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준비 중
▲ ‘대교 눈높이’ 교사들이 자필로 쓴 피해 진술서.
ⓒ오마이뉴스 조호진
또 다른 학습지 회사인 ‘대교 눈높이’ 소속 100여 명의 교사들도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가 입수한 교사들의 소송 관련 자필 진술서에 따르면 회사 관리자에 의한 부당 영업 강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아무개(여·25·광주 상무지점)씨는 “회사가 휴회(학습회원을 중지한 회원)를 받아주지 않아 6명 회원의 회비를 냈고 또한 10명의 가짜 신입회원을 입회시켰다”고 진술했다.
이 아무개(여·27·경기도 안산 고잔지점)씨는 “‘눈높이 박사’에 두 살짜리 조카를 올리라고 강요했으며 입회 (시키지) 않으면 국장 단독 면담해야 한다고 협박했으며 가짜 입회(신입회원)를 쓰지 않으면 12시까지 집에 못 간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썼다”고 진술했다.
김 아무개(여·24·광주 상무지점)씨는 “휴회율(학습지를 그만둔 학생)이 높은 선생님은 강제로 토요일 출근하게 했다”고 진술했으며, 또 다른 김 아무개(여·28·광주 상무지점)씨는 “지나칠 정도의 허위입회(가짜 신입회원)와 휴회홀딩(그만둔 회원을 교사가 떠안기)을 하다보니 의욕상실과 경제적 손실이 크다”며 회사의 강요에 시달린 게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교 눈높이 회사 관계자는 8일 와의 전화통화에서 “광주 상무지점에 대한 본사 감사 결과 (문제를 일으킨) 해당 관리자에 대해 징계 처리했다”고 밝혀 교사들의 피해가 사실로 밝혀졌다.
서훈배(37) 노조 대교지부장은 8일 “평택 H지점에 근무하는 임신 중인 여교사의 교실을 인수 인계해 주지 않아 산모가 고통을 겪고 있다”며 “교사들의 인격모독은 물론 건강권까지 침해하는 것은 물론 부당한 영업을 강요하고 있는 (주)대교 눈높이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교 눈높이’ 회사 관계자는 8일 “눈높이가 운영하는 500개 지점의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탁운영, 위임관리하면서 신입회원 입회와 회비 수납업무를 관리하는 계약관계”라며 “일부 교사들이 수당을 많이 받으려고 무리하는 경우가 있는지 몰라도 회사가 부당한 업무를 요구한 경우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회사는 투명하게 경영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각 지점을 관리하고 있다, (지점 관리자의 부당 영업 강요로 피해를 입었다는) 일부 교사들의 주장은 실체 없는 불만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부 문제가 전체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노조 주장을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