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돈 없어 병을 키우고 있어요”
성수동사람들, 영세노동자 70여명 무료 특수검진 실시
“인쇄물을 코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종이더미를 나르다보니 어깨 결림이나 허리 통증이 심한 편입니다. 너무 아플 땐 개인 돈을 들여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 게 치료의 전부입니다. 건강 직장보험은 적용받지 못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지역보험에 가입했는데, 보험비 부담이 만만치 않네요.”(김진삼씨·41)
“인쇄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3명의 직원이 하루 10시간씩 근무하는데, 작업장 내 먼지와 소음, 잉크냄새 때문에 항상 머리가 아픕니다. 회사가 작아서 그런지 보험 적용도 안 되고, 현재는 지역보험에 가입한 상태입니다.”(이아무개씨·54)
ⓒ 매일노동뉴스
영세노동자, 유기용제·근골격계질환 노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는 인쇄, 제화, 금속업 관련 영세사업장이 밀집돼 있다. 이 지역 노동자들은 특히 솔벤트, 접착제, 페인트, 시너, 잉크 등 유기용제에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에 두통이나 어지럼증 등의 만성 질환에 고통받고 있고, 종이나 가죽 등 무거운 짐을 수시로 나르는 경우에는 어깨 결림이나 허리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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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성수동사람들(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서울본부, 서울지역일반노조, 서울경인인쇄노조, 성동건강복지센터)’은 지난 16, 17일 이틀에 걸쳐 ‘영세노동자를 위한 무료특수검진’을 진행했다.
이번 건강검진은 작년에 이어 2번째로 실시됐으며, 70여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성동건강복지센터를 다녀갔다.
행사 기획에서부터 진행 전반을 맡은 ‘성수동사람들’의 스즈키아키라 상임활동가는 “법으로는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도록 돼 있지만, 이들 1~50인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제도 밖 ‘건강권의 무권리’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며 “심지어 건강보험도 직장보험이 없어 지역가입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보건의료서비스와 작업환경 개선 문제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며 무료검진을 실시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노동자 건강권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
검진이 진행되는 내내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혹은 직장 동료와 함께 성동복지센터를 찾았다. 인쇄공장 노동자, 종이박스제작 노동자, 화물차 운전 노동자, 플라스틱 사출 노동자 등 이들 대부분이 영세사업장 종사자이거나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지역보험을 따로 들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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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노동자들을 직접 검진한 이상윤(의사·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씨는 “많은 노동자들이 유기용제 사용에 따른 어지럼증이나 구토 등을 호소했고,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유기용제에 오래 노출되면 신경계질환을 동반해 손·발 저림이나 신경마비까지 올 수 있으며, 여성의 경우 질 출혈, 월경 불순 등 생식계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또 “검진을 받으러 온 노동자 대부분이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상황이라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고, 보험료도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하는 상황이라 5만원이 넘는 건강검진을 따로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노동자들의 건강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하루빨리 책임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틀간 진행된 검진 결과는 오는 29일 발표되며, 이는 영세사업장 작업환경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노동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스즈키씨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곳은 노동부 같은 국가 기관이지 우리 같은 시민단체가 아니”라며 “이번 검진 결과를 토대로 노동부가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끝까지 요구할 작정이” 라고 말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