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말헥산이나 시너나 그게 그거 아냐?”
구멍 뚫린 ‘산업안전’…’앉은뱅이병’ 현장재현 검증 결과 기준치 최고 6.8배 검출
태국 이주노동자가 노말헥산에 중독된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D사업장의 사업주가 1년에 6차례씩 안전점검과 보건관리를 받아왔으면서도 노말헥산의 위험성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밝혀져 산업안전보건 관리체계에 큰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과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는 원진녹색병원 부설 노동건강연구소(원진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현장재현 검증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주장했다.
▲ 단병호 의원과 노말헥산공대위가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공대위는 이날 “현장검증에서 D사업장의 관리자가 노말헥산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 채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시너 정도로만 여겼다고 말했다”며 “작업환경 측정제도 등 산재예방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전문업체와 안전관리대행계약을 맺고 1년에 6차례씩 주기적으로 안전점검을 받아왔고, 산업보건전문업체와도 보건관리대행계약을 맺어 1년에 6차례 보건관리도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법에 따라 1년에 두 차례씩 꾸준히 작업환경측정도 받아왔지만 이주노동자는 물론 사업주와 관리자도 노말헥산의 위험성을 전혀 몰라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던 사업주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에게 방독마스크나 보호장갑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으며, 사전에 안전보건교육도 실시하지 않았다. 또 사용 약품이 노말헥산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밀폐된 작업장에서 일하던 태국 이주노동자들은 법적 기준치의 최고 6.8배에 이르는 고농도 노말헥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진연구소가 이번에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4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결과 각각 69, 87, 162, 195ppm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기준치(28.6ppm)의 최고 6.8배에 달하는 것이다.
이날 공대위는 “그렇다고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회사의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우리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구조적으로 결함을 가진 ‘후진국형’이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며 “노동환경에 대한 개개인의 권리와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선진국형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대위는 노동자의 정보권 강화를 위해 △미란다 원칙에 준하는 알권리 보장 △안전보건 사전위험성 평가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며 ‘노동안전보건보호청’ 설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산업안전공단은 오는 3일 노말헥산 중독 태국 노동자들이 근무했던 당시 작업상황을 최대한 동일하게 재현, 작업환경 측정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애초 작업환경측정기관이 보고했던 노말헥산 노출 농도(2004.4.9. 측정, 59.70ppm)와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경우, 법령 위반사항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상기 김경란 기자 westa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