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학 전문의 동기 모임 땜시 경주갔다오면서
시집 한 권 읽었는데 그 중 좋던 시 하나…
좀 길긴 한데…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울림을 남김

“순식간에 사로잡힌,
매혹당한 영혼은 죽음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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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눈

박형준

상여에 매달린 紙錢들, 희디흰 상여가 한척의 배가 미
끄러지듯 작은 돛을 달고 저편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남
자는 그저 멍하니 상여를 탄 여인이 손짓하며 부르는 걸
쳐다보았더랬습니다. 오토바이는 시동이 걸려서 고양이
의 목을 만지듯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남자는
상여가 자신의 몸을 덮치는 순간 여인의 몸속으로 사라
졌습니다.

건널목 위에 반쯤 걸려 있던 오토바이와 함께 사내의
몸은 무서운 속도로 찢겨졌습니다. 철길의 나무들은 반
대쪽으로 가지를 구부리고, 흰꽃을 무수히 피워내고 있
었습니다. 사내의 반쯤 날아간 얼굴 한쪽이 그 나무의
가지에 걸렸습니다. 붉은 살점이 얼룩덜룩 나무의 꽃을
수놓고, 그 사이로 나무는 무섭도록 크다란 계란 모양의
눈으로 철길을 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흰 상여가 덮치
는 순간 그대로, 태양보다 희고 노릇노릇한 여인의 얼굴
에 서린 그늘을 보고 있습니다.

오토바이의 바퀴가 달빛에 녹슬고,
사내가 낀 검은 장갑이
철길 아래 물소리에 젖고
절정의 순간 그대로
부릅떠진 채
나무에 매달려서
흰꽃 속에 묻힌 눈알은 영원히
같은 장면을 되풀이해서 바라봅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건널목을
순식간에 사로잡힌,
매혹당한 영혼은 죽음을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