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역군’이라더니 산재후엔 ‘산업폐기물’ 취급”

효율성 빌미로 ‘불승인 남발·강제 치료종결’ 횡행…나이롱환자 운운 ‘도덕적해이’자로 몰아

노동력의 상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치료조차 제대로 해줄 생각이 없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다.

지난 연말 근로복지공단이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기준 처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이후 불승인 남발과 강제치료종결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 산업안전 관련 노동단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최근 근골격계 질환자 가운데 90% 이상은 신청해도 불승인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산재승인을 받더라도 반강제적인 치료종결도 문제다. 요양기간이 길어지면서 더이상 치료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때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협의회는 대부분 ‘증상고정’이란 소견으로 요양종결 판정을 내린다. 이런 자문의 결정을 환자 주치의들도 ‘연기신청’ 소견 없이 대부분은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

“병원에 있고 싶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치료도 제대로 안 됐는데 종결시키려고만 하니 참나. 치료종결 했더니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만 못 받게 되고 너무 억울해요.”

2003년 6월 경기도 화성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프레스 작업을 하다 왼쪽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정달윤(46)씨. 산재요양 승인을 내주면서도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쪽은 산재승인서 뒷부분에 치료 후 ‘종결요망’이란 공문을 몇 차례 보내왔다. 절단된 손가락이 붙지 않아 덜렁거리는데도 말이다. 정씨는 지난해 9월께 담당의사가 6개월 정도 통원치료를 하다가 ‘뼈 이식’을 하자고 해서 ‘치료종결’에 동의했지만 결국 염증이 생겨 올 1월 재입원하게 됐다.

요양신청서만 올리면 바로 치료는 가능하다고 했지만 공단쪽은 상태를 보고 ‘승인’해주겠다며 뒷짐지다가 결국 정씨가 덜렁거리는 손을 직접 보여주자 요양 승인이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왼손이 물건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 순간 물건이 잡히지 않아요. 괴롭고 미치는 거죠. 휴업급여도 없어 생계는 막막한데 직장복귀 전망도 없어요. 예전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죠.”

▲ 90년도 산재로 허리를 다친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나 치료종결 조치를 당한 황송학씨. 온전한 치료와 재활도 없이 ‘산업폐기물’ 취급당하는 처지에 분통을 터뜨렸다. ⓒ 매일노동뉴스

“치료도 안 됐는데 나가라니…”

“현장에서 일할 때는 ‘산업역군’ 이라더니 다치고 나니 ‘산업폐기물’ 취급당하는 처지가 서글플 따름입니다.”

지난 90년도 30대 중반의 한창 일할 나이에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친 황송환(53)씨는 이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추간판 탈출증(디스크)은 시도 때도 없이 재발하며 황씨를 괴롭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치료 중간 중간에 일을 해보았지만 케이블 공사하다가 허리가 삐끗하고, 건전지 충전하려고 움직이다 삐끗하는 등 고통은 계속되었다.

황씨는 벌써 ‘치료종결’만해도 세번째다. 지난 92년과 97년에 이어 올해 2월 치료종결 조치가 떨어진 것. 근로복지공단 자문의 심의 결과 ‘계속 치료를 하더라도 의학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그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도 황씨의 허리디스크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 보였다. 오래 걷거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다리 마비 증세까지 보인다. 더 이상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인 황씨에게 그동안 받아왔던 휴업급여가 중단되었음은 물론이다. 대신 장해등급(8급) 판정에 따른 요양보험급여(보상금) 3,600여만원이 평생을 살아갈 ‘종자돈’이 된 셈이다.

“3,600여만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에요. 정상으로 될 수만 있다면 현장에 나가 일하는 게 최고죠.” 지난 86년 이후 일용직으로 궂고 험한 일,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해온 황씨. 목돈으로 시골에 내려가 친구와 함께 농사지을 생각도 해보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인 가운데 손가락을 절단당한 산재노동자가 있었는데, 보상금으로 시골서 농사를 짓다가 보상금 다 까먹고 빚더미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자활 성공사례는 주변에서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 거리에 나앉을 신세인 산재노동자를 수두룩 보아온 터라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연금대상이 되면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이 되지만 보상금 3,600여만원 갖고는 어림없는 소리죠.” 황씨는 강제적인 치료종결이 너무나 억울할 따름이다. 7급 이상 판정을 받으면 연금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8급이라 그나마 혜택도 없다. 허리뼈에 박아 넣은 4, 5번 핀을 드러내고 2~5번까지 다시 인공뼈를 박아서 고정해야 된다는 것이 주치의 소견. 핀 하나에 드는 수술비는 3~4천만원이라는데 보상금으로는 어림없는 것이다.

그래서 황씨는 행정소송을 준비중이다. 기존 4, 5번 추간판 탈출증이 검사결과 2, 3번 내장증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들은 ‘2, 3번 내장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황씨의 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를 지루한 싸움이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황씨가 법정싸움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병신, 쓰레기 취급하는 정부의 산재(환자) 정책을 바꿔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 ‘추가상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진행중인 이상섭씨는 병원의 오진과 회사측의 무성의 및 근로복지공단의 무책임을 성토했다. ⓒ 매일노동뉴스

병원 ‘오진’ 회사 ‘무성의’ 공단 ‘무책임’

또 다른 소송을 준비중인 산재노동자 이상섭(50)씨를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산재노협 사무실에서 만났다. 30~40킬로그램 중량의 오디오 스피커 시스템을 수주, 운송, 배달하는 현장책임자였던 이씨는 2001년 12월 화물차에서 바를 묶다가 떨어져 뒤꿈치 뼈 골절상을 입었다.

당시 허리에도 통증이 있었지만 병원에서는 “뼈는 이상이 없고 놀란 거니 물리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씨는 이후 계속 허리가 아파서 J병원쪽에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상 없으니 크게 신경쓰지 말라”는 말 뿐이었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자 이씨는 2002년 6월 K병원서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 촬영을 했다. 결국 ‘요추부 염좌’ 판명이 나왔다. 이를 기존 J병원에서는 4, 5번 추간판탈출증이라 진단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추가상병을 올리라고 해서 올렸으나 공단 관악지사쪽은 한 달 뒤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병원장은 불승인이 떨어진 것이 미안했던지 ‘견인치료’는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화를 더 부른 꼴이었다. 척추분리증 환자에게 견인치료는 금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원진녹색병원에서는 엑스레이 필름을 보더니 기존 척추분리증이 악화된 것으로 추간판탈출증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특진을 의뢰한 S병원에서도 척추분리증과 척추전방전위증이란 소견이 나왔다. 병명을 재차 고쳐 추가상병을 올렸지만 역시나 공단 관악지사에서는 업무상 관련성이 떨어진다며 ‘불승인’이 떨어졌다.

“애당초 진단을 제대로 받았으면 이런 생고생을 안 하는 건데….” 79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그제서야 90년 이후 허리가 아파 종종 침 맞으러 다녔던 기억을 되살리며 오랫동안 중량물을 옮기면서 허리통증이 심해졌던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 다녔던 회사들 가운데 한 회사만 소송에 필요한 사실조회서를 제때 써주었다. J병원의 오진이 여러 병원에서 숱한 진단을 받게 했고, 결국 ‘산재불승인’의 화근이 되었다. “아픈 노동자의 편이 돼야 할 공단쪽의 무성의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씨는 그간 소송준비 과정에서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발꿈치 골절이 지난해 2월 치료종결이 되면서 이씨는 그나마 휴업급여도 나오지 않는다. 12급 장해판정으로 1천여만원을 받았지만 집안 살림과 재판비용으로 다 써버렸다. 생계가 막막한 이씨는 사업하는 동생이 매달 60여만원씩 보내주는 도움 덕분에 소송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씨는 2003년 7월 ‘추가상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냈고, 지루한 법정공방의 선고는 2년여 만인 오는 6월 있게 된다. 이씨는 그러나 자신이 승소하더라도 또 항소에 상고까지 언제 끝날지 모를 재판이 갑갑할 따름이다.

▲ 왼쪽 손가락이 절단된 정달윤씨에게 근로복지공단측은 서둘러 치료종결 조치를 내렸다. 덜렁렁한 손이 채 치료도 되기 전이었다. ⓒ 매일노동뉴스

노동자의 건강보다는 경쟁력이 우선?

원고 이씨의 피고인인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쪽은 ‘요추에 관한 위험요인은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도 진행될 수 있다’는 요지의 변론서류를 꾸몄다. 공단측의 산재(노동자)에 대한 입장을 잘 알 수 있는 변론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산재로 인정함으로 인해 어쨌거나 책임을 져야하는 사업주 입장에서 유사한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에게 직·간접으로 퇴사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소수의 근로자에 대한 측은함 때문에 대다수의 근로자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직장의 상실가능성,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인한 기업의 비용 증가, 기업 비용증가에 따른 상품가격의 상승과 산업경쟁력 약화, 또한 이로 인한 국가경쟁력의 약화 등 대다수가 피해를 보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사회적 판단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노동자의 복지증진을 위해 설립한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아리송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쪽은 산재신청에 대한 승인률이 95%대라지만 근골격계 질환, 추락 등 분야별 집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치료종결 건은 통계조차 잡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이롱'(가짜) 환자 운운하며 장기요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강제요양기간의 설정, 치료기간의 축소, 휴업급여 보전축소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경총의 주장은 한 술 더 뜬다. 산재보험을 물 쓰듯 써버려 기금이 고갈될 수 있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게 경총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건강한 노동세상의 조성애 사무국장은 “치료기간이 오래된 환자들에게 ‘나이롱 환자’라며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데 실제 그런 환자들이 없진 않겠지만 일부를 전체인 마냥 부각시켜선 안 된다”며 “산재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영준 한림대성심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치료기간이 연장되는 것은 재활치료와 직장복귀의 토탈 산재 프로그램이 없어서 나타나는 문제”라며 “그런데도 지난해말부터 공단은 요양관리 업무처리 지침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고, 경총, 기업 등은 치료기간, 휴업급여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루 2명의 근골격계 직업병 노동자가 신병을 비관해 자살하는 현실. 산업안전 관련 노동단체들은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인 4월을 맞아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 점거농성에 들어가는 등 산재 불승인과 치료종결 남발에 항의하고 있다. 산재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고 즐겁게 현장으로 돌아가는 날은 언제나 가능할까?

이수현 기자 shlee@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