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노동자 안전·보상대책 시급”
김선일씨 죽음 계기 고민 확산…노동자도 전쟁과 테러의 희생자

연윤정 기자 의견보내기

고 김선일씨는 마지막까지 절규했다. “나는 살고 싶다.” 그러나 국가도, 그를 고용한 회사도, 그 누구도 그를 구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고 김선일씨가 억울하게 죽어간 이후에도 여전히 전쟁 및 위험지역에 놓여 있는 한국의 노동자는 많다. 해외의 위험지역에 진출한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노동자, 전쟁과 테러에 그대로 노출

“항공종사자는 테러에 더욱 노출돼 있어요. 그래서 이라크파병을 반대합니다. 또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파병군 수송도 거부합니다.”

24일 항공사, 조종사노조 등으로 구성된 항공연대가 파병군 수송을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명분 없는 전쟁 때문에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는 아니지만 위험지역으로 꼽히는 중동지역에는 취항합니다. 회사는 항공종사자들에게 절대로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요. 그게 유일한 안전대책입니다.”

하효열 대한항공조종사노조 교선실장의 말이다. 그 외에 안전을 위한 보험을 따로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안전을 위한 별다른 대책은 없다고 한다. 앞으로 ‘제3위 파병국’으로서 더욱 테러에 노출될 것이 분명한데 불안하기만 하다.

비단 항공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동 등 해외 위험지역에 많이 진출해 있는 건설노동자가 대표적. 건설현장은 주로 오지에 많이 분포해 있어 더욱 위험에 노출되기 싶다. 특히 기업규모가 작은 건설사의 경우는 안전 및 피해 대책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현재 내국인이 설립한 해외법인이나 해외진출 건설회사는 산재보상보험법의 의무가입 사업장에서 제외돼 있다.

정상두 대우건설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대우건설이 진출해 있는 나이지리아의 7개 현장을 순회한 적이 있었는데, 위험지역으로 이동할 때 무장경찰이나 군인이 한국 노동자를 보호하는 등 안전조치가 잘 돼 있는 편이었다”며 “그러나 규모가 작은 회사의 경우 안전조치는 물론 피해대책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 진출하는 건설사의 경우 국내의 산재보험법 적용이 안 되고 사보험인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근재보험)에 가입하도록 돼 있는데 회사의 지불능력에 따라 납부하다 보니 기업 규모에 따라 보상 수준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

정 위원장은 “해외 진출 건설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법이 적용되도록 해 골고루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무전기와 가나무역, 보상 논란 왜 계속되나

실제로 전쟁지역에서 희생을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후대책에서 이미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김선일씨의 죽음이 있기 전에 지난해 11월 오무전기 노동자들이 이라크에서 피격당해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한 바 있는데, 오무전기의 경우 해외진출 건설사로 분류돼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관계로 현재 부상자에 대한 산재처리가 안 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오무전기의 경우 근재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사는 앞으로 부상치료는 부상자 본인 부담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해당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고 김선일씨의 경우도 피해보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연일 나오고 있다. 김씨를 고용한 가나무역의 경우 미군 군납업체인 AAFES의 하청사로 국내법인이 아닌 카타르법인으로 돼 있어 국내 산재법이 적용이 안 되는 것은 물론, 가나무역은 전쟁지역에 진출하는 사람들를 대상으로 한 ‘신변안전보험’에도 가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김선일씨의 보상문제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신변안전보험의 경우 위험도가 매우 높아 보험료는 1년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복지공단 보험적용과의 한 관계자는 “두 기업 사례의 경우 국내 산재법으로 보상받을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계 “노동자보호 위한 제도마련 시급”

이같이 실제 전쟁이나 위험지역에서의 피해자는 노동자가 되고 있음에도 안전 및 피해대책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제도개선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계도 이라크 파병문제를 노동자의 생명과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라고 보고 적극 대응할 필요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수봉 민주노총 교선실장은 “이미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일차적으로 파병을 반대하고 있다”며 “또한 위험지역에 진출해 있는 노동자의 안전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팀장은 “해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도 국내 노동자인데 국내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정부 차원에서 노동자의 신변보호를 위한 조치는 물론 국가 차원의 피해 보상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위험지역에 진출한 노동자 보호를 위해 제도적 보완이 전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영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법률적인 검토를 더 해봐야 하겠지만 해외 위험지역에 근로자 파견될 때 회사가 의무적으로 재해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기사입력시간 : 2004.06.25 09:5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