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 맞교대 노동자 건강·가족생활에 ‘치명적’
금속연맹 근무형태변경 자동차분과 토론회…현대차 2천여명 실태조사 결과 발표
지난 해에도 어김없이 고임금 대기업노동자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고임금 ‘딱지’로 이들의 주장은 타당성을 검증받기 전에 온데간데 없이 묻히기 일쑤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자동차노조다. 그들이 연봉 4천~5천만원을 받기 위해 초유의 장시간 노동, 주야 맞교대 근무를 참아내야 하는 고통은 아무런 관심꺼리가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안정적인 일자리에 상대적으로 임금까지 높은 대기업노동자가 무슨…” 이라는 ‘꼬리표’는 노동으로 인해 건강이 파괴 되도, 가정생활이 원활하지 못하더라도 ‘입도 벙긋’ 못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대기업 노동자도 ‘인간의 모습을 한 노동’은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공론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음지’에서 계속 곪고만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실제적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심각한 수면장애, 생체주기 파괴 등 건강 이상을 보이고 있으며 가정·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은 21일 민주노총 1층 회의실에서 ‘근무형태변경을 위한 자동차분과 토론회’를 갖고 현대자동차(울산공장 생산직)에 근무하는 노동자 2,209명 설문조사 및 100여명의 면접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사진> 특히 이 보고서는 각종 실태조사와 함께 조합원 수면일지, 심박동수, 유병률 조사 내용도 담고 있다. 조사는 지난해 3월에서 12월까지 9개월 동안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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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업체별 교대제 노동시간>
구분 노동시간
기아자동차 오전 8시30분~오후 7시30분/오후 8시30분~오전7시30분
대우자동차 오전 8시~오후5시/오후 8시30분~오전 5시30분
현대자동차 오전 8시~오후 8시/오후9시~오전 8시
◇ 현대차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 자동차업체에 비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은 지난 2003년 기준으로 연간 2,525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3천 시간을 초과해 노동한 경우도 전체 8.3%인 1,567명에 이른다. 연간 2,525시간이라는 것은 365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7시간을 일한 것과 같다.
게다가 설문조사 결과 52.7%의 노동자들이 한달 평균 3회 이상 특근, 철야를 하고 있다. 이는 하루 8시간 안팎, 주4~5일, 연간 1,380(BMW 독일 레젠버그 공장)~1,824시간(오펠 포루투칼 아잠부가 공장) 일하는 대부분의 유럽 완성차 공장 노동자들보다 연간 1.5~2배 더 많은 수치다. 또한 일본 도요타 노동자들의 2002년 연간 총 노동시간이 2,029시간이라는 점과 비교하더라도 현대차 노동자들은 초유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차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임금 때문이다. 주야맞교대 근무 노동자의 95.3%, 상시주간 노동자 89.7%가 ‘초과노동 이유’를 묻는 질문에 “초과노동 없이는 생활이 힘들어서”, “미래의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 주야맞교대, 건강장해 심각= 이번 보고서 작성에 팀장을 맡은 안양노동정책교육실 박우옥 교육실장이 발표한 ‘주간연속 2교대제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상시적으로 주간 근무를 하는 노동자에 비해 주야 맞교대 노동자들이 건강장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족·사회생활도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예상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분석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유병률(어떤 일정시점이나 기간의 그 질환의 보유 정도·‘1주 1회 이내’에서 ‘날마다’까지를 합해서 계산한 값)을 근무형태에 따라 비교해 보면 체중감소를 제외하고는 △가슴통증 △눈의 피로 △가스차서 통증느낌 △복부통증 △속 쓰림 △변비나 설사 △식욕감퇴 등 주야맞교대 노동자들의 상시주간 근무자에 비해 큰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1 참조> 특히 맞교대 노동자들은 눈의 피로 유병률이 98.5%에 달했으며 속 쓰림 77.9%, 낮과 밤이 바뀌어 식용감퇴 65.2% 등 높은 수치를 보였다.
야간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의사로부터 진단)으로 고통 받은 적이 있는가에 대한 결과에서는 위염이 43.6%로 가장 높았으며 불면증(34%), 위궤양(27.6%), 십이지장궤양(12.9%), 만성불안증(13.5%), 고혈압(12.4%), 우울증(9.8%), 뇌혈관질환(3.5%)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 또한 근무형태에 따라 비교하면 주야맞교대와 상시주간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했다.<표2 참조>
‘야간노동이 건강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손미아 강원대 의과대학(예방의학) 교수는 “현대차 맞교대 노동자들에게서 심혈관계 질환, 호흡기계, 소화기계, 간장 질환, 당뇨, 정맥혈류질환 등의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현대차 맞교대 근무자들은 가족·사회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생체리듬만이 아니라 생활리듬까지 파괴되고 있었다.
“자녀교육 문제, 친구관계, 집사람…인간관계가 잘 형성이 안돼요. 집에서 잠만 자고 피곤하니까 애들이 떠들고 하면 소리 지르고 하니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애들이 피하고 엄마하고만 얘기하려고 하더라고요. 대화를 좀 많이 하려고 하는데 잘 안돼요. 기간이 많이 흘러 버리니까.” (3공장 의장3부 노동자 A씨)
실제 주야맞교대 노동자들은 “맞교대가 가족의 유대감, 배우자나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라는 질문에 48.2%가 “매우 방해 된다”고 응답했으며 ‘약간방해’ 33.1%, ‘그저 그렇다’ 13.5%, ‘어느 정도 수월’ 3.4% 등으로 나왔다. ‘취미와 여가생활’에 대해서도 42.7%가 맞교대로 “매우 방해 된다”고 답했으며 ‘약간 방해’ 36%, ‘그저 그렇다’ 16.5%, ‘어느 정도 수월’ 3.5% 등의 순이다. <표3 참조> 박우옥 팀장은 “건강하고 인간답게 일하고 쉬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체리듬과 생활리듬을 파괴하는 심야노동과 주야 맞교대를 폐지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간연속 2교대, ‘히든카드’= 면접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지만 응답 조합원의 95.6%가 현대차의 해외생산 확대가 국내 생산 감소와 고용불안을 야기 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박우옥 팀장은 “장기적으로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2,525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을 연간 2천 시간 수준으로 단축시켜야 한다”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해 심야노동과 평일 연장노동을 막아내고 동시에 물량과 노동시간에 따라 임금총액이 변동하는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경우 10만 명의 노동자가 111만 대를 생산하고 있는데 현대차는 5만1천명이 127만대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단순 비교하면 현대차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일자리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 박 팀장의 의견.
박 팀장은 “세계적 자동차기업답게 노동시간과 근무형태, 임금체계와 고용규모를 ‘세계적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또한 주간연속 2교대제는 ‘노동시간 연장·임금삭감노동 강도 강화’가 없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dandy@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