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공동투쟁 예고 운수노동자들의 외침 ①
‘죽음의 대기표’ 들고 출근하는 철도노동자들

24시간 맞교대 고된 노동, 인력부족 죽음으로…“사람 있어야 사람 안죽어”

철도노조가 12월3일 파업을 예고하는 등 철도, 택시, 화물 운수공투본 3개 조직의 파업을 비롯한 총력투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30일자부터 3회에 걸쳐 현장에서 만난 운수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절박한 요구가 무엇인지 담아본다.<편집자주>

지난 26일 오후 5시30분 철도청 서울시설사무소 구로선로반 사무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샤워 차례를 기다리는 선로반원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철도청 시설직으로 입사하기 위해서는 길이 8m50cm의 선로를 들었다가 놓아야 1차 실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철도시설직들의 고된 노동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구로선로반의 직원은 총 6명. 입사 8년차인 심아무개씨가 입사했을 때는 총 15명이었다고 한다. 절반 넘게 줄어든 셈이다. 인력이 줄어든 만큼 작업의 효과도 줄어들었지만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이 때문에 1년 전부터는 이웃에 있는 시흥선로반과 서로의 담당구역을 번갈아 오가면서 합동작업을 하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죽음 앞에 선 선로보선 노동자들

구로선로반원들도 며칠 전에 발생한 수원시설관리사무소 권진원씨의 사망소식을 알고 있었다. 혼자서 1주일을 철야근무했다는 권씨는 급한 곡선으로 이뤄진 방음벽 때문에 달려오는 열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열차가 오는 것을 알려줄 감시조도 없었다.

지난해에는 구로-신도림 곡선구간에서 외부 공사업체 인부가 열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어 시신을 수습하던 기관사가 다른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은 철도청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구로선로반원들도 “곡선구간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많이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이들이 일하는 구간은 서울-수원, 서울-인천간 전동차와 호남선, 장항선, 경부선 열차가 다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열차 통행횟수가 가장 많다. 그래서 급한 곡선 구간에서는 열차 감시조를 적어도 두 명은 세워야 한다.

“작업 나가면 수장(선로반장)들은 빠지고 한 명이라도 감시조 세워야 하니까 이래저래 인력이 부족하다. 본연의 업무인 선로유지보수 일도 제대로 못한다. 사람을 더 투입해야 한다. 최소한의 감시조를 세우고 일을 하려면 절대적으로 인력이 더 필요하다.” 입사 13년차의 송아무개씨는 “인력을 늘려줘야 한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감시조가 없더라도 달려오는 열차 소리를 듣고 피하면 되지 않을까. 선로반원들은 “직접 선로에서 일을 해보라”고 말한다. 일을 하다보면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더욱 황당한 것은 속도가 가장 빠른 KTX가 소리는 가장 작다는 사실이다.

저녁 6시가 넘자 선로반원들은 시계를 힐끔힐끔 보기 시작했다. 수장 최충복씨는 “평소보다 조금만 늦게 퇴근해도 사고가 난 줄 알고 가족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급히 사무실을 나갔다.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3조2교대 하면 뭐하나, 지정휴일도 없이…”

저녁 8시께 구로차량사무소. 급한 검수 및 정비차량이 줄어든 시간이어서 그런지 노동자들은 노조 사무실이나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구로차량지부 사무실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황윤석씨는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니 친구들도 없다”고 말했다.

24시간 근무 뒤에 오는 24시간의 휴식시간은 ‘수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개인적인 취미활동 등은 꿈도 꾸기 힘들다. 다른 지하철공사 노동자들이 모두 사용하는 ‘지정휴무’도 철도 노동자들에게는 없다.

오직 하루 근무, 하루 휴식의 일상만 반복될 수밖에 없고 명절도 없다. 열차 운행이 늘어나는 명절에 연가를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 때문에 황씨는 명절연휴에는 고향집에 두 번이나 내려간다고 한다. 쉬는 날에 가족들을 고향에 데려다 주고 올라왔다가 하루 근무한 뒤 다시 쉬는 날에 내려가 가족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온다는 것이다.

황씨는 “우리나라에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소방대원들과 철도노동자들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철도노동자들의 근무형태를 보면, 전체 3만161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만3,937명이 24시간 맞교대 근무자들이다.<표1 참조>

< 표 1 – 철도노동자 근무형태>

전체 통상근무자 24시간 맞교대 근무자 교번근무자
30,161 9,635(31.9%) 1만3,937(46.2%) 6,589(21.8%)

황씨 옆에 있던 이수엽씨는 1년여 전 철도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3조2교대 근무에 한 달간 참가해 본적이 있다.

“지하철공사처럼 지정휴일은 주지 않고 근무형태만 진짜 3조2교대로 했다. 하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퇴근 이후 시간활용면을 본다면 말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이씨는 그러나 “철도청에서는 내년 1월부터 3조2교대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인력충원 계획이 없어 노동강도가 약화된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경력 10년차인 이씨가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13명씩 9개조가 있었다. 반면 지금은 7명씩 7개조로 줄었고 차량은 꾸준히 늘었다. 이 상태에서 철도청 입장대로 인력충원없이 3조2교대를 하게 되면 팀장급 등 관리자만 늘어나고 1개조당 현장투입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업무 집중도도 떨어진다. 결국 검수주기를 줄인다는 대책만 철도청에서 나오는 것이다.

철도노조는 2002년 2·25 합의에 따라 진행된 노사공동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3조2교대 전환에 필요한 5,215명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철도청은 최근 본교섭에서 1,300명 증원을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철도청은 지난 96년 이후 퇴직자 발생 후 신규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식의 자연감소를 통해 7,700여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최장의 노동시간, 최고의 사망률

저녁 9시36분에 수색차량기지를 출발한 목포행 무궁화열차 기관차. 기관사 김운만씨와 부기관사 강철씨는 다음날 오전 0시5분에 서대전역에서 다른 기관사들과 교체할 예정이다. 그리고 오전 6시20분에 다시 서대전역에서 운전대를 잡고 9시45분에 수색차량기지에 들어가게 된다.

운전 전후 준비와 정리시간을 합친다면 평균 14시간을 일하게 된다. 김씨와 강씨의 평균 승무시간만 본다면 한번 출근할 때마다 왕복 5시간30분에서 8시간이다. 객차를 운전하는 두 사람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김씨는 “화물차를 모는 동료들은 12시간 운전하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는 월 승무시간이 지하철 기관사들보다 30~50시간 더 많다”고 말했다.

기관사들 역시 지정휴무는 없다. 오전이면 오전, 저녁이면 저녁에만 출근해서 비번이 정기적으로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출근시간조차도 오전이었다가 저녁으로 바뀌는 등 매번 불규칙하다.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 노동자들의 월평균 근무시간(2003년 철도노사 경영진단 최종보고서)이 182.5시간인데 반해 철도노동자들은 270시간에 이른다. 일본과 프랑스 철도노동자들은 각각 152시간과 122시간이다.<표2 참조>

<표 2 – 철도청 월 근무시간 비교> (단위 : 시간)
철도청 서울
지하철 도시철도
공사 인천
지하철 부산교통
공단 대구
지하철 일본(JR) 프랑스
(SNCF) 스웨덴(Benverket) 독일
(DBAG)
270 182.5 182.5 180 192.6 187.5 152 122 150 165

철도노사 경영진단 최종보고서 2003.11

부기관사 강씨에게 시설직 동료들의 잇따른 사망사고 대책에 대해 물어봤다. 대답은 구로선로반 송씨와 같았다. “달리는 열차가 그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들이 피할 수밖에 없는데 열차가 오는 것을 감시할 사람들이 부족한데 어떻게 하나. 사람을 늘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기관사 김씨는 7년전 안개 속에서 민간인이 자신의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를 겪은 뒤 한동안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1945년 해방이후 2003년까지 근무도중 사망한 철도청 노동자들은 2,322명에 이른다. 사망만인율(총직원수/사망재해*10,000)을 보면 경찰공무원이 0.45명, 소방공무원이 0.9명인데 반해 철도청의 경우 무려 2.76명이다.

“저희 남편은 기관사인데요. 두 달이 채 못 돼 사고를 두 번 냈지 뭐예요. (중략) 온몸이 조각나 얼굴이 어디고 다리가 어딘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처참했다지 뭐예요. 겨우 주머니를 뒤져 신분을 확인해 보니 58년생 두 아이의 가장이더랍니다. (중략) 남편은 이 짓을 더해야 하냐며 울부짖었습니다.” <삶이 보이는 창> 8호에 실린 글

“올해만 벌써 8명째다. 하루하루 죽음의 행렬이 길어질수록 감각도 무뎌져 아무 생각없이 근조리본을 찾는다. … 인력충원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여전히 동료들은 열차에 치여 죽고, 과로로 쓰러져 죽고, 죽음의 대기표를 들고 오늘도 철도현장으로 출근한다.”(수원시설관리사무소 권진원씨 사망 뒤 노조 홈페이지에 실린 글)

김학태 기자 tae@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