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 맞은 산재보험제도 “사회보험 성격 강화해야”
노·사 정기국회서 산재보험법 개정 전면전 치를 듯

연윤정 기자 의견보내기

1964년 7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제도가 탄생했다.

그리고 40년. 그 나이만큼이나 노동자 적용 및 산재인정 범위 확대 등 산재보험제도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산재보험이 처한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는 않다.

고용형태의 변화로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존재하고 근골격계 질환 등 직업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는 더욱 늘어나는 등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40주년을 맞는 산재보험제도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산재보험 발전사와 이면

산재보험제도는 시행 원년 상시노동자 500인 이상 대규모 광업 및 제조업 대상으로 시작됐으며 이후 꾸준히 업종별·규모별 적용범위를 확대했다.

2000년 7월 일부 업종(농업·임업·어업·수렵업 등)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상시노동자 1인 이상, 건설공사는 2천만원 이상으로 적용확대 됐다.

보험급여도 기존의 요양·휴업·장해·유족·장의비 및 일시급여 이외에 86년 재해예방 및 복지증진, 99년 재활 및 사회복귀 등을 법의 목적에 추가하면서 사회보험으로서 역할을 확대해왔다.

적용대상 노동자도 꾸준히 증가했다. 64년 64개 사업장 8만 1천여명이 보호대상이었으나 20년 후인 85년 6만6,803개 사업장 449만5천명, 2002년 100만2,263개 사업장 1,057만1천명으로 급속히 확대됐다.

업무상질병의 인정기준도 뇌혈관·심장질환(96년), 진폐합병증 확대 및 소음성난청 기준 완화(97년), 자살·휴게시간 및 행사중 사고(2000년), 간질환·진폐등급 확대(2003년) 등으로 확대돼 왔다.

그러나 이면은 존재한다. 산업재해자 역시 만만치 않게 증가한 것이다. 64년 재해자 수는 1,489명(산재율 1.84%)이었으나 개발독재가 본격화되는 75년 8만570명(4.4%)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85년 재해자는 14만1,809명(3.2%)으로 절정을 보였다.

90년대 들어서야 재해자수가 줄어들기 시작, 90년 13만2,893명(1.77%), 95년 7만8,034명(0.99%), 2003년 9만4,924명(0.90%)를 기록했다. 이는 그만큼 ‘산업재해가 경제발전의 부산물쯤으로 여겨지던’ 개발독재 시절 산재로 다치거나 죽어간 노동자들이 많다는 의미로, 산재보험의 발전사의 어두운 이면이기도 하다.

특히 산재사망자의 현실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의 경우 산재사망자는 2,923명으로, 하루에 노동자 8명이 죽는 등 지난 10년간 3만여명이 산재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은 운동진영이 80년대 후반부터 산재추방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도록 했다. 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인한 열다섯 문송면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사태는 산재문제의 사회화를 가속화시켰다.

그 해 산재단체인 노동건강연구회가 출범했고 90년 전노협이 산업안전 관련 부서를 설치하는 등 노동운동 안으로 산재문제를 끌어안았으며, 99년 노조운동과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함께 산재추방운동연합을 만들어 3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산재보험제도 개선투쟁이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 2001년 10월 민주노총, 산재추방단체들이 참여한 ‘산재보험 제도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가 구성되면서부터. 공대위는 올해 초까지 활동하면서 개별사안을 넘어 전체 산재보험제도 개선투쟁에 집중해왔다.

산재보험제도가 안고 있는 한계

현재 산재보험이 직면한 현실은 어떨까. 공대위의 문제의식은 IMF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으로 노동현장에서 산재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산재노동자에 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치료와 보상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우선 산재보험의 문제점으로, 사전승인과정에 따른 협소한 인정기준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재해 및 직업병 발생시 노동자 본인이 작업관련성을 증명해야 요양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전승인제도는 사고성 재해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 1~2주 안에 이뤄지지만 직업병의 경우 한없이 길어진다는 것.

이 과정에서 요양이 인정될 때까지 산재노동자 본인부담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고, 자연스레 산재은폐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취약한 급여수준도 주요 지적 대상이다. 산재노동자들은 산재발생 후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진료비의 추가부담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고 있는데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만을 보전해주고 있어 산재이후 가계소득이 줄어든다는 것.

특히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노동자의 경우 평균임금이 정규직에 비해 상당히 낮아 산재가 발생하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란 지적이다.

직업재활과 원직장 복귀도 미흡하다는 주장이다. 직업재활은 산재노동자의 사회적 복귀, 즉 직장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산재노동자의 직장복귀율은 지난해 현재 4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와 관련, 공대위는 “이는 산재노동자 재활사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부재와 미비한 사업예산에서 기인한다”며 “독일은 재활에 사용되는 예산이 예방, 보상, 재활을 합한 전체 예산의 20%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지만 우리는 0.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근로복지공단의 개혁도 요구하고 있다. 공단에 산재보험 심판과 징수 등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며 그동안 산재노동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산재노동자와 가장 밀접한 보상업무에서 공단이 산재승인권을 갖고 있는 한 산재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산재보험 적용에 대한 문제점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편집팀장은 “비정규직의 경우 산재보험 적용률이 20% 수준인데다 특수고용직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을 받지 못해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남아있다”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산재노동자협의회,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노동건강연대 등 회원들은 지난 28일 노동부가 주최한 산재보험 시행 40주년 기념식이 열린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산재보험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다.. ⓒ 매일노동뉴스 연윤정 기자

사회보험이냐 책임보험이냐 공방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사는 올 정기국회에서 산재보험법 개정을 각각 추진할 예정으로, 산재보험제도 개선을 두고 노사가 전면전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공대위의 요구안을 기초로 현재 입법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은 산하 법률원, 노무법인 현장 등과 ‘산재보험 입법개혁팀’을 구성, 6월11일 첫 회의를 가졌으며 8월말까지 초안을 만들어 9월께 토론회를 거쳐 정기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의원을 통해 입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조태상 민주노총 산안부장은 “노동자들이 생존권 위협을 받으면서 치료를 받거나 치료 후에는 실업자로 전락하는 등 산재보험법은 제도적 한계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며 “선보장후평가, 보장성 강화, 재활사업 강화 등 3대 기조로 입법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 김선일씨 피살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해외 위험지역에 진출한 한국 노동자의 산재보험법 적용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산재보험에서 제외되는 특수고용직, 2천만원 미만 건설공사 노동자의 산재보험법 적용, 근골격계 질환 인정 완화 등도 추진한다.

반면 경영계는 사회보험의 성격보다는 ‘사용자 책임보험’의 성격을 강조하며 산재보험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우선 경총은 5월 한 달간 전국 2천여개 사업장 산재보험 처리 담당자를 대상으로 산재보험에 대한 전반적인 설문조사를 마쳤으며, 이를 바탕으로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판중 경총 안전보건팀장은 “산재보험은 외형적으로는 사회보험의 성격을 띠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용자 책임보험”이라며 “현재의 사회보험이 취약해 산재보험에 의지하려는 성격이 강하지만 앞으로 보험인정기준, 요양관리, 보험급여 등에서 합리적으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산재보험법 개정을 앞두고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도 전반적인 산재보험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 지난 9일 외부전문가와 노동부 관계자로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를 구성했다.

노동부는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해왔으나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용형태의 다양화, 급속한 고령화 진행 등에 따라 사회안전망으로서 사회보험의 역할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며 △수혜범위 확대 △요양관리업무 개선 △재활사업의 활성화 및 재정안정 등 환경변화와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제도적 시스템 모색이 요구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노동부는 발전위에서의 논의를 거쳐 올해말까지 제도개선(안)을 확정해 내년 1월 이후 입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사회보험 성격이 강화돼야”

그러나 산재보험제도 개선방향은 ‘사회보험’ 성격 강화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28일 코엑스에서 열린 산재보험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아직도 출퇴근 재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으며 학습지 교사 등 많은 비정규직이 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보험에서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산재보험 40년을 계기로 산재보험제도가 진정한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사회보험방식의 산재보험제도 운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재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회장은 “산재보험제도가 진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한 것일 뿐 사회보험으로서 미약하다”며 “사고는 사용자의 과실 또는 교육 미비로 발생하는 것임에도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국가의 책임이 보다 강화된 사회보험의 강화를 요구했다.

전문가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조덕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산재보험의 방향은 사회보험의 강화로 가는 것이 맞다”며 “지난 10년간 3만명의 산재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만큼 예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예방과 재활사업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일반회계에서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사입력시간 : 2004.07.01 12: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