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원청사-건설일용노조 단협 일부 인정

의무는 없으나 체결 가능…금품갈취 혐의는 인정

원청 시공업체와 다단계 하도급을 거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조직된 건설일용노조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정당성을 법원이 일부 인정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대전지방법원 형사4부(재판장 손왕석)는 지난달 15일 금품갈취, 공갈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전충청지역건설산업노조 이성휘 위원장 등 간부 6명에 대한 2심 판결에서 “노조 전임에 관한 사항은 일용노조에 대한 편의제공의 형태이기 때문에 의무는 없지만 원청 사용자가 협약을 체결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재판부는 “원청회사와 건설일용노동자가 직접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더라도 노무제공, 작업환경, 근무시간 배정 등을 결정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를 하는 지위에 있는 경우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조가 △원청회사에 기본적인 조합원 수, 명단 등 노조 실체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점 △단협 체결을 거부할 경우 산업안전법 위반 고발 등의 위협을 가한 점 △노조 전임자와 사용자 사이에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통상적인 단체교섭 기준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징역 10월~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던 원심판결을 깨고, 징역 6~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검사가 항소한 상습공갈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동안 대전, 경기서부, 천안 등의 지역건설노조들은 단협 체결 의무가 없는 원청회사와 단협을 체결하고 노조 전임비를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부터 ‘금품갈취, 공갈협박’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왔다.

지난 2월 1심에서 대전지법 형사5단독(재판장 오민석)은 “단체협약 체결 의무가 없는 원청업체에게 체결을 요구하며 압력을 행사한 점이 인정된다”며 “일용노동자 근로조건 보장을 위해 반드시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각종 법 위반 사항을 노동부에 고발해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단협 체결 자체를 불법으로 판정했다.

노조쪽 변호를 담당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원심보다는 단협을 일부 인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판결이지만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여전히 부당하다”며 “항소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선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공인노무사)은 “법원이 집단법상 원청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며 건설업 뿐 아니라 제조업 사내하청 등에서 만연하고 있는 불법파견 근절을 위해서라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