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위험천만”
‘자율화 검토’에 노동계·시민단체 반발…”건강보험 붕괴, 의료서비스 양극화 초래”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의료기관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건강보험을 붕괴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당연지정제 폐지로 경쟁력 높인다?
<중앙일보> 5일자 보도에 따르면 복지부는 병원간 경쟁을 유도해 의료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현재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계약지정제로 변경하는 것을 뼈대로 한 ‘2005년 건강보험 업무계획’을 마련, 최근 김근태 장관에게 보고했다. 지금은 의료기관이 환자를 치료할 경우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개별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 취급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연지정제에서 벗어나면 정부가 정한 수가(의료행위 가격)의 통제를 받지 않고 약처방이나 진료횟수 등을 규정한 건강보험 진료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되며 진료비는 환자가 전액 부담하게 된다.
복지부가 검토 중인 이같은 계획에 대해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 크게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5일 논평을 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와 보험수가제는 건강보험의 골간을 이루는 제도로서 이를 폐지하는 것은 공적 건강보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최근 경제자유구역내 외국의료기관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함으로써 당연지정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의 문제점에 대해 이미 지적한 바 있는데 복지부 방침은 그런 우려를 전면 현실화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반대했다.
“다음은 민간의료보험 도입?” 우려
이와 함께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경우 의료서비스 이용의 계층간 양극화와 민간의료보험 도입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만약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고 대형병원, 전문병원 등이 건강보험 제도를 뛰쳐나가 민간의료보험의 거래상대가 될 수 있다”며 “결국 한 축은 민간보험과 계약을 맺은 의료기관과 고소득계층이, 다른 한 축은 건강보험과 계약을 맺은 의료기관과 저소득계층으로 양극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계도 일제히 ‘공공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김미정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지금도 공공의료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높은데 당연지정제 폐지는 공공의료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며 “병원의 영리화가 허용되면서 병원들의 이윤추구 동기가 커지고 건강보험 지정병원들을 더욱 낙후시키게 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 유정엽 정책부장도 “이는 경제자유구역내의 당연지정제 예외 적용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환자들로 하여금 특진 등 고액진료를 받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라며 “공공의료체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같이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자 복지부는 5일 “건강보험의 요양기관계약제는 중장기적 연구 검토과제일 뿐”이라며 “복지부가 이를 추진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해명하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근태 장관도 “국민을 건강보험에 강제 가입시켜놓고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어떤 의료기관은 아예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신중하게 다룰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지부 안에서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를 계약지정제로 변경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만큼 향후 정부에 분명한 입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