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비정규직, ‘이중의 차별’ 속에 ‘골병’ 든다

각종 산업재해 노출 ‘건강권 위협’부터 ‘그림의 떡’ 출산휴가 ‘모성 위협’까지

빵 대신 먼지를 마시며 폐쇄된 작업장에서 일 하던 미국의 여성노동자 1만5천여명이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의 결성을 외친지 올해로 97년이 됐다. 한 세기 가까운 투쟁의 기간을 지나오면서 여성노동자들의 지위와 역할은 외적성장을 거듭한 듯 보이지만, 노동현장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성차별과 고용차별로 인해 여전히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거나, 평가절하 되고 있다.

특히 98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기 시작한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와 저임금에 시달리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이는 ‘일과 가정’이라는 여성의 이중부담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임준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위험한 직무나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고, 정규직에게는 적용되는 여러 가지 법·제도적 보호장치가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건강 피해를 경험하게 된다”며 “노동조합 등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직이나 체계를 가지기 힘들다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일하면서 ‘골병’ 드는 골프장 경기보조원들

실제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건강권’의 위협 정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특수고용직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경우 만성피로와, 생리불순, 근골격계 질환 및 위장질환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9년 넘게 골프장 경기보조원으로 일했다는 임미옥씨는 “많이 걷고, 많이 뛰고, 골프채 등 무거운 짐을 수시로 들고 있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관절의 통증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많이 걷다보니 골반에 염증이 생기거나, 생리불순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또한 골프장의 경우 잔디 관리를 위한 농약 살포로 인해 경기보조원 상당수가 구토, 어지러움 등의 증세를 호소하고 있으며, 보통 5~6시간 걸리는 경기운영 시간에 맞춰 일을 하다 보니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 위장 장애를 겪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라는 게 임씨의 설명이다.

임씨는 또 “장시간 라운딩에 쫓겨 화장실에 못가 신장이 부어 치료를 받는 사람도 많고, 특히 생리 중에도 화장실을 제 때 못 가 각종 여성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상당수”라고 지적한다. 그뿐 아니라 ‘타구사고’(날아오는 골프공에 맞아 타박상 또는 골절 상해를 입는 경우)도 빈발,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완전히 치료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에 복귀함으로써 타구사고에 대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한 산재 처리는 요원한 상태. 임씨는 “타구사고의 경우, 골프장쪽에서 초기진단비용 정도는 부담해 왔는데, 경기보조원 업무가 용역으로 전환되면서 그 정도의 치료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며 “몸이 아파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본인이 자비를 들여 치료를 받거나, 그도 아니면 일을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학교급식조리사, 근골격계·피부질환 노출 심각

90년대 들어 학교급식이 증가함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학교급식조리사 역시 대부분 비정규직 형태로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각종 안전사고 및 근골격계 질환, 피부질환 등에 노출돼 있다. 특히 무거운 식재료와 조리기구를 수시로 들어 날라야 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급식조리노동자의 수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전국여성노조가 급식조리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실태를 조사한 결과, 근골격계 증상 때문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약 58%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이중 10%는 근골격계 증상으로 인해 조퇴·결근·휴직을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근골격계 질환 외에도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고온다습한 작업장에 장시간 노출돼 화상, 습진, 알레르기 등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많다.

조여옥 여성노조 경기지부장은 “휴가 및 병가의 경우 일용직이라는 신분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어 제때 치료받고 질병을 호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고온, 다습, 위험한 기계 등 사고와 질병의 가능성이 높은 작업환경을 좀 더 안전한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급식조리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지적이다. 여성노조 설문에 참여한 급식조리노동자의 78.8%는 “건강상 피해의 근본적 원인이 ‘일용직’이라는 고용형태에서 비롯된다”며 “수차례에 걸쳐 재계약을 하고 있는 장기근속자부터 정규직 채용으로 전환해야 하며, 병가 및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체인력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전후휴가, 비정규직 ‘엄마’들엔 그림의 떡

서울여성노동자회가 개최한 ‘모성보호’ 캠페인. <사진제공=한여노협>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은 또한 가정에서 ‘엄마’로서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산전후휴가의 완전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경우 사용자의 계약해지 위협 속에서 법·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여성노조가 지난해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산전후휴가 조항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한 결과, 응답자의 53.82%가 산전후휴가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고, ‘산전후휴가 종료 후 한 달 이내의 절대해고 금지조항(근기법 30조2항)’은 61.69%가 ‘모른다’고 답했다. 또 산전후휴가 준수 여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0.70%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모체의 건강을 보전하고, 여성의 노동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인 산전후휴가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황현숙 평등의전화 상담소장은 “비정규직에게는 산전후휴가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업주의 인식과, (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여성노동자들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며 “비정규직의 경우 특히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사용이 어려운 이유는 사업주가 계약기간 만료, 예산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계약을 해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용직 학교도서관 사서 김소영(가명)씨는 지난 2월21일부터 5월21일까지 출산휴가를 낼 계획이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인한 대체인력사용 불가를 이유로 학교 관계자로부터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았다.

이에 김씨가 반발하자 학교는 “도서실 업무 민원을 종합한 결과 근무태만으로 재계약 불가능”이라고 재통보를 해왔다. 더구나 학교는 “김씨가 재계약을 강요하면 학부모들의 여론을 조성해 교육청에 진정을 내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비정규직 신분으로서의 심한 모멸과 감정의 상처를 받은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한편 사업주의 산전후휴가 기피와 관련 7개 여성노동단체로 구성된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산전후휴가 90일에 대한 전면 사회보험을 적용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주의 여성고용 기피구실을 제거하고, 여성의 계속 고용을 위한 산전후휴가 사회분담의 입법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산전후휴가 최초 60일의 급여를 사업주가 부담하는 현행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비정규직여성노동자에게도 산전후휴가 및 급여 적용을 위해 산전 기간과 그 후 30일간은 해고하거나 계약만료를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마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와 같은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는 ‘비정규직’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이 중첩돼 발생하는 만큼,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동시에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임준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노동·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며 “현행 법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권 확보투쟁과 더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등한 권리보장을 위한 투쟁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