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공간 장시간노동, 결국 일어설 수 없는…”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관련 대책위 현장재현 실험…기준치 6.8배
지난 1월 13일 ‘앉은뱅이병’으로 불리는 노말헥산 중독 발병 사실이 알려졌던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기준치의 최고 6.8배에 이르는 고농도 노말헥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와 노동자 건강권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실시한 현장재현 검증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1일 발표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문제가 발생한 D사업장의 경우 노말헥산의 노출이 법적기준치의 약 5배 이상 초과된 사실이 확인됐다.
▲ 경기도 화성 모 공장에서 일하다 하반신이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장애'(앉은뱅이병)에 걸린 태국 여성 노동자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가 제공한 사진이다. <연합뉴스>
단 의원과 대책위의 의뢰로 원진연구소가 이번에 실시한 현장재현 검증에서 네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결과 각각 69, 87, 162, 195ppm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준치(28.6ppm)의 최고 6.8배에 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과 2004년에 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에는 노말헥산 농도가 54.26ppm, 59.70ppm으로 기록돼 있어 당시 측정 결과가 잘못됐거나 허위로 기록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안전전문 업체로부터 안전관리대행계약을 맺고 1년에 6차례나 주기적으로 안전점검과 보건관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1년에 두 차례씩 꾸준히 작업환경측정도 받아왔다. 그런데도 이 같은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것은, 비단 사업주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안전보건관리체계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장 조사 결과 작업공간은 1~2평에 불과한 거의 밀폐 공간이었으며, 노동자들은 방독마스크나 보호 장갑은 착용하지 않았고 노말헥산에 대한 사전 교육도 없었다.
대책위는 “이번 현장재현 검증실험의 경우, 작업현장의 온도가 낮았고 환풍기를 최대로 가동시키고 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진행된 점을 감안한다면 전문가들은 측정치가 다소 과소평가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실제로는 더욱 위험한 환경에서 일해 왔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 여성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중독 집단 발병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 동안 실제 이들이 어느 정도 위험 수위에 노출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단순히 고농도에 노출되었을 것이라고만 추정돼 왔다.
대책위는 “치명적인 유해물질을 다루면서도 최소한의 교육과 안전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작업조건과 밀폐된 공간에서의 장시간 노동이 원인이 되어 태국노동자들은 서지도 못하는 병을 얻게 됐고 우리 사회는 이를 방치하고 외면했다”며 “이는 비단 이주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 3D업종의 노동자 등 산업안전의 사각지대에 몰린 불안정한 노동자 모두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