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로 누군가를 치었다는 죄의식은 평생 따라붙을 것”
[기획연재]신종직업병 ‘공황장애’를 진단한다③
대안은 2인 승무제도와 현장통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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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은 기자

74년 생 정승호 기관사는 2000년 4월 17일부터 도시철도에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채 1년도 안된 2001년 3월 7일 13시경 사상사고를 경험했다. 이 날 주간근무였던 정기관사는 답십리에서 점심교대를 하기 위해 군자역으로 들어서는 참이었다. 전혀 아무 짐작도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선로로 뛰어내렸다. 정기관사는 급히 비상제동을 하고 기적을 울렸다.

당시 너무 당황한 정기관사는 우선 뛰어내려서 생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정기관사는 선로를 가로질러 시신의 팔다리를 잡고 선로 옆으로 밀어 놓았다.

“선로에서 선로까지 그 거리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시신의 팔다리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던지…그 멍하고 두려운 상태에도 머리 속에는 빨리 재 개통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있었죠” 라며 정기관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입사 초 연수원 교육에서 사상사고시 10분 이상 지체하면 무능하다는 의식을 은연중에 주입 받는다고 했다. 처리 후 목격자 연락처까지 받고 나니 7분, 그 와중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단다.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그게 아니었던 거죠. 확실한 처리가 제일 중요했는데…진짜 생사 확인을 철저히 하고 기다려서 들것에 옮겨 야죠. 만약 사망이 아니었다면 부상자를 사망자로 보고 기본 구호조치를 안 하는 게 되는 거 아닙니까.”

정기관사의 경우 사망자는 사인이 두개골 함몰에 의한 출혈과다였다. 즉 비교적 시신이 온전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 파열이나 사지절단이 심한 모습이면 기관사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터널사고의 휴우증은 더 심각하다. 정기관사 사고 후 1년 뒤 가을 군자역에서 여고생이 터널로 내려와 터널 중간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규정상 토목직원 등 관계직원과 함께 처리하게 되어있지만 사망 환자의 경우 다른 직원이 오기까지 기다리며 시신을 지키는 것은 더 공포스러운 일.

사고나 고장 발생시 우선 모든 열차와 역사를 올스톱 시켜야
대부분 운전자들은 황망한 와중에 시신을 수습한다. 그나마 역사는 불빛이라도 있지만 어둡고 습한 터널 안에서 엉망이 된 시신을 수습하는 거다. 혹 살아있다면 객실로 태워 승강장에 옮겨서 구급조치를 기다려야 한다. “전문가가 아닌 기관사가 응급환자를 옯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냐”며 정기관사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고가 나거나 열차가 고장나면 우선 전 열차와 역사를 올스톱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전하게 처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승객 민원이 들이치니까 우선 개통부터 시키고 보자는 공사의 마인드가 문제인 거죠.”

정기관사는 20분만 늦어도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난리가 나는 시민의식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사 측이나 언론이 이런 문제를 홍보할 생각을 해야하는데 “도시철도는 승객민원에 최선을 다한다”는 언론플레이에 치중하기만 하는 거라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공사는 기관사를 닦달하고 현장직원을 쪼아대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지옥을 겪고도 정기관사는 교대자가 없어서 강동역까지 운전을 해야했다. 심장이 떨리고 역마다 사고로 인한 연착 안내 방송을 해야하는데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그 동안에도 사령에서는 사고당시 속도가 얼마였는지, 예상이 불가했는지 계속 무전을 해왔다. 우선 정신이 없으니 나중에 얘기한다고 하고 정기관사는 머리 속으로는 경위서 작성 생각을 했다. 혹시 잘못한 부분은 없는 건지, 뭐라고 적어야 하는지. 바로 면전에서 죽은 자의 눈을 대면하고도 사상사고 기관사들은 어찌되었든 사고 후 최소한 몇 구간은 운전을 해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올해는 대기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상사고 기관사가 계속 한바퀴를 운전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사상사고시 뛰어들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확실하면 그나마 나은데 흔들렸는데 치고 갔다고 진술하는 경우 CCTV에도 안 잡히면 문제가 커진다. 그러나 워낙 사고가 많아서 숙인 것과 떨어진 것과의 사체의 튕기는 정도의 차이가 확연하면 판정이 가능하다. 정기관사도 그런 경우였는데 자살판정이 나서 특별한 불이익은 없었다.

그러나 자살 판정이 난다해도 유가족이 절대 자살할 리 없다고 사인을 다투는 경우 계속 유가족들을 만나야 하는 고충이 있다. 또한 열차출발시 음주자가 튕겨 나가는 순간 CCTV를 이미 지난 상태라면 1인 승무이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하고 그 경우 열차를 세우지 못해 사고가 났다면 기관사가 처벌을 면치 못하는 현실에서 사상사고는 이중삼중의 심적 압박이다.

정기관사는 우리 나라 승객들은 나만은 타야한다고 생각하고 유독 뛰어와서 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기본질서를 지켜야하는데 위험하게 열차 출발할 때 무조건 발이고 물건이고 들이밀고 본다. 학생들끼리 창문에 붙어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이 자신과 기관사와 승객 모두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거라는 인식 없이 사고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안전선근처에서 승객이 장난을 하거나 안전선에 발을 내보이는 것을 보면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옵니다. 너는 지금 장난하지만 내 수명을 줄인 거라는 분노가 치밀죠.” 개중에는 기적을 울려도 안 물러서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잔인하게 고문하고 싶다는 생각마저든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냉수를 마시고 심호흡하며 자신을 다스린다. 이런 순간적 분노의 폭발이 혹시 공황장애가 아닌가 싶어 정기관사는 개화산 자체검진을 신청했다고 했다.

만성적 인력부족 해결하고 2인 승무체제로 바꿔야
사고 기관사는 특별휴가로 3일을 쉴 수 있다. 그러나 워낙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과거 사상사고가 나도 하루나 이틀 쉬는 것이 관례였다. 정기관사 역시 이틀 쉬고 나올 수 있으면 나오라는 언질이 있었는데 노조 지부장이 우겨서 3일을 다 쉬었다고 했다. 원래 3일 쉬는 것인데도 3일째 되는 날 마저 3일까지 쉬겠다는 전화를 했다. 그만큼 심적 부담을 받은 것이다.

사고 후 첫날은 동료 기관사들이 술로 사고 기관사의 손을 씻어 준다. 다음날은 술 때문에 고생을 하고 삼일 째야 쉬었다 직장으로 복귀했다. 복귀 첫날 잘 할 수 있을지 엄청 긴장했다고 한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운전을 마쳤지만 정기관사는 지날수록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당장 집에서는 더 쉬어야 하는 게 아니냐, 정신 검진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지만, 남들도 다 견디는 거려니 하는 직장 분위기에서 유난스럽게 힘든 표내는 게 싫었다.

“외관상 문제가 있든 없든 사고 기관사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받는 체계가 마련 되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와 의사 모두 동의할 때까지 치료하는 과정이 필요 하구요. 그리고 다른 일이나 다른 호선에 배치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구요. “

정기관사는 지금도 가끔 악몽에 시달린다. 승객이 뛰어내려 급제동을 했는데 멈추지 않아서 발을 힘껏 내지르다 깨는 꿈. 아직도 군자역을 지날 때나 우연히 사고 차량을 타게 되면 속으로 말한다. “또 너구나, 오늘은 별일 없이 가자.” 그렇게 혼잣말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곤 한다. 사고당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술을 마신다. 직장에서 낙오자로 보일 수 없어 안으로 쌓이는 그 상처들을 당시 연애 시작 한 달된 지금의 아내가 참 많이도 위로해 주었다고 고마워했다.

개화산 지부에는 개화산으로 이동한지 보름만에 이틀간 연속 사상사고를 경험한 기관사가 있다고 한다. 사고후 한동안 밤에 아내를 꼭 안지 않고는 잠도 잘 수 없었다는 그 기관사를 보며 자신이었다면 주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6월 29일 공황장애 산재 판정을 받은 동료 기관사 역시 직접 사상사고는 없었지만 선로에 떨어져있는 사람을 보기는 두 어번 봤다고 했다. 선로에 들어서다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급제동할 때 심정은 사고사의 충격에 버금간다고 기관사들은 말한다. 정기관사는 개화산 50명중 20%가 사상사고를 겪었고 선로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본 경험까지 하면 20%가 넘는다고 했다.

“이 지경인데 어떻게 말짱히 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위에서는 기껏 한다는 말이 혼잡역에 슬라이드 도어를 설치하겠다니, 어디 자살하는 사람이 슬라이드 도어 설치된 데서 자살합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기죠.”

만성적 인력부족을 해결하고 2인 승무체제로 바꾸는 것, 그를 통해 전반적 근무조건을 정상화 시키고 현장통제를 완화하는 것, 그리고 승강장 안전을 위한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는 것 등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서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사가 결국 기관사들과 승객들의 목숨을 벼랑으로 몰고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나는 모든 일처리를 깔끔하게 했다.”는 숱한 마인드 컨트롤 뒤에도 결국 평생 이 짐이 따라 붙을 거 같다는 서른 한 살의 정승호 기관사. 내 차에 생면 부지의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죄의식이 그의 남은 삶에 얹혀져 가고 그런 수많은 정기관사가 오늘도 내일도 발생하는 것을 공사는 언제까지 두고 볼 요량인가. 이미 정신적 건강권의 박탈은 기관사들을 공황장애라는 이름으로 죽음으로 몰고있는데.

지하철 5호선 탑승기, “감으로 세우는 거죠.”
1인승무의 압박 속에서 지하터널을 그렇게 이동하고 있었다
공황장애의 주원인으로 기관사들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1인승무의 부담감, 그 중에서도 사고시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일상적 압박감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실제 사상사고를 경험한 개화산 승무지부 정승호씨가 운전하는 기관차에 탑승하기로 한 곳은 5호선 신정역, 정기관사는 어림잡는 시간약속에 익숙한 기자에게 정확히 9시 24분이면 도착할거라며 탑승시간을 정했다.

늦은 시각 도심 외곽임에도 승객들의 유동이 많다. 그 틈에서 기관차를 놓칠세라 얼른 기관실에 들어섰다.

정기관사는 이 날 오후 6시 11분에 출근해 30분 뒤 차를 타서 5호선 한바퀴를 돌았다. 통상 기관사들은 차 타기 30분전에 출근을 해서 대기한다고 한다. 10시 43분에 방화기지에서 회차를 하고 개화산에 내려 수면을 취한 뒤 오전에 차 두 대를 선로에 빼주면 이 날 야근이 끝난다. 정 기관사는 오늘 같은 야근은 편한 야근이라고 했다.

개화산에서 마천까지 한 바퀴를 돌면 3시간. 어떤 경우는 주간에 마천까지 두 바퀴를 도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다 방화에서 회차까지 하면 차 타는 것만 6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관사들은 이 경우 한 바퀴 째를 전반사업, 두 바퀴 째를 후반사업이라 한다. 식사는 전후반 사업 중간에 해결한다.

특히 힘든 운전이 ‘주박다이아’라는 것인데, 기지까지 들어가지 않는 막차의 경우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역 지하 터널 내의 침실에서 자는 근무형태다. 컴컴한 지하 터널 그 습한 골방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차량을 정비한 뒤 살려서(가동시키는 것) 승강장 홈에 두는 것까지 해야 근무가 끝난다. 사무실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퇴근까지 계속 지하에 있는 근무다.

“이제 이골이 나서 좀 낫긴 한데 첫 주박근무를 하고는 뒷골이 당기고 소변보기도 힘들고 그랬죠. 주박 근무의 경우 깜깜한 터널에서 혼자 뒤로 걸어가다가 공포영화 포스터라도 보이면 정말 한기가 들어요. 그럼 혼자 중얼거리면서 걷죠” 본인이 겁이 많다고 머쓱하게 웃었지만, 어지간한 담으로야 한기 아닌 공포가 느껴질 판이 아니겠는가.

5호선은 전 구간의 90%이상이 지하다. 처음 타보는 기관실에서 바라보이는 터널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전방 유리를 통해 터널의 선로와 어둠과 20미터 간격의 불빛이 시야 전면으로 침범해 온다. 지하의 습기마저 눈에 들이치는 듯하다. 그러다 도착한 승강장의 분주한 모습과 형형색색의 승객의 다양함이 왠지 다른 세계에 들어선 생소함을 잠시 느끼게 했다.

신정을 지나 이어지는 역들은 곡선이 많았다. 정기관사는 CCTV와 후사경을 바삐 들여다 보지만 신통치 않은 듯 연신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후미를 바라보기를 역마다 반복했다. 5호선은 유난히 곡선 구간이 많다고 한다. cc tv라고 4대 설치된 것이 흑백에다가 조그맣고 잘 보이지 않는다. 유심히 화면만을 쳐다본 기자의 눈에도 그러한데 한 순간에 몇 가지를 해야 하는 기관사의 눈에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하다. 후사경은 곡선 구간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사각지대가 너무 넓다. 곡선 구간인 신길이나 직선이라도 사람이 너무 많은 광화문에서는 그야말로 기관실은 전쟁이라고 했다.

“감으로 세우는 거죠. 그러다 10번 중 한번 실수하면 기관사에게는 치명적이죠.”
도무지 어떻게 대중하냐는 질문에 정기관사는 체념한 듯 말했다.

한번은 광화문에서 급하게 탑승하던 승객이 몸만 타고 머그잔이 끼어서 머그잔 값 10만원을 변상한 적도 있단다. 또 언제인가는 신길역에서 출입문에 노트북이 끼었는데 출발해서 안전팬스에 노트북이 부딪쳐 파손된 적도 있다. 출입문에 불이 켜지면 출발하는데 이 날은 불이 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경우 보통은 무언가가 끼었다가 다신 빠진 상황이 대부분이어서 출발한 것. 노트북의 주인은 수리비와 업무 손실비로 천 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자신의 과실이 없다는 경과보고를 하고 공사측으로 문제를 넘겼지만 문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방화기지에 도착했다. 도착 전부터 정기관사는 짐을 챙기기에 바쁘다. 회차의 경우 보통 6~7분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한다. 같은 라인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서 타야하는 경우는 평소보다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서두르는 것이 몸에 베었단다. 방화기지에 도착하자 미화원들이 올라탄다. 짧은 틈이지만 반가운 인사들이 오가고 정기관사는 바삐 걸음을 재촉해 뒤쪽 기관실로 이동했다.

개화산 승무지부 실천단 분 중에 ” 회차할 때 청소하는 분들마저 없으면 정말 8량 쇠덩어리에 갇힌 느낌이다. 개중에 안 내린 손님이나 도둑고양이라도 있으면 살아있는 걸 만난 맘에 순간 안도한다”는 느낌이 어떤 상황에 대한 얘긴지 그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대화를 위해 목청을 돋워야하는 기계소음만이 전부인 기관석에서 하루 짧게는 3시간에서 6시간을 혼자 버티는 고립감. 도시철도 5호선 기관사들은 1인승무의 압박 속에서 지하터널을 그렇게 이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