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전문건설·플랜트 노조 파업 20일째
노조 인정 시각차로 협상도 어려워
[조선일보 김학찬 기자] 울산 전문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20일째 계속되면서 울산 석유화학공단 가동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공단내 석유화학업체들은 매년 봄(3~5월) 시설 점검 및 증설, 정기보수 등 작업을 전문건설업체에 맡겨왔으나 올해는 이들 업체가 고용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지난달 18일부터 파업에 돌입하면서 사실상 정기보수가 중단된 상태다.
◆업체는 ‘생산 차질’, 노조원들은 ‘수입 감소’=공단내 석유화학업체들은 파업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기보수 시기를 무기 연기하거나 서둘러 끝내버린 채 무리하게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의 각종 생산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H 기업 관계자는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함께 높아지는 것도 문제”라고 우려했다.
반면 대부분 일용직인 건설·플랜트 노조원들도 장기파업이 수입감소로 직결되면서 초조해 하고 있다. 노조원 K모(43)씨는 “대부분 하루 10만원이상씩 일당을 받던 조합원들이 장기파업으로 지금까지 평균 200만원이상씩 수입이 감소된 셈”이라고 말했다.
◆‘근본적 시각차’로 협상 불발=전문건설·플랜트업체 노사는 “건설·플랜트 노조가 협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해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문건설업체들은 “일용직 신분인데다 회사마다 사정이 달라 공동 단체교섭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또 노조원 실체도 없이 극렬 노조운동가들에 의해 이번 파업이 주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갖고 있다. 석유화학업체들도 “전문건설업체와 용역계약만 했을 뿐 일용직 근로자들과는 직접 고용관계가 없어, 교섭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
반면 노조는 “58개 전문건설업체 소속돼 일하는 1000여명의 조합원 실체를 인정하고, 성실한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요구조건도 ▲1일 8시간 노동보장과 유급휴일 및 주·월차 보장 ▲재하청(다단계) 금지 ▲탈의실, 샤워실과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노조 인정 등 가장 기본적인 근로조건 개선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은 이번 파업을 계기로 협상테이블에 앉을 경우 노조의 영향력을 공식 인정해주게 돼 향후 노조가 항만노조처럼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노무 공급권을 손에 쥐게 될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다.
◆‘과격시위’와 ‘강경대응’ 충돌 잇달아=파업이 아무런 성과없이 장기화되면서 노조는 과격양상으로 치닫고, 경찰과 업체측은 강경대응으로 선회하면서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노조는 지난 1일 오전 8시쯤 온산공단내 S, Y 기업에 투입된 비노조원 대체인력을 강제로 데려나오는 등 물리력을 행사했고,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여 양측 모두 20~30명씩 부상자가 속출했다. 또 노조원 500여명이 울산 중심가인 공업탑로터리를 점거한 채 30여분간 농성을 벌여 시내 5개 간선도로가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시위로 차량통행이 어렵다”고 항의하던 지체장애인 운전자 한모(48·지체장애 5급)씨를 차에서 끌어내려 집단 폭행해 앞니 1개가 부러지고, 머리가 2㎝ 가량 찢기는 등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강경대응에 나선 경찰은 3일 노조 간부 황모(47)씨 등 2명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하는 등 지금까지 26명의 노조원들을 연행해 조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