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 ‘산재인정 차별’ 설움
보상커녕 병원에 주검 ‘저당’
실질적 고용상태 불구
공단쪽, 업주 증언에 무게
“명호가 죽은 지 벌써 1년이야.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중국동포 전영남(76)씨는 30일 오전 서울 구로공단 근처 한 병원 영안실에 ‘출근’해 눈물짓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들 명호(당시 39살)씨의 주검은 1년 가까이 이 병원 냉장실에 안치돼 있다. 그 사이 명호씨 가족 앞에는 치료비와 주검 안치비 등으로 6천만원이 넘는 빚이 쌓였다. 주검 안치비는 지금도 날마다 13만원씩 불어나고 있다.
명호씨는 지난해 7월21일 보온덮개를 생산하는 경기 김포의 ㄱ사 숙소에서 잠을 자다 가스폭발 사고를 당해 8월3일 숨졌다. 그는 사고 전날 이 업체를 찾아가 사장을 면담하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한 터였다.
명호씨가 숨진 뒤 가족들은 산업재해 인정 신청을 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사고 당시 근로자로 채용되지 않은 상태여서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 회사 사장이 “일을 며칠 시켜본 뒤 전씨를 정식 채용할지 결정할 생각이었으며, 사고 당일엔 정식으로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창고 공사 때문에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으나, 명호씨는 사고가 나던 날 공장 주변을 청소하고 사장집 농사일을 거들며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의 직장 동료 김아무개씨도 경찰에서 “명호씨와 공장일을 마치고 돌아와 빨래를 했고, 혼자 일하다 같이 일을 하니 재미었었다”고 진술했다.
계약 불인정 수두룩
가족 “부당”호소 잇따라
‘중국동포의 집’(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는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해 1년 넘게 영안실에 피붙이의 주검을 안치해놓은 이주 노동자 가족들의 애타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2001년 숨진 손아무개(42)씨는 6개월 넘게 영안실에 있다가 가족들이 그의 주검을 싣고 고용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여 치료비와 영안실비 8천여만원 가운데 절반 정도를 받아냈지만,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김옥성(52)씨의 남편은 7년 동안 한 컴퓨터 업체 사장 별장에서 경비로 일하다 지난 3월 쓰러져 숨졌다. 김씨는 “남편은 사장이 아니라 회사에서 월급을 받았고 회사 직원들이 별장에서 연수를 할 때 지원근무를 하는 등 회사와 분명히 고용 관계에 있었다”며 “그런데도 산재 인정을 못 받고 1년 넘게 영안실에 있는 남편 생각을 하면 속이 터진다”고 말했다.
중국동포의 집 이선희 목사도 “근로복지공단이 업주의 말에 큰 비중을 두고 조사한 뒤 이를 근거로 산재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외국인노동자 인권실태’ 조사를 벌였던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과)는 “불법체류 노동자라고 해도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기로 했으면 고용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보고, 피해가 발생했을 땐 보상해줘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근로복지공단이 이 판례를 충실히 따르기만 해도 억울한 사연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인 기자 yi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