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노동자 노동법적 보호는?
“노동3권 보장하되 개별보호는 특별법으로”
이승욱 교수 주장…“모든 취업자에 최소한의 권리 보장해야”
‘근로’는 모든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헌법에 명시돼 있다. 헌법 제32조는 국민이 근로의 권리를 행사할 때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노력해야 하고, 국민이 근로의 의무를 질 때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제33조는 ‘근로자’는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쓰고 있다. 이 조항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모태가 된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지닌 국민’(32조) 또는 ‘근로자’(33조)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상 ‘근로자’와 같은 의미일까 하는 점이다.
우선 통계상으로 보면 같지 않다. 올 2월말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결과를 보면,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2,208만6천명)를 임금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나 고용주, 무급가족종사자)로 나누면 그 수는 각각 1,473만1천명(66.7%)과 735만5천명(33.3%)이다. 취업자 10명 중 3명꼴로 비임금근로자, 즉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상인 셈이다. 헌법상 ‘근로’를 하면서도 하위법인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비임금근로자에게는 헌법이 명시한 ‘민주주의’ 원칙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데, 뭐가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종속성’,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궁금증을 풀 열쇠는 바로 ‘종속성’이다. 종속성은 흔히 인적 종속성(사용종속성)과 경제적 종속성으로 나뉘는데 인적 종속성은 ‘누구'(사용자)에게 고용돼 있으면서 업무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는지, 사용자에 의해 근로시간과 근로제공 장소가 지정되는지, 업무를 수행할 때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
경제적 종속성은 계약당사자 간 경제·사회적 조건과 비품·원자재·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 유무와 정도 등에 따른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인적 종속성이 인정되는 경우다. 문제는 인적 종속성은 없어 보이지만 경제적 종속성이 있는 경우다. 흔히 ‘특수고용형태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불리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운송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상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할 뿐더러 4대보험이나 산업안전 문제 등에서까지도 방치되고 있다.
바로, 근로기준법 등은 경제적 종속성은 물론 인적 종속성을 갖춘 자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는데, 과연 ‘헌법도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풀면 해법은 쉬워진다.
부산대 이승욱 교수(법학)는 지난 18일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법·법경제포럼 2차 회의에서 이같은 논리를 기반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법적 규율 방안을 내놨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선 모든 노무제공자에 대해 최소한의 공통적 보호를 하고 이 가운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일부를 보호하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는 모든 노동법적 보호를 하는 삼중원<그림 참조>의 해법이다.
이승욱 교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기가 어렵고 설정하더라도 해석의 문제가 있다”며 “우선 노무를 판매할 능력에 의존하는 모든 취로자에게 안전보건, 차별금지 등 최소한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에 경제적 종속성이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별한 규율이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전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현재 판례를 비롯한 법 운용이 엄격하고, 또한 사회경제적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노무제공방식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1년 기준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자영업주 25.8%, 무급가족종사자 6.2%로 비임금근로자가 32.0%에 달해 다른 OECD 국가보다 훨씬 높다. 미국 6.6%, 프랑스 6.8%, 스웨덴 8.8%, 독일 10.0%, 영국 11.7%, 호주 12.1, 일본 12.3% 등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패널조사에 따르면 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 평균 취업자 중 비임금근로자 비율은 29.5%다. 비임금근로자 가운데 고용주가 아닌 다른 근로자를 채용하지 않고 있는 자영인의 6년 평균은 20.7%다.
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 등은 ‘자영업 노동시장의 현상과 과제’(2003년)라는 보고서에서 자영인 비중이 높은 이유를 △기술혁신과 지식기반산업의 확대에 따라 보험대리인, 프리랜서 등 근로자와 자영업주 중간에 있는 새로운 고용형태 종사자 증가 △기업의 분사, 소사장제, 아웃소싱 확산 △소규모 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한 서비스업 등의 비중 증가 △기업구조조정 영향에 따라 고용불안한 임금근로자의 자영업 창업 확산 등을 꼽았다.
이승욱 교수는 “이러한 설명이 타당하다면 자영인 중 상당수가 경제적 의존성을 가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더 큰 문제는 다수의 계약관계를 가지면서 경제적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고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사업주에 가까운 자영인 – 즉 노동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해도 무방한 – 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헌법상 ‘근로자’는 경제적 약자를 전제한 개념”
따라서 이 교수는 “현재와 같은 이분적 규율제도를 갖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다른 자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생활조건의 결정에 관한 교섭력, 정보력의 불평등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균형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우선 노조법상 근로자의 개념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범주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물론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33조의 ‘근로자’가 인적, 경제적 종속성을 모두 갖춘 엄격한 의미의 근로자를 말하기 때문에 헌법과 배치된다는 반론도 있지만 이 교수는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3권의 기원이 됐던 제헌헌법 제18조 근로자에 대한 논의에서 전문위원인 유진오 박사는 “근로는 도회의 노동자를 상대로 쓴 말이지만 농민이라고 하더라도 농민조합을 만든다든지 하는 권리는 역시 18조에 의해 보장된다”고 답했다. 결국 헌법상 ‘근로자’ 개념은 경제적 약자를 전제로 한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개별적 보호방안은 ‘특별법’으로 마련한다는 것. 이 교수는 보수결정, 지급, 휴일휴가, 계약해지 등 계약의 형성, 전개, 종료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적정한 보호수준을 강구하되, 그 방법은 벌칙을 전제로 한 근로기준법에 따르기보다는 당사자의 자발적인 승인과 수용을 전제로 한 접근방식(soft-law)을 취하는 특별법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이 교수는 “이런 방안을 과보호라고 할 수도 없고 설사 보호된다 하더라도 시장의 변화 등에 따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보호가 아니라 ‘양호한 노동'(decent-work)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며, 따라서 가능하면 벌칙 등 강행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근로자성 판단을 둘러싼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임의적인 인준절차 도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본인의 판단에 따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지위를 임의로 포기하고 자영자로서의 보호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적용제외(opt-out)’ 제도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법적규율 방안에 대한 논의는 노사정위 특위에서 진행돼 왔지만 지난해 12월, 논의시한을 올 6월말까지 연장한 뒤 올 들어서는 한 차례도 공식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특위는 조만간 다시 회의를 소집, 방안 마련과 처리방법 등을 논의할 예정인데 이승욱 교수의 이같은 주장이 어떻게 반영될 지 주목된다.
이정희 기자 goforit@labortoday.co.kr
2005-03-23 오전 9:47:54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