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환자 운운 보험재정 절감 의도?”

보험진료비 심사일원화 입법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노동계 “제도개선 우선” 반발

최근 여당의원들의 건강보험, 산재보험, 자동차보험의 진료비 심사일원화를 위한 입법 추진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일고 있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타깃으로 한 이른바 ‘나이롱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줄여 보험재정을 절감하려는 것이 ‘진짜 의도’라는 것으로 앞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심사 일원화 왜 제기했나

장복심, 유시민,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건강보험 등 각 보험별로 진료비 심사 시스템이 달라 진료비가 낭비되고 있다며 진료비 심사 시스템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세 의원들은 지난 2일 공청회를 열고 본격적인 입법화에 나서기로 한 것. 그러나 이날 공청회는 초반부터 산재노동자들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법안의 요지는 이렇다. 건강보험 진료비 심사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독립시켜 ‘의료심사평가원’으로 확대·개편해 보험 진료비 심사를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이 ‘국민의료심사평가에 관한 법률’은 4월 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각 보험별로 동일진료를 했음에도 진료비 차이가 크게 발생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날 공청회 자료집에 따르면 대퇴골골절 환자 1인당 입원진료비는 보험별로 건강보험은 321만원, 자동차보험은 580만원(1.8배), 산재보험은 1,182만원(3.68배)로 최고 861만원 차이가 난다. 또 입원기간도 대퇴골골절의 경우 건강보험 평균 입원일수는 22.9일인데 반해 산재보험은 196.5일로 8.6배에 달하고, 입원일은 174일이나 긴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보험은 97일(4.2배). 입원율 역시 건강보험에 비해 자동차보험, 산재보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추염좌 입원율은 건강보험이 1.8%만 입원하는 반면 자동차보험은 75%로 41.7배, 산재보험은 65%로 36.1%의 입원율을 보였다.<표 참조>

전체 요양기관 대상 보험종별 환자당 입원진료비 수준 (단위:원)

구분 건강보험(2001) 자동차보험(2001) 배율 산재보험(2002) 배율
두안부골절 1,090,425 5,909,962 5.42 5,897,841 5.41
대퇴골골절 3,216,261 5,807,745 1.81 11,828,675 3.68
경추염좌 551,503 649,957 1.18 2,319,053 4.21
무릎염좌 1,298,179 2,178,138 1.68 3,842,597 2.96
뇌진탕 (뇌좌상) 1,436,654 1,536,574 1.07 2,875,97 2.00

‘나이롱 환자’와 ‘과잉진료’가 원인?

보험별로 진료비가 크게 차이나는 것의 원인으로 김진현 인제대 교수(보건경제학)는 이날 공청회에서 보상금을 목적으로 한 허위·과잉진료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건강보험은 주로 ‘요양급여’에 한하지만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등은 진료비 심사 결과가 보상금 또는 보험금, 장애급여비 등 보상과 연계돼 허위·과잉진료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보상금이 진료비보다 더 크니까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100% 요양급여비로 지출되나 산재보험은 28.6%, 자동차보험은 23.5%에 머물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적인 심사기관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차원의 진료비 심사를 통합시켜 보건의료를 총체적,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진료비 비용 심사만이 아닌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의료의 질에 대한 적정성 평가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

그러나 김 교수는 기대 효과로 ‘경제적 효과’를 가장 먼저 꼽았다. 의료비 절감, 도덕적 해이에 의한 휴업보상금 절감, 근로일수 증가, 병상회전율 증가, 그리고 결국 기업의 산재보험료가 인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심사 일원화 이후 의료비 및 휴업보상금 지출액의 절감액은 연간 1조3,936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2003년 총지출액 3조3,784억원의 41.2%에 해당되는 금액이라고 밝혔다.

“산재노동자가 타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산재단체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뿌리인 산재보험제도 개혁 없이 진료비 심사라는 일부 가지만 치는 것은 근본적 해답이 아니라는 공통된 입장이다.

노동건강연대(노건)는 최근 성명을 통해 “현재의 시스템 내에서 이 제도는 산재보험 급여확대가 아닌 산재보험료 절감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임금은 축소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산재보험 급여심사체계 합리화’란 측면에서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산재환자와 요양기관의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줄임으로써 보험재정을 절감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재계에서 주장해온 도덕적 해이 감시 강화 주장과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둔 산재보험제도 개선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는 △산재보험 급여제공에서의 사전승인절차 폐지와 사후심사제도 도입 △산재보험료 인하 없는 급여 확대 △산재노동자 재활서비스 확대 통한 원직장 복귀제도 정착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안본부 부장은 “현재의 산재보험제도는 장애·요양에 대한 보상만 있지 재활·복귀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는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심사제도의 문제점이 있으므로 구체적인 제도개선이 우선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김은기 노동안전부장도 “산재노동자를 나이롱 환자로 매도하면서 산재보험기금 고갈을 우려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재해자는 완치될 때까지 치료받아야 하며 근본적인 산재보험법 정비없이 심사일원화 하겠다는 것은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경총과 근로복지공단의 포지션은

경총은 그동안 지난해 10월 1,46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62.4%가 근로복지공단 내 진료비 심사기능 개편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의료공급 기관의 과잉진료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진료비 심사기능의 대폭적인 개편이 필요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는 세 의원의 주장과 큰 줄기에서 맞아 떨어지는 동시에 노동계가 우려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총은 이 설문 결과에서, 70.5% 기업이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복수응답)으로 ‘도덕적 해이 감시부족’이라고 응답했으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이유(복수응답)에 대해, 52.7% 기업이 ‘요양기관이 수익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김판중 경총 산안팀장은 “심사평가 전문화는 우리 목표이기도 하나 만약 이것이 산재심사의 ‘선보장후평가’와 연관돼서는 안 된다”며 “만약 일원화한다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판정 기능은 그대로 두는 게 좋다”고 밝혔다.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게 목적인데 노동계의 요구사항인 ‘선보장후평가’가 끼어들어선 안 된다고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입법 추진으로 사실상 난처한 입장에 처한 상태다. 이는 사실상 ‘개혁’ 요구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 한 관계자는 “심사일원화는 이론상 좋겠지만 실제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은 환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건강보험과 같은 잣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며 “또한 운영상 기금관리과 급여지급 기능이 분리되면서 자칫 휴업·장애급여 지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산재환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보였다. 사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기구 분리’의 입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산재보험제도 개선 공방 ‘제2라운드’ 예고

장복심 의원 등 세 의원이 공청회가 무산되면서 예정대로 4월 입법을 추진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복심 의원실의 김용천 비서관은 “공청회 재개에 대해 의원들간 아직 논의가 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진료비 심사일원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고 밝혔다. 또 김 비서관은 “나이롱 환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실제 환자들의 사후관리가 안 되고 있어 전문적인 기관에서 진료비 심사를 담당하자는 것”이라며 “오해가 없도록 충분한 의견수렴과 설득을 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다 근로복지공단도 ‘주변’에 ‘지원’을 요청하며 버티고 있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이 노동계, 산재단체와 보조를 맞춰 진료비 심사일원화 문제를 넘어 산재보험제도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제기로 새롭게 쟁점이 형성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과 산재단체들로 구성된 ‘산재보험법 개혁입법모임’은 개정안을 거의 마련한 상태이며,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을 통해 빠르면 4월께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단 의원실의 강문대 보좌관은 “선보장후평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전반적인 제도개선 이후에 심사일원화를 고민할 수 있다”며 “건강보험 요양을 중심으로 산재보험 요양을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심사일원화 입법 추진’ 움직임은 산재보험제도 개선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뜨거운 공방이 이어질 ‘제2라운드’를 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

2005-03-11 오전 10:13:57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