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산재 보상권리 보장·작업환경 개선을”
△ 지난 21일 과천시 시민회관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해소”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불법 근절” 등을 둘러싸고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해룡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장,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 강성규 한국산업안전공단 직업병연구센터 소장, 김종효 노동부 산업보건환경과장. 과천/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하) 전문가 좌담
일시:2004년 1월21일(금요일) 오후 5시
장소:과천시민회관 씨티홀
참석자:강성규 한국산업안전공단 직업병연구센터 소장
김종효 노동부 산업보건환경과장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
조해룡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장
사회 홍용덕 〈한겨레〉 사회부 기자
“강제추방 내모는 형식적 특별점검 중단 유해작업 노출때 대처방법·절차 교육을”
사회=노말헥산에 의해 타이 여성 노동자들 8명이 집단으로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이라는 하반신 마비를 일으켰는데, 이는 어떤 환경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 박천응 대표- 14시간이상 계속 근무
월급45만원 최저임금 밑
인권수준 오히려 거꾸로
조해룡 안산중앙병원장=무색무취한 노말헥산은 허용기준의 10배 정도에서 냄새를 느낄 수 있다. 피해자들이 작업중에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고 말하고, 나타난 임상증상 등을 고려해볼 때 노말헥산의 공기 중 농도는 대략 500ppm, 허용치인 50ppm의 10배 이상 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1971년 한 밀폐된 가구공장에서 여성 노동자 3명이 노말헥산에 중독된 적이 있다. 이들은 평균 650ppm에서 최고 1300ppm의 농도에 노출됐다. 이들의 회복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일본에서는 1967년 2명이 중독됐고 93명이 다발성 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하루 최고 14시간, 주당 48시간 이상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 노말헥산의 함유량이 70%가 넘는 접착제를 썼는데 노말헥산 농도 500~2500ppm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사회=노말헥산 중독 환자는 장기간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데 완치는 가능한가?
조해룡=일본은 대략 5년 정도 추적조사를 한 것으로 돼있다. 앞서 말한 93명 가운데 임상회복을 5년 정도 관찰한 결과 3년 후 51명, 5년 후 82명이 완전 회복됐다. 나머지 8명은 감각신경 증상이 남았고 일부는 몇 년이 지나도록 신경전달속도의 저하가 계속된 것으로 보고됐다.
사회=노말헥산 중독 사건은 후진국적인 사건으로 한국인 전체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는 지적이 많다. 강 소장께서는 2003년에 제조업 사업장의 노말헥산 노출실태와 노동자의 건강평가에 대한 역학조사 보고서를 냈는데?
강성규 한국산업안전공단 직업병연구센터 소장=전국의 노말헥산 사용사업장 중 97곳을 방문했고, 상대적으로 노말헥산의 농도가 높은 17개 사업장에서 작업환경 조사와 노동자들의 혈액과 소변을 검사했다. 일부 사업장에서 노출기준에 근접했지만 노출 기준을 넘는 사업장은 없었다. 작업장 관리가 잘 안 되는 곳은 작업환경을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사회=영세한 3디(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없다면 당장 공장 문 닫아야 할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 이주 노동자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대우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 김종효 과장- 유해물질사업자 3만개
감독관은 250명 한정
불법체류땐 관리에 공백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이번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차별 실태의 요약판이다. 많은 이들이 국내 외국인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많이 후퇴하고 있다. 산재에 방치되는 문제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 착취가 이번 사건에서 모두 드러났다. 타이 노동자들은 14시간 이상 계속해서 일해야 했고, 최저임금보다 적은 46만5천원의 기본급을 받고 일했다. 산재 뿐만 아니라 노동관계법을 위반했고, 이런 일을 철저히 은폐하려 했다. 이번 사건은 1개 사업장의 문제, 우연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유해물질을 쓰는 전체 사업장에서 이번 사건과 같은 위험 가능성이 있다.
강성규=우리나라가 예전에는 작업환경이 굉장히 나빠서 직업병이 많았지만 최근 10년간 노력해서 작업환경이 많이 개선됐다. 정상적인 제도 안에서는 과거보다 잘 관리되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도 이런 직업병들은 있다. 기본 제도안에서는 잘 관리되는데 이번처럼 제도에서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 보완할 필요가 있다.
김종효 노동부 산업보건환경과장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이 마련돼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불법 취업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일했다면 사업장 점검과 관리가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앞으로는 불법 취업이 사라지고 그에 따라 사업장에 대한 지도·감독과 사업주에 대한 교육 등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문제의 사업장은 특수 건강검진도 안 받았고 노동부는 해당 사업장에서 노말헥산의 노출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한 사실을 5개월 늦게, 측정기관인 병원을 통해 알았다. 이 때는 이미 타이 노동자들이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인 상태였다. 노동자들의 산업안전에 구멍이 난 것 아닌가.
김종효=합법과 불법을 가릴 것 없이 산재보상은 물론 안전교육 등의 예방활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주들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법에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결과를 60일 안에 보고하게 돼 있으나, 사업주들이 이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60일을 기다렸다가 보고가 오지 않으면 감독관을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250명의 한정된 감독관으로는 3만3천개의 유해물질사업장을 선생님이 숙제 검사하듯 하기는 어렵다.
박천응=불법체류자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가로막는 독소가 있다. 3디업종은 원래 산재다발 분야다. 여기서는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에게 산재가 발생해도 잘 보고하지 않는다.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다. 이번 사건에서도 타이 노동자 8명 가운데 1명을 빼고 7명은 불법체류자였다. 작년부터 합동단속이 이뤄지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산재보상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경우 기업주에게는 벌금, 외국인노동자에게는 강제추방이라는 위협적 요소가 있다. 이래서 기업주는 산재보상 처리보다는 공상처리를 하든지 은폐하려 한다. 외국인노동자 입장에서도 강제추방을 피하려고 병원비 일부를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산재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상권을 청구할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이 더 큰 문제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있는 3디 업종에서 산업안전 교육은 거의 안된다. 유해한 작업에 노출될 때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 구제방법과 절차도 그들은 전연 모른다.
△ 강성규 소장- 노말헥산 사업장 97곳 방문
작업환경 개선등 권고
제도밖 사업장 관리 보완을
사회=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뤄지는 노동부의 특별점검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되레 이들을 단속하고 추방해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은 아닐까?
김종효=문제의 공장에 있던 불법 체류자 8명의 출국을 보류시키고 건강진단을 해 문제가 있으면 치료하고 보내주도록 했다. 사건 후 노말헥산 취급 사업장 367곳 이외에 외국인을 많이 고용한 사업장 1천곳을 추가로 조사하고 연말까지는 외국인을 고용하고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5천곳에 대해서는 금년내에 단계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사회=이런 사건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김종효=이번 일의 근본 원인은 불법체류다. 불법체류가 있으니까 지도 감독에 공백이 생겼고 그래서 이런 문제가 나왔다. 사업장에서 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사용하더라도 고용허가제 등 합법적 통로를 활용해야한다. 정부도 강력한 단속으로 불법체류를 근절하고, 그들이 불법체류자로 출국된다 하더라도 중소업체 인력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체인력 공급에 노력을 다하겠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해서 조사가 필요하다면 따로 계획을 세워 조사하겠다.
△ 조해룡 원장- 재정·기술적 안전보건
영세제조업선 대책 한계
모기업인 대기업서 지원을
박천응=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의 차별문화가 아주 뿌리깊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대로 이름 안 부르고 “야 임마”라고 부른다든지, 기껏 나누는 대화가 “빨리 빨리 일해”. 겨우 이 정도라는 거다.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구토가 나왔는데도 “거짓말 마라”, 아프다고 해도 “꾀병부리지 마라”는 식으로 차별이 뿌리깊다. 이들이 만약 한국인이라면 산재를 당했는데 외출과 면회를 통제하며 병원을 못 가게 막을 수 있었겠나. 이번 사건에서 타이 노동자 3명이 공항에서 빠져나갈 때 회사가 이들한테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다리가 왜 그러냐’고 묻거든 절대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 산업재해 문제가 불법체류자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반월공단, 시화공단의 웬만한 병원에 가면 누워있는 게 다 외국인 노동자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산업재해 현장에 대해서 전반적인 점검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조해룡=영세한 중소 제조업체 대부분이 대기업 협력업체다. 이 중 특히 관리대상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사업장은 모기업이 재정적, 기술적으로 안전보건 대책을 지원해야 한다. 작업환경이 열악한 3디 사업장은 내국인이 기피하니까 그 자리를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할 수밖에 없다. 중소 영세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업주의 산업보건에 관한 인식이라든가 재원부족으로 산업보건사업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특히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작업공정 중 가장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을 담당하고 있어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다양한 직업성 질환이 발생할 소지가 더 많다.
사회=끝으로 최근 시민 노동단체들이 노말헥산 파문 관련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는데 정부에 요구한 내용은 뭔가?
박천응=지난 21일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를 구성했다. 여기서는 △정확한 진상규명 △사건을 방치한 담당 노동부 직원 징계와 노동부 장관 사과 △이주 노동자의 실질적 산재보상 권리 완전 보장 △이주노동자를 해고로 내모는 형식적 특별점검 중단 △실질적 작업환경개선계획의 제출 등 5가지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어느 한 개인 사업주한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국내 노동문제 전반을 다루는 노동부가 전국민에게 충격을 줬던 이번 사건을 사과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리/유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