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골초’ 단병호 의원이 불댕긴 ‘진보적’ 금연논쟁
‘담배제조·매매 금지법’ 입법청원 참여 둘러싸고 당원들 설왕설래…단 의원측 “입장 바뀔 수도”
이오성 기자
“단병호 의원님, 의원님께서 저 법안을 공동발의를 하시고, 그 법안이 통과가 되는 순간, 의원님은 1500만 애연가와 담배로 인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수많은 노동자와 서민들을 죽이는 꼴이 되는겁니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무상의료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국가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담배의 생산·판매 금지는) 검토해야 될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때 니코틴 중독자를 위한 방안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이로 인한 노동력의 감소와 무상의료에 미치는 영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30년 골초’ 단병호 의원 등이 입법청원에 참여한 ‘초강력 금연 법안’을 두고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단 의원 등이 금연 법안을 입법청원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 5일 이후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엔 이를 둘러싼 찬반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두동미서’라는 아이디의 당원은 “국민의 충분한 의견을 묻지 않고 손쉽게 법으로 다스리려 한다는 것은 파쇼적인 발상”이라며 “흡연자의 건강이 걱정된다면, 금연에 드는 비용과 금연 휴가법 제정, 금연 보조제 무상 지원, 정기 건강검진권 등 보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민주노동당, 민주국가다운 방식일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날개’라는 아이디의 당원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그것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민주노동당 의원이 법률로 억압적으로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하는것은 좀 이상하지 않느냐”며 “1900년 초기에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졌지만 결국 마피아의 성장만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단 의원은 적어도 사회주의자인줄 알았는데, 자본주의문화에, 자본주의 제도에 찌들은 그리고 파쇼를 신봉하는 부끄러운 민주노동당의 우리들의 의원이 되고 말았다”며 극단적인 표현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단 의원을 나치에 비유한 패러디물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이 패러디물에서 단 의원은 나치 복장을 한 채 “담배 피지마, 내가 피본께 별로 안 좋아”라며 말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금연법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che’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이준상 여수시지구당 위원장은 “금연법안발의에 나선 단의원의 용기에 감탄한다”며 “(나도) 며칠전 지구당사무실을 금연구역으로 선포하고 금연포스터를 부쳤다”고 단 의원의 입법청원을 지지했다. 그는 체게바라의 그림을 패러디한 금연포스터를 소개하며 “천식환자이면서도 골초였던 체게바라는 미국CIA에 의해 39세에 총살되었지만 더 살았더라도 담배 때문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연법’ 논란에 대해 단병호 의원측은 “당 게시판에 항의성 글이 올라왔을 땐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면서 “법안발의가 아니라 단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입법청원에 참여한 것임에도 사람들이 (법안발의를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아직 민주노동당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당론으로 결정하기 위해 토론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향후 논의에 따라 입장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노동자들의 건강권 지키기’ 차원에서 단 의원이 금연법 관련 활동에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단 의원의 입법청원으로 불 붙은 진보진영의 ‘금연논쟁’은 이미 지난 4월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이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운영의 한 축인 노동계가 금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권영길 의원 등도 박재갑 원장과의 면담에서 적극적인 입법활동을 고려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진보진영 운동권=골초’라는 등식이 진보진영에 의해 깨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담배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이를 어길 경우 최대 5년의 징역이나 5천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또 담배로 얻은 수익금은 모두 몰수되거나 추징된다. 다만 담배 경작농가와 담배 산매상 소득보전대책을 마련하고 담배에 부과되어온 지방세와 교육세를 대체할 수 있는 세원마련을 위해 법 제정 후 10년 후부터 효력이 발생토록 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라는 관용구는 10년 후엔 ‘사람들 담배 먹던 시절에···’로 바뀔 지도 모르겠다.
2004.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