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가 죽어가고 있다
[특별기획]신종직업병 ‘공황장애’를 진단한다 ①

기사인쇄
최하은 기자

“이제 나이 38, 누가 보아도 건강한 운동 마니아에 항상 밝았던 동료가 어느 날 초점 없는 눈으로 죽음을 얘기했다. 숨조차 쉴 수 없노라며 겪어보지 못한 네가 무엇을 알겠냐고 했다. 전동차 운전대에서 잠시 긴장을 늦추면 한 손으로 출입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하는 자신이 두려워서 두 손을 꼭 맞잡고 운전대를 잡는다고 고백했다. 처자식이 웃고 있는 거실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는 자신을 공포스럽게 인식한다고,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 운동을 하며 몸을 혹사시키고 그 힘으로 잠을 청하며 지내왔지만 이제는 한계라며 곧 죽을 듯이 말했다.”

지난 4월말 도시철도 개화산 승무지부 정모 기관사가 심한 호흡곤란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병가에 들어갔다. 이유 없이 불안이 극도로 심해지며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두근대고 죽을 것만 같은 극단적인 긴장을 보이는 상태에서, 죽거나 미치거나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이 동반될 수 있다는 공황장애. 병명도 생소한 공황장애를 혼자 앓고 있었던 것이다.

2003년 서민권 기관사를 시작으로 임채수 기관사가 공황장애 증상에 시달리다 사망했고, 10여 명의 기관사가 열차운행 업무를 중단해야 했지만 기관사들에게 공황장애는 너무나 생소했다. 주변에 차만 타면 눈앞이 캄캄하다거나 숨을 쉴 수 없다거나 간혹 죽고 싶어진다는 말을 하는 기관사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개인이 극복해야 마땅한 심신이 약한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꺼려야 할 증상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혹 그런 증상이 보여도 혼자 병원에 다니거나 묻어두고 살아왔다.

공황장애란
공황장애란 한마디로 갑작스런 불안, 공포가 신체증상들과 함께 반복되는 질환이다.
공황장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불안을 조절하는 중추신경계의 생화학적 기능장애, 유전, 학습된 공포반응 등 복합요인에 의해 발병한다고 최근까지 알려져 있다.

이 병은 급성심장병의 심장발작과 흡사한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신체질환으로 인식, 많은 환자들로 하여금 신체적 진료를 하도록 하는 특징이 있지만 신체검사엔 이상이 나타나지 않고, 공황증상으로 인한 심한 불안과 이차적인 사회생활의 고통이 동반되기 때문에 정신과적 전문치료를 요하는 질병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건강했던 동료가 공황장애를 혼자서 겪다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다. 문득 저 사람보다 못한 나야 어떠할까하는 위기 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앞서서 말도 못하고 앓았을 동료들에 대한 죄스러움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주로 40대 미만이 대부분인 도시철도 850명 기관사 중 115명이 정신과 정밀진단 대상자(2003년말 기준 자료)라는 심각한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3년 상반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및 인제대 보건안전공학과에서 시행한 도시철도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관사 중 만성피로 39.5%, 두통 13.1%, 불면증 16.7%, 불안증상 4.7%, 의욕상실감 9.4%의 정신증상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또한 80.6%가 수면장애 증상을 보이고 고위험 스트레스군이 38.9%, 잠재적 위험군이 58.8%이다.

1995년 개통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지속적으로 개통 구간을 확장해온 도시철도는 추가 개통 과정에서 업무량은 다각도로 증가하였지만 모자란 인원이 즉각 충원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1999년 5대 노동조합은 1천 7백여 명의 정원 감축에 합의해 버림으로써 추가 개통이 진행될수록 노동자 한 사람의 담당 업무량은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게다가 2002년 12월에는 야간 1시간 연장 운행이 실시되었다. 연장 운행에 대한 합의와 함께 100여 명의 인력 충원이 합의되었지만, 이는 연장 운행 시행 이전의 업무량을 담보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절대적인 업무량의 증가와 더불어 현장 노동자에 대한 노골적 교육과 감시 증가는 기관사들의 정신적 노동강도를 살인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잦은 사고와 승객 수송에 대한 모든 판단을 혼자서 해야 하는 1인 승무의 강박감, 초단위로 지켜야 하는 시간에 대한 부담, 하루 평균 5시간의 장시간 지하운행, 본인조차 알 수 없는 복잡한 근무시간에서 오는 생활의 불규칙성, 민원에 대한 공사의 압박 등에 시달리고 있다.

“더 이상은 방향도 잡지 못한 채 방치할 수 없다. 다른 데는 몰라도 우리 개화산만이라도 시작하자”는 결의 속에 개화산 승무지부는 6월초에 전 조합원 토론회를 개최하고 생각이 모인 80여명이 3일 동안 업무상 질병요인 실태를 파악했다. 그리고 지부 간부만으로 구성된 지부회의의 대리주의릎 극복하고 조합원이 직접 움직이자며 조합을 지지하고 협력하는 조합원 중 20명이 사안자체에 집중하는 현장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개화산승무지부실천단'( 실천단)을 꾸렸다.

도시철도 승무본부 역시 지난 5월부터 공사에 집단 임시 건강 검진을 요구하고 노동부에 기관사 정신장애에 대한 역학 조사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왔다. 실천단은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 공단 집단 임시건강 검진이 조속히 시행되기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6월 28일부터 자체 검사에 돌입했다. 요구하고 대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선 자체 검진을 통해 공황장애 자체를 이슈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이러한 개화산 승무지부의 요양 투쟁에 6개 타 지부도 함께 할 의사를 밝히고 이후 계획을 모색중이다.

개화산 기관사들은 이대 동대문 병원과 보라매 병원에서 매주 10여 명이 검진을 받을 계획이며 150여 명의 조합원 중 45명이 희망자로 나서있다. 공단 검사가 아닌 개인 부담 검사여서 검사를 강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우선 희망자들이 나서서 이슈를 만들고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검사결과 산재 대상 소견이 나오면 단 4일 요양이라도 집단 산재 신청을 해 공단을 압박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한 실천단은 6월 17일 기관사 건강권 쟁취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중이며 지난 28일에는 근로복지공단 성동센터 앞에서 산재판정 촉구 항의 집회를 진행했다. 항의 집회의 효과인지 2개월 여를 끌던 조모 기관사와 김모 기관사에 대한 산재 판정이 29일자로 났다. 그러나 공황장애 상태에서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 사망한 고 서민권 기관사의 경우 지난 3월에 산정신청을 했으나 아직까지 의사자문협의회도 구성하지 않은 상태다.

궤도공투본을 중심으로 주 5일제 투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개화산 승무지부는 전국 최초의 공황장애 집단요양 투쟁을 통해 주 5일제 투쟁 이후에도 공황장애 등 기관사 건강권 문제를 쟁점화하고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현장 투쟁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