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강제출국…“아파도 말할수 없다”
(중) 예견된 인재
“팔다리 없어지지 않는한” 숨어서 자가치료
보험안돼 병워비도 ‘거액’…병키우는 구조
[3판] 방글라데시 출신의 불법 체류 노동자인 핫산(30)은 한국에 온 지 햇수로 4년째다. “시도때도 없이 원인 모를 코피를 쏟는다”는 핫산은 경기 안양시 한 도금공장에서 일곱달째 일하고 있다. 지난 22일 공장에서 만난 그는 동료 중국 노동자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증상이지만 병원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병원에 가도 한국말을 못해 제대로 증세를 말할 수도 없고 건강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다니 한국인보다 4~5배 더 비싼 병원비가 큰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핫산은 “130만원 월급을 받아 120만원을 부모님과 동생 넷이 살고 있는 고향에 보내거나 저금을 하고 나머지 1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주저하게 하는 것은 불법 체류란 ‘딱지’다. 현재 국내에 불법으로 머무르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는 대략 18만5천여명. 지난해 7월 정부가 그물총까지 동원하는 등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을 강화한 이후에 기피(3디) 업종으로 숨어버린 이들에게 적발은 곧 ‘강제출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키스탄 노동자 압둘(34)은 “한국에 오려고 진 빚 1천만원도 갚아야 하고 고향에서 기반을 잡을 돈을 벌려면 숨어서라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며 “팔다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다른 병에 걸려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코피가 나면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머리가 아프면 잠시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자연 치료’(?)가 이들 공장내 이주 노동자들의 유일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들 불법 체류 노동자들을 고용한 업주들도 할말은 많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 도금협회의 한 관계자는 “고학력자가 넘치는 우리 산업인력 구조에서 3디 업종에 누가 오겠느냐. 외국인 노동자라도 없으면 당장 내일 공장 문을 닫을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불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라고 털어놨다. 병원비도 문제지만 불법 체류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들추어지면 출입국관리법상 해당 업주가 처벌받을 수밖에 없어 이런 사실을 숨기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결국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불법 체류 노동자들과 출입국 관련 법망만 피하면 책임질 일이 없고 회사 이익만 내면 된다는 사업주들의 이해관계가 불법 체류 노동자를 만성 직업병과 죽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셈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유해물질로 인한 직업병을 얻어도 치료와 보상이 어렵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불법 체류자도 유해물질에 노출돼 직업병을 얻게 되면 산재보상을 받도록 법 제도로 정비해놓고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보상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치료와 보상을 받더라도 이들에게 남는 것은 ‘강제 출국’뿐이다.
근로복지공단 내부지침에는 불법 체류자가 산재요양 신청서를 내면 곧바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불법 체류 정보를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불법 체류자에게 산재는 병 자체보다 곧바로 강제 출국을 의미한다. 실제로 23일 다발성 신경장애에 걸린 타이인 여성 노동자 8명 가운데 5명이 1차로 산재요양 승인을 받았지만 노동부는 합법 체류자인 파타리온(30)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서는 보상과 치료가 끝나는 대로 강제출국을 시킬 방침이다. 김기성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
보험 사각지대 16만7400명
시민단체가 만든 ‘건강협회’ 에도 1만7600명만 가입
불법 체류 신분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는 1999년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건강협회)를 만들었다.
건강협회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료비용을 직접 지원해주고 있다. 건강협회에 매달 6천원씩 회비를 낸 회원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거나 수술, 입원을 했을 때 치료비의 절반을 지원받는다.
또 건강협회에 가입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보험수가를 적용해주고 추가로 20%를 더 할인해주는 협력 의료기관도 800여곳에 이른다. 개인병원이 대다수이지만 서울대병원, 한양대구리병원, 이대동대문병원, 고대안산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종합병원도 건강협회와 함께 하고 있다.
건강협회는 또 전국 34개 지부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고, 15개 무료진료소에서 주말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간단한 진료를 해주고 있다.
건강협회가 처음 문을 연 때에는 외국인 노동자 회원이 160명뿐이었지만 지금은 103개국 1만76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전체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18만여명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여전히 대다수의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 몸 안에 병을 키워가고 있다.
김미선 건강협회 사무처장은 “협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한테 지원하는 의료비는 회원들의 회비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여성재단 등 순수 민간 차원의 재정 지원으로 마련되고 있다”며 “국내에 18만명에 이르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의료 지원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