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근골격계 처리지침안 폐지돼야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마련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안)’이 근골격계질환 인정과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며 기고글을 보내왔다.<편집자주>

지난 96년 KT(구 한국통신)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적인 근골격계질환 인정투쟁과 99년 현대자동차 5공장(구 현대정공 울산공장)의 근골격계질환 투쟁이 모태가 돼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의제화가 동시에 진행되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이 투쟁을 통해 작업현장 곳곳에 만연해 있는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의 문제점과 그 심각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인정기준은 까다롭게 치료기간은 짧게

최근 경총에서는 ‘근골격계질환 나이롱 환자’ 운운하며 이제 겨우 어려운 장벽을 넘어 요양에 들어가 있는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며 아픈 것도 서러운 노동자들을 중상모략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러한 근거를 전제로 노동부에 ‘특단의 조치’를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그 결과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형식으로 살펴볼 때 고작해야 처리지침일 뿐인 이 안은 법률 이상의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리지침안’의 주요 내용은 ①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인정 역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주치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요구한다 △퇴행성질환, 과거 질환 등은 배제한다 △엄격한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일상생활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조사한다 △인정 여부에 대해 자문의의 권한을 증대한다.

②산재 요양기간이 너무 길다. 따라서 △입원기간을 줄인다 △총 요양기간은 대한의사협회의 진단서 작성 지침을 참고한다(통상 1주~12주) △요양기간 결정에 자문의의 권한을 증대한다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결국 우리나라 근골격계 직업병 환자가 너무 많은데다가 아프지도 않으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나이롱 환자들이 쉽게 직업병 인정되고 있으니까 인정기준을 까다롭게 만들어서 환자를 줄여나가고, 치료기간이 너무 기니 강제로 줄여서 빨리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근골격계질환자 적절한 치료 못 받는 현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근로복지공단의 직무유기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면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해결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노동부의 ‘처리지침안’은 문제인식에 있어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정말 우리나라에 근골격계질환자들이 많은가. 답은 ‘아니다’. 둘째, 근골격계질환자들의 요양기간이 긴 이유가 나이롱 환자들 때문인가. 답은 ‘아니다’. 셋째, 인정기준을 ‘처리지침안’처럼 적용하면 제대로 근골격계질환자를 구분해 낼 수 있는가. 답은 역시 ‘아니다’.

즉, 우리나라의 근골격계질환자의 규모는 영국에 비해서는 1/15수준에 불과하며 미국에 미하면 도저히 비교자체가 어려울 정도이다. 우리나라보다 제조업 의존비중이 더 낮은 국가들인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의 근골격계질환이 많다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다.

또한 근골격계질환자들의 요양기간이 긴 것은 치료 후 현장에 복귀하기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낫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환자들은 의료기관에서 과소, 혹은 과잉진료를 받고 있다.

의료진들은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돈을 좀 벌려면 차라리 수술을 하는 게 더 낫다. 입원기간 수개월 동안 의사 얼굴 한 번 제대로 못보고 달라진 치료 한 번 못 받아보는 게 근골격계질환 노동자들의 실태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제거해야 할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런 것이다. 게다가 퇴행성질환,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질환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근골격계질환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신체 국부만을 과도하게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 근골격계질환이라면 30대의 젊은 노동자도 퇴행성질환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노동자는 근골격계질환자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평소에 질환 예방을 위해 테니스나 헬스, 각종 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평소 생활 때문에 요양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

이런 현실성도 없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처리지침안’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인 근골격계질환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요양을 보다 쉽고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기관을 강제해내는 것이 근록복지공단과 경총 그리고 정작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너무도 바라는 짧은 요양기간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다.

‘처리지침안’은 특히 내년 신년 벽두부터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될 산재보험 민영화를 앞두고 보다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수순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도대체 정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얼마나 더 훼손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가.

임상혁 직업성근골격계질환센터 소장 shim@greenhospit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