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 뼈빠지게 일해도 쥐는 것은 쥐꼬리 월급”
(CBS연속기획) 열악한 노동환경에 장시간 노동에 무너지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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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정보통신의 최강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국내 노동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아직도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다.

CBS 연속기획 ‘우리시대의 전태일, 영세노동자들의 삶과 희망’, 첫 번째 시간으로 본드 중독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영세 제화노동자들의 실태를 살펴본다.

제화업체 밀집지역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는 국내 수제화 생산량의 절반 정도가 생산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 직원은 10명 안팎으로 규모가 영세하다. 그 가운데 한 제화 사업장을 찾아가 봤다.

30평 남짓한 공장 안에는 가죽재단용 재봉틀을 비롯한 기계들과 가죽, 완성된 구두들이 뒤엉켜 그야말로 난장판일 수 밖에 없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 열다섯 노동자들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본드와 세척제 등 각종 유기용제와 먼지로 뒤덮인 공장 내부는 환기시설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서 숨쉬기조차 힘이 들었다.

제화 노동자들은 이 곳에 오전 8시쯤 출근해 밤 11시까지 햇볕 한 줌을 제대로 쬐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한 노동자는 “아침에는 사실 일어나기가 지옥 같다”며 “오늘 나가면 몇 시까지 일해야 되겠구나 생각하면 일어나기가 싫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그나마 일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수십 년 째 제화 노동자로 살면서 가족까지 부양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용직이어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큰 고통이기도 하다.

한 노동자는 “일이 없을 경우, 그럴 때는 몇 시간 또 일 안하고 수입이 또 적어지는 것인 제일 큰 문제다”고 밝혔다.

오전 8시쯤 출근해 밤 11시까지 햇볕 한 줌 못 쬐고 일

자연히 노동자들의 건강이 말이 아니다.

본드냄새와 먼지가 자욱한 닫힌 공간에서 장시간에 걸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에게 건강한 몸은 사치로만 보였다.

먼저 걱정이 되는 것은 본드와 세척제 등 각종 유기용제에 의한 중독이었는데, 정작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 노동자는 “냄새가 많이 나는데 몇십 년 하다 보니까 사실 잘 모른다”며 “그런데 3,4일 쉬다 나와서 일을 하다보면 몽롱해서 오후까지는 일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장소에서 몸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을 견뎌야 하다보니 만성적인 소화 장애를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노동자는 “위장 안 좋고 속 안 좋은 건 다 마찬가지다”며 “식사하고 바로 일하니까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피로가 누적돼 있으니까 소화기관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제화노동자들의 작업은 분화돼 있어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동작에 따른 직업병을 앓고 있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직업병의 일종이다”며 “맨날 한 동작만 반복하다보니까 어깨 인대가 늘어나서 병원에서 한 한달 동안 치료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본드냄새와 먼지가 자욱한 닫힌 공간에서 장시간에 걸친 노동

문제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당국이 손을 놓고만 있다는 사실이다.

성동구 성수동 일대의 영세 제화업체 노동자 수는 어림잡아 4,5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수천 명에 이르는 노동자의 문제를 발벗고 해결해야 할 근로감독관의 수는 단 2명 뿐이다.

자연히 현장 조사라든가 전체적인 현황파악은 애초에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관할 노동사무소측은 문제를 파악하고 나서서 개선을 하기는 커녕 접수되는 사건 처리를 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노동사무소 관계자는 “인원이 부족하다보니까 예방차원의 점검이 안 되고, 사건이 들어오면 그것에 대해 처리를 하니까 좀 부족하다고 봐야한다”고 밝혔다.

결국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열악한 환경에 갇힌 노동자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는 수천명인데 근로감독관의 수는 단 2명

이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가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노동자를 외면하면서 이들은 자체적으로 근로감독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명예근로감독관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노동자 가운데 ‘명예근로감독관’을 뽑아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제화노조 이해삼 지도위원은 “명예근로감독관제도 도입이 근로감독관 수가 부족해 영세업체에 대해 감독을 못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명예근로감독관제도가 법제화된다면 노동자 스스로가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관리감독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대기업과는 달리 노조의 보호에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영세업체 노동자들.

이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부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효율적인 제도의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CBS사회부 김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