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처럼 일해요~ 하루종일! 밤새도록!”

벤처 대박 꿈에 신음하는 IT노동자들…주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 ‘예사’

어떤 회사는 사장이 침대를 보여주면서 ‘우리 회사는 침대도 있어. 가족처럼 같이 일하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커피도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사장이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사장이 말한 ‘가족처럼’은 단란하게가 아니라 가족처럼 하루 종일 같이 있자는 뜻이었던 거예요.”

임아무개씨(32·하드웨어 개발)의 말이다. IT업계는 이런 ‘가족’같은 분위기가 팽배해 있단다. 회사에서 숙식과 취침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가하면, 어떤 곳은 계약할 때부터 옷가지를 모두 싸들고 오라고 일러주기도 한단다.

▲ 일러스트 = 이창우

IT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주당노동시간은 약 57.9시간, 80시간 이상의 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위원장 정진호·IT노조)가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IT업계 노동자 1,081명을 대상으로 실시, 14일 발표한 ‘정보통신산업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전체 응답자의 43.4%, 80시간 이상의 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7.6%에 달했다.

그런데도 시간외근무수당을 받는 비율은 8%에 그쳤으며, 퇴직금 지급비율은 40%, 연월차휴가 사용비율은 20~30% 수준에 불과했다.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맡기는데 개발시간이 6개월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를 회사 쪽에서 3개월이나 4개월로 확 줄여와요. 영업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일을 더해야 하는 거죠. 전 1월1일에도 집에 있어본 적이 없어요. 회사에서 밤샘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바뀌어 있었어요.” 손 아무개씨(35·프로그래머)의 말이다.

국내 SI(system integration·시스템 통합서비스)분야는 삼성 SDS, LG CNS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선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기업 계열사들이 그룹내 SI업체를 통해 물량을 발주하는 것이 관행화돼 타 업체는 발주조차 받기 힘든 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계 SI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기 위해 과다 경쟁을 벌이다보니 이같은 현상이 불거지는 것이다.

손씨는 “프로젝트가 갑을병정 내려가면 가격이 많이 깍여요. 그래서 맨밑의 경우는 거의 공짜로 해주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라도 해서 참고사이트라도 돼야 한다고. 그러니까 직원들의 월급은 말할 것도 없죠”라고 말한다. 정진호 위원장도 “IT업계에서는 하도급이 워낙 심하다보니 ‘갑을병정까지만 껴도 좋다. 무 이하만 되지 마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며 “심지어는 6, 7단계 하도급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A사의 경우 97년에는 하도급업체 170개, 하도급 노동자는 1,300여명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400개, 4,000여명으로 급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하도급업체의 도급계약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 SI업체들은 10여개의 전략적 협력업체만 두고 그 외 하도급업체와의 거래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 SI업체와 거래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협력업체를 통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성된 3차 하도급업체들은 낮은 단가는 물론이고, 손해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김아무개씨(34·프로그래머)는 “저희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중국에 출장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프로젝트 오픈하기 전날이었는데, 그 전날까지 밤을 샜다는 거거든요. 원청업체에서 보상을 해야 되는데 우리 회사에서 보상을 해야 했어요. 우리 회사에서도 장례식 비용 같은 것은 지불하지 않고 법적인 조치만 취하고 마무리 지었어요. 일은 원청이 다 시켜놓고 자기들은 책임 없다는 거죠”라고 털어놨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IT분야 노동자의 근속년수는 평균 3.8년이지만 현 직장 근속년수는 평균 1.42년에 불과했다. 직장을 옮긴 이유로는 회사의 도산과 임금체불 등이 42%로 가장 많았고, 해고는 3%에 불과했다. IT업계의 하도급 구조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손씨는 이보다 더 큰 문제를 지적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쪽에서 회사 하나 차릴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어요. ‘나는 노동자가 아닌 특별한 엔지니어’라는 거죠.”

정 위원장은 “이번 실태조사는 IT분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근거 자료를 마련하는 기초 작업일 뿐”이라며 “IT분야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지혜 기자 sagesse@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