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VS “과도한 해석”
학습지 교사 이정연씨 죽음 놓고 노사 팽팽한 공방
김경란 기자 의견보내기
울산에서 학습지 교사로 근무하던 28살의 한 젊은 여교사의 죽음으로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삶이 드러났다.
지난 4월 구몬학습의 동울산지국 근무하던 이정연교사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곤란으로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학습지노조 쪽은 “다른 동료 교사들이 회원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교사의 회원 204과목 중 134과목이 가짜 회원이었고, 그동안 그 회비를 감당하느라 1500만원의 카드빚을 졌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며 21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정연 교사의 죽음이 학습지회사의 전근대적 관리체계로부터 발생된 것이고 이 교사 뿐 아니라 부당영업 관행이 학습지 업계 전반의 문제이고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 김교사는
나도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학습지 여교사들은 임신한 순간부터 계약해지의 위협에 처해 있다고”고 말한다. ⓒ 매일노동뉴스 김경란 기자
매달 400만원 자기 돈으로 납부
학습지교사로 4년을 근무한 이씨는 숨지기 4일 전, “몸이 너무 아파 지국 교육에 가지 못한다”는 전화를 하고는 호흡곤란으로 입원했고 곧 의식을 잃었다. 중간 중간 의식을 찾기도 했으나 결국 사흘 만에 숨지고 말았다.
회사 측에서는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 빚이 많았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로 사망한 것 같다”고 했고, 동료들에 따르면 어떤 관리자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죽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교사가 관리하던 회원을 다른 교사에게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그가 관리하던 204과목 중 인수인계가 된 것은 47과목에 지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동울산지국 동료 교사들이 자체 조사를 해본 결과 134과목이 가짜회원이었다는 것.
회사에서 교사가 신청하는 회원의 탈퇴 접수를 받아주지 않거나 회원 명수를 채우라는 강요에 못 이겨 보유하고 있는 회원(휴회)들의 회비를 내느라 이 교사 자신이 400만원에 달하는 회비를 매달 납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조는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라 그렇게 불어난 1,500만원의 빚 때문에 심한 심리적 부담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비단 이 교사나 구몬사의 문제가 아니라 대교 등 다른 학습지에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보통 15~20건씩 매달 100만원 이상의 휴회비를 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몬, “원인 모를 죽음, 회사 비난말라”
이 사건을 두고 현재 구몬 쪽은 매우 날카로워진 상태다. 회사 쪽 관계자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회사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언론에서는 거의 ‘업무에 의한 과로사’나 심지어는 ‘휴회비 납부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며 “10만명 학습지 교사 중에 1명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사망을 했을 뿐인데 이를 가지고 구몬학습지 전체의 부당영업 행태로 몰아가는 것은 심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교사가 떠안고 있던 가짜 회원에 대해서도 “이씨가 회원 명단으로 올리면 회사에서는 당연히 회원인 줄 알고 있는 것이지 자신이 영업 실적을 위해서 가족이나 친척을 가짜로 올린 것까지 회사가 일일이 확인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에서는 휴회비를 대납할 것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구몬, 대교, 재능 등 대형 학습지회사들의 가입되어 있는 단체인 교육산업협회(구 학습지산업협회)도 이번 사건이 일반적인 학습지회사들의 불공정 영업의 관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협회 최기호 사무국장은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사한 사건이 연속으로 터진 것도 아니어서 이번 일을 학습지업계 전체의 문제로 호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무권리’ 특수고용 노동자의 비애
그러나 회사 쪽의 주장대로 그동안 학습지 교사들의 건강권이나 모성권 침해 문제가 전혀 불거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불공정한 계약관계를 요구하거나, 학습지교사의 회원 보유 실적을 강요하면서 유산의 위험에 이르기까지 근무를 하는 등의 사례는 21일 발표된 바와 같이 노조를 통해 꾸준히 알려져 왔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서울본부,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교사노조,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공동으로 학습지 노동자 3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유산위험이 있어도 일을 쉬지 못하고(85%), 질병이 있어도 일하면서 치료(79.5%)하거나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것(17.9%)으로 나타나 쉬면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습지노조들은 이 같은 현실이 학습지교사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4대 보험 혜택이나 노동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계약이 해지되는 것이 두려워 ‘알아서’ 가짜회비를 내고 있던 권교사의 죽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울산대학교병원이 사망 당일에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이씨의 직접 사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부전’이라고 되어 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이번 사건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노조의 주장과 ‘과도한 해석’이라는 학습지업계의 주장만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경란 기자(eggs95@labornews.co.kr)
기사입력시간 : 2004.06.22 11:46:35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