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불안장애 기관사들
“도시철도공사는 서울시 투자기관의 경영평가 3년 연속 1위(‘97∼’99)를 차지하는 등 촉망받는 공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중간생략).. 인력은 현재 6천여명으로 km당 41명으로 뉴욕의 71명, 파리 78명, 동경 63명 보다 훨씬 적어 최소의 정예화된 인력으로 운영하며 국내최초로 열차 1인 승무제 시행 및 전동차 정비, 시설물 보수 등 많은 분야에 외부용역 제도를 도입하여 인력절감과 경영합리화를 도모하고 있다.”

원래 2인 승무제였던 지하철에 도시철도공사(서울지하철 5-8호선)가 ‘경영합리화’라며 1인 승무제를 도입한 것은 1998년.

5년 후인 2003년 8월 17일 지하철 6호선 증산역 부근에서 도시철도공사(서울지하철 5-8호선) 기관사 서모(35)씨가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서씨는 근무를 마치고 열차에서 내려, 터널 선로위를 걷고 있다가 마주오던 전동차를 향해 뛰어들었다. 94년 기관사로 입사한 이래 4년이 지나자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생긴 그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 왔다.

다시 8월 30일 휴직중이던 기관사 임모(35)씨가 업무복귀를 한달여 앞두고 고향인 여수 돌산대교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임씨 역시 94년 도시철도공사에 입사해 2001년 7월부터 환청 등의 증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휴직기간 그는 증상이 좋아졌다가도 복직날짜가 다가오면 병세가 악화되어 세차례나 복직을 포기했었다.

ⓒ민중의소리

두 기관사의 증세는 ‘공황장애’로 판명되었다. 공황장애는 갑자기 불안이 엄습하고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며 심장이 두근대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등의 증세를 보이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고위험 스트레스군 38.9%

서민권 씨가 사망할 당시, 공황장애와 지하철 기관사라는 직업과의 연관성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임채수 씨가 사망하고 연이어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기관사들이 발견된다. 2004년 1월 근로복지공단은 도시철도 기관사 허모(33)씨가 공황장애를 이유로 낸 산업재해 신청을 받아들였다. 허씨는 2003년 9월 전동차를 운전하던 중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고 구토증세를 느끼며 열차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껴 병원을 찾은 결과 공황장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공황장애’가 직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신종직업병임이 인정된 것이다.

“기관사△△△은 입사당시 건강했고 특별한 정신과적 과거력이 없으나 입사 이후 밀폐된 지하공간에서의 업무와 사상사고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발작이 유발되었다고 판단되어 공황장애는 업무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 산재가 승인된 기관사△△△의 전문의 소견서 –

공황장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기관사들에게 있어서는 밀폐되거나 복잡한 공간에서의 작업 등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이 유인이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황장애 뿐 아니라 적응장애, 불안장애 등 많은 기관사들이 정신건강을 훼손당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판정이 난 사례만도 서울도시철도에서만 13명이다(04년5월). 도시철도공사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2004년 산업안전공단 직무스트레스 조사결과에서는 조사대상 729명 중 ‘불안장애로 인한 정밀검진 유소견자’는 115(16%)명에 이르렀다.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정신건강권 훼손사례 (04년5월) ⓒ민중의소리

2003년 5월 실시된 ‘도시철도노동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는 충격적인 결과를 던진 바 있다. 전체 도시철도노동자 중 정신건강 상태가 양호한 “건강군”은 2.3%에 불과했으나 각종 질병의 위험이 있는 “고위험 스트레스군”은 38.9%에 달했다. 특히 기관사의 경우 고위험 스트레스군이 40%를 넘었다.

기관사들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 요인을 대략 △과중한 사고부담 △컴컴한 지하터널에서의 장시간 운전 △불규칙한 교대근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 △일상적인 현장통제로 인한 스트레스 △1인 승무제 등 여섯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1)16.4%가 사상사고 경험

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들 중 13.5%는 거의 매일 출입문사고를 경험하며 90%이상이 전동차고장을 한번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16.4%는 사상사고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이상은 2회 이상의 중복경험이다. 잦은 사고로 인해 기관사들은 승강장에 진입할 때나 전동차 문을 닫고 출발할 때 등 사고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사소한 열차고장에도 숨이 막힐 듯 긴장하게 된다고 기관사들은 말한다.

2)하루 5시간에 이르는 지하터널 운전

두 번째, 기관사들은 컴컴한 터널속에서 1근무당 5시간을 운전하고, 1계속운전시간이 길게는 3시간에 달한다. 160km에서 190km에 이르는 거리를, 컴컴한 터널에 박힌 형광등 불빛만 보면서 달리는 것이다. 1인승무로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음 역에 들어설 때까지의 초조함만을 느끼다가 승강장에 들어서면 다시 긴장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기관사들은 2분마다의 긴장상태를 하루에도 최대 100번 가까이 경험하게 된다. 정신건강과 직접연관은 없지만 지하터널이라는 작업환경에서 오는 호흡기증상과 눈, 청력 등의 이상도 물론 심각한 수준이다.

△도철노동자의 입사후 시작된 증상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2003.9)

3)불규칙한 교대근무가 생체리듬 파괴

불규칙한 교대근무는 기관사들의 짧은 휴식마저 방해함으로써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다. 기관사들은 열차시간에 따라 출퇴근·수면·식사 시간이 매일같이 다르다. 어떤 날은 새벽에, 어떤날엔 저녁에 출근하는 이 생활은 기본적인 생체리듬을 파괴한다. 때문에 기관사의 80.6%가 하나 이상의 수면장애(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잠들 수 없고, 깨어있고 싶은 시간에 졸음이 오는 증상)증상을 겪는 결과가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전체 도시철도공사의 노동자의 71.4%가 불면증, 64.4%가 수면 박탈(수면 부족), 60.6%가 주간졸림에 시달리고 있었고, 세 가지 증상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48.2%였다. 때문에 이들 중 8.2%는 수면 문제로 인해 약이나 술에 의존하고 있으며 각성제를 복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4)시간에 대한 강박관념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은 다이아(Diagram)라고 불리는 열차시각표가 잘 보여준다. 불규칙한 교대근무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열차시각표를 확인해야하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출퇴근 시간과 교대순서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결승사고를 낼 수가 있다. 결승사고가 나면 전 근무자가 화장실도 못가고 또다시 열차를 몰아야하는 일이 발생한다. 터널속에서라도 급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차와의 간격유지로 잠시 정차중입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터널 중간에서 잠시 열차를 세우기도 한다. 열차 시각표 뿐만아니라 2분마다 승객과 실랑이를 하며 출입문을 여닫고 다음 역으로 열차를 대야하는 기관사들은 시간과의 전쟁 그 자체다. 기관사들은 출근 시간이 되면 기관사들은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 같은 걸 느낀다고 전했다.

ⓒ민중의소리

5)일상적인 현장통제

다음으로 기관사들은 일상적인 현장통제로 인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휴가 한번 맘놓고 쓰지 못하고 병가를 낼 수 없어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현장통제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FTX훈련이다. 이것은 사고에 대비한 모의훈련으로, 운전 중 불시에 사령실에서 질문을 던지면 이에 답변하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인력충원이나 안전시설로서 안전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관사들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으로 기관사들의 긴장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6)1인승무제

특히 1인 승무제는 한명의 기관사를 컴컴한 지하터널 속에서 장시간 고립시키고 2분마다 반복되는 긴장과 과중한 사고부담에 처하게 함으로써 정신건강을 훼손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1인 승무제 실시 이후엔 차장이 하던 출입문 개폐와 안내방송 등 승객에 대한 서비스까지 기관사가 맡고 있다. 사고가 나면 수습에서 사령실 보고, 안내방송, 사고경위 조사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과중한 부담감도 항상 지속된다.

충분한 휴식·1인승무제 폐지해야

도시철도노조 정운교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지하터널로, 정면주시하면서 달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하는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은 기관사에게 공포감마저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와 달리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에서 집중적으로 공황장애가 나타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지하철공사가 2인 승무제인 것과 달리 도시철도공사는 1인 승무제로 운영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가 1인 승무제를 최초로 도입한 이래 서울의 1-4호선을 제외하고 전국의 지하철은 모두 1인 승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가 자사의 인력에 대해 “최소의 정예화된 인력”으로 “경영합리화를 도모”했다고 자랑할 때 기관사들은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

전문가들은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지하구간을 모두 지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2인 승무 실시, 충분한 휴식, 현장통제 완화를 통해 발병요인을 줄여야 한다고. 그러나 휴일에도 달리는 지하철에서 기관사들은 여전히 1인 승무를 하고 있다.

문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