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인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오늘부터 다시 건설 현장에 나가 열심히 일하자고 약속했었는데….”
9개월 동안 낯선 땅에서 동고동락해 온 동료를 갑자기 잃은 슬픔에 우즈베키스탄인 J(34)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먼 이국 땅에서 땀 흘려 번 돈을 갖고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큰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하고 한 외국인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일 오전 7시께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B주택 지하1층에 있는 좁은방에서 외국인 노동자 이가모브 일홈존(EGAMOV ILHOMZON·31)씨가 이불을 덮어쓴 채 숨져 있는 것을 같은 방을 쓰는 동료 J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J씨는 지난달 15일 이후 건강이 나빠져 일터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이가모브씨와 이날부터 근처 공사현장에 다시 나가기로 약속하고 그를 깨우려던 순간이었다.
이가모브씨는 지난 2월말 산업연수생으로 우즈베키스탄 동료들과 한국에 들어온 뒤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힘든 노동일로 월 60만원 정도를 받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해 왔다.
특히 그는 건설 현장에서 낙천적 성격으로 말도 잘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 동료 인부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허약했던 이가모브씨는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피부병이 심해 약을 자주 복용해 왔고 몸살 감기에 자주 걸리는 등 잔병치레가 많아 일을 못나가는 날이 잦았으며 지난달 15일 이후에는 건강악화로 줄곧 집에서 쉬고 있었다.
더구나 힘들고 외로운 타향살이에 “어서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이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돌아가고 싶다”고 동료들에게 자주 털어놨다고 한다.
김봉구 대전외국인노동자종합지원센터 소장은 “불법으로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노동자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외국인노동자들은 병에 걸려도 그냥 참아 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이들의 의료인권 위해 좀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점과 의사소견 등을 토대로 이가모브씨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대전=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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