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돈 많이 주는 것 아닌가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 교육현장…‘취업교육’ 2박3일 내실 부족
지난 8월17일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합법적 신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속속 한국 땅을 밟고 있다. 기존 산업연수생제도가 안고 있던 노동자성 불인정, 저임금·장시간 노동, 인권침해, 송출 비리 등 각종 폐해를 보완하고자 마련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미 7,272명(11월 현재, 노동부)이 ‘연수생’이 아닌 ‘노동자’의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으며 12월까지 4천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지난 23일 사업장 배치를 앞두고 사전 취업교육을 받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여주에 있는 한국국제노동재단 교육원을 찾았다.
ⓒ 매일노동뉴스
“한국사람들만큼 돈 벌고 싶어요”
“안녕하쎄요.”,
“캄싸합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 노동자들을 위한 취업교육 현장. 발음은 서툴지만 한국어 수업에 임하는 베트남 노동자들의 표정만은 사뭇 진지하다.
이날 취업교육에 참가한 베트남 노동자는 총 71명. 이들은 2박3일에 걸쳐 20시간의 취업교육을 받은 뒤 앞으로 3년 동안 일하게 될 사업장으로 배치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 합법 ‘노동자’로 일하게 될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응오 만 카이’(37)씨는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다소 들뜬 표정으로 한국에 온 소감을 전한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시멘트 공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다가 한국에 오게 된 카이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오면 한국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며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기 원한다”고 말했다.
스무살을 갓 넘은 ‘도 민 응이아’(21)씨도 카이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장일, 공장일 등을 전전했다는 그는 “3년 동안 열심히 돈 벌어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낯선 땅을 밟은 베트남 노동자에게 고용허가제는 ‘돈 많이 벌게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 쯤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업장 이동권 제한 등 고용허가제의 실질적인 내용은 크게 신경쓰지 않은 분위기다. 교육원에서 베트남어로 한국어 및 노동관계법 등을 가르치고 있는 이은주씨는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참고 견디자는 각오를 하고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며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며 그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는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잘 몰라요”
교육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정작 고용허가제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제도 도입 초기라는 한계도 있지만 교육이 미비하다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박스 참조>
김종각 한국국제노동재단 교육부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를 잘 모르는 것은 ‘해치우 듯’ 진행되는 취업교육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에서 150시간, 한국에서 20시간의 취업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내실 있게 진행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현재로써는 ‘취업교육’에서 제 기능에 충실하기 보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을 줄여주기 위한 ‘완충작용’으로서의 기능이 더 크다”며 “외국인 고용 사업주가 교육비 일체를 부담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교육 일정 확대’ 등의 대안을 찾기에는 현실적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현실 적응을 하지 못할 경우 자칫 미등록(불법체류)이주노동자로 전락,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부 또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제2의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아온 이주노동자들.
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한 충분한 인지 없이 ‘돈을 많이 벌어 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사업장에 배치됐을 때, 인권침해 등 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실제 응이아씨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이곳 교육원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라고 들었다”고 답했다. 자신이 어떤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급증함에 따라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이들의 노동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오랜 논란 끝에 도입됐다. 법통과 때부터 사업장 이동의 자유 금지, 산업연수생제도 병행, 미등록(불법)이주노동자 문제 등으로 고용허가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새로 도입된 고용허가제로 모든 이주노동자가 ‘코리안 드림’을 이뤄내지는 못하겠지만 노동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지 않을까.
이주노동자들 어떤 교육 받나?
한국어·산업안전 등 2박3일 일정…‘보여주기 식’ 교육에 그쳐
한국국제노동재단 교육원에서는 베트남과 몽골 노동자를 대상으로 취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취업 교육은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어 △한국문화 △고용허가제·근로기준법 등의 노동관계법 △산업재해 안전교육 및 산업실습 등이 진행된다.
이들 노동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단연 한국어 수업. 사전 교육(자국에서 150시간)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간단한 인사말을 구사하는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 이들은 교육원 교육을 통해 사업장에서 꼭 필요한 어휘 위주로 반복 교육을 받는다.
이은주 교육원 교사는 “교육시간이 짧아 내실 있는 교육은 사실상 힘들다”며 “한국어 교육은 ‘아프다’, ‘위험하다’ 등 꼭 필요한 단어나 문장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 다음으로 산업안전, 산업실습 등의 교육을 선호한다고 한다. 모든 노동자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주노동자에게 산업재해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교육에서는 주로 안전모, 마스크, 안전장갑 등 보호구 착용의 필요성과 착용법 등을, 산업실습교육에서는 공구 및 각종 기계 사용법 등을 배운다. 하지만 이 역시 교육시간이 짧은 관계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각 국제노동재단 교육부장은 “밀링, 선반, 연마기 등 실습에 이용되는 기계의 작동법을 제대로 배우려면 기계 한 대당 최소한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면서 “비용과 시간의 부담으로 ‘보여주기’ 식의 교육에 그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 자국에서 150시간 한국어 등 비슷한 내용의 교육을 받고 오지만 체계적이지 못해 한국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