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건설플랜트 일용직의 현주소 울산 남구 한 석유화학공장 안에 높이 솟은 굴뚝(높이 80여m·지름 30㎝)은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18일 오전 10시 굴뚝 꼭대기 바로 아래쯤 로프에 매달린 3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폐가스를 불태워 없애는 굴뚝 안을 청소하고 내부 설비를 보수하고 있었다.
공치는날 빼니 연봉 2천이하 강풍이 불 때마다 아찔하다. 하지만, 이들은 비가 오지 않는 한 하루 정해진 작업량을 마쳐야 하는 탓에 점심도 굴뚝 상단 빈 공간(플랫폼)에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리고는 다시 작업을 시작해 오후 5시가 돼서야 땅으로 내려왔다.
17년째 굴뚝을 타고 있는 ㅊ(46)씨는 “굴뚝으로 가려면 사다리를 타고 30여분 동안 올라가야 하고 자칫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석유화학업체에서 공사를 따낸 전문 건설업체는 일용직을 채용해 올려 보낸다”며 “굴뚝으로 올라갈 때마다 마음 속으로 무사고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철 구조물을 자르는 제관공인 ㅎ(39)씨는 그래도 ㅊ씨가 차라리 부럽다. 그는 석유화학업체들이 내수침체로 생산량을 줄여 공장을 짓는 곳이 점차 줄어들자 몇 년 전부터 전국을 떠돌며 일감을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올 2월 경기도 평택시 ㅎ사 공장에서 일한 뒤 일감이 없어 울산으로 내려와 쉬고 있는 그는 “휴일도 없이 한달 가량 꼬박 일하면 300여만원을 벌지만 숙박비 등 현지 체류비를 빼면 250여만원이 남는다”며 “실제 일하는 날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연봉이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국민연금도 내돈서 숙련공인 이들은 그나마 하루 10만~12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하지만 비숙련공인 보조공들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배관 보조공인 ㅇ(41)씨는 “외환위기 뒤 노동 강도는 갑절로 세졌지만, 일당은 하루 7만~8만원 그대로”라며 “하루 3000원의 점심 도시락 값과 교통비를 빼면 6만~7만원 가량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20~30년 일해도 해마다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 데다가 비나 눈이 오면 하루를 공친다.
휴일에 일해도 휴일 수당 등 각종 법정 수당은 물론 퇴직금도 없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업주가 일정 비율을 부담해야 할 기초보험도 이들이 모두 부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관 보조공 ㅂ(40)씨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개인 자격으로 가입하고 있다”며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가입했지만 중상 또는 사망사고가 아니면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치료비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다운 작업환경 원해요” 이런 악조건을 참다 못한 건설플랜트 일용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월 노조를 결성했다. 건설플랜트 조합원 1000여명은 지난달 18일부터 자신들을 고용하는 전문건설업체 58곳에 △근로조건 개선(하루 8시간 노동보장 등) △다단계 재하청 금지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ㅂ씨는 “공장 안에 화장실과 탈의실, 샤워실이 있지만 일용직들은 사용할 수 없고, 점심도 비나 눈을 맞으며 먹어야 한다”며 “최소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했다. 울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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