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청사 청소노동자들, 23년 만의 ‘반란’
1인당 월 14만원 삭감…“우리를 무시한 것” 파업 이틀째
관악산 자락 끝머리에 자리 잡은 ‘정책생산 기지’ 과천정부청사(1982년 설립). 4월 하순 내리쬐는 봄 햇빛 아래 과천청사는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롭다. 부지 33만9천㎡에 건물면적 14만6천㎡. 과천청사는 청사 5개동, 후생동, 안내동이 있으며 재정경제부 등 11개 중앙행정기관이 입주해 있다. 여기서 일하는 공무원만 5,500여명.
26일 한적한 청사 한 곳이 소란스럽다. 군청색 옷에 하얀 실내화를 신은 50대 아주머니, 아저씨 90여명이 안내동 한쪽에 모여 농성 중이다. 과천청사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이다. 과천청사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공무원들도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를 해고시키려고 해서 이렇게 나선 겁니다.” 한 사람이 말을 시작하자, 이곳저곳에서 “억울하다”, “이럴 수 있는 것이냐”, “우리도 집단 사표를 내겠다”며 아우성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벌써 이틀째 일손을 놓는 등 사실상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매일노동뉴스
23년 동안 침묵, “이제는 못 참는다”
과천청사를 청소하는 노동자는 약 100여명. 이 가운데 여성 미화원이 75명, 남성이 20명이다. 과천청사의 청소는 82년부터 예비역들의 친목단체인 재향군인회 소속 향우용역이 맡아왔다. 향우용역이 조달청을 통해 23년 동안 청사와 ‘수의계약’(도급 등을 계약할 때 경매·입찰 등의 방법이 아닌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해 맺는 계약)을 맺어온 것. 향우용역은 과천청사 이외에 서울지하철 등의 청소업무도 맡고 있으며 직원은 1600명 가량 된다. 재향군인회는 명목상 비영리단체지만 규모면에서는 대형 기업체다. 중앙고속, 충주호 관광선, 통일전망대, 향우산업 등 10여개 사업체를 갖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기금이나 국고보조의 형태로 매년 4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지원받는 ‘특별단체’이기도 하다.
국정감사 등에서 재향군인회의 수의계약이 특혜 시비를 받자 지난해 말 과천청사는 계약방식을 입찰경쟁으로 전환한다. 당시 과천청사 청소계약에 60여개 업체가 몰렸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재향군인회가 또 다시 최종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단가가 떨어지게 됐다. 재향군인회는 “수의계약 시절에는 약 17억원에 낙찰이 됐는데 이번에는 14억5천여만원으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차액으로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낮은 곳으로 향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임금 저하.
“300만원 받던 사람도 10만원 임금이 떨어지면 난리가 날겁니다. 겨우 80만원 받아왔습니다. 여기서 14만원을 깎으면…”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말이 안 나온다며 한 숨부터 내쉬는 박아무개씨. “우리가 못 배우고 무식하다고 생각하니까 사람 취급 안하는 거죠. 너무 속이 상합니다.” 10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남편을 일찍 잃어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박씨의 근심은 더욱 깊어보였다.
“그저 참기만 했습니다. 지난 IMF 당시 30명 가까이 구조조정을 당하고 임금이 5만원씩 깎여도 참았습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꾹 참았죠. 나간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구조조정 당한 사람이 하던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일이 더 늘어난 거죠.” IMF로 재향군인회가 어려워졌는지 어쩐지는 모른 채, 나가라고 해서 나갔고 임금을 깎는다고 해도 그저 꾹 참기만 했던 것이 자신들의 모습이라며 김아무개씨는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청소하는 아주머니 10여명이 점심시간에 2평 남짓한 방에서 밥을 직접 해 먹고 있다. 휴게실이 너무 좁아 서서 먹는 노동자도 있는 등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그대로 말해준다. ⓒ 매일노동뉴스
임금삭감 “노조는 동의, 노동자는 거부”
“3월 초에 2월분 월급을 받고 나서 제 임금이 14만원 정도 깎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이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죠.” 23년째 과천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조아무개씨는 임금삭감도 화가 나지만 이 과정에서 보인 회사의 태도에 더 분노가 치민다고 말한다. “청춘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살기 힘드니까, 그저 내 일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했죠.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23년이나 몸담은 곳인데 회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임금삭감 과정에서 회사는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일까.
이에 대해 향우용역은 “노조와 임금삭감에 합의를 했다”며 “내용과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향우용역에도 노조가 있다. 상급단체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설립된 지는 10년이 넘었다. 향우용역노조가 이번 임금삭감에 동의한 것도 사실이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노조는 임금삭감에 동의하고 조합원들은 노조를 외면한 채, 파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왜 임금삭감에 동의를 했을까. 조합원들의 의견은 물은 것일까.
“단가가 떨어지면서 재향군인회도 거의 수익금을 가져가지 못한다는 부분을 꼼꼼히 확인하고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많이 삭감된 것 같아 수차례 교섭을 통해 애초 떨어진 금액에서 2만원 정도 올리는 것으로 어렵게 합의를 했죠.” 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선출된 대의원(4명)을 통해 조합원 의견을 수렴했다”며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약 70여명의 조합원들은 ‘동의할 수 없다’며 지난 3월 노동부에 진정서까지 냈다. 진정서가 접수된 시점과 맞물려 향우용역은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받기 시작했다. 현재 6명만 빼고 90여명이 모두 계약서에 동의를 한 상태다.
“나갈 거냐, 계약서를 작성할 거냐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싸인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계약서 작성하라고 계속 전화가 오고, 어쩔 수 없어서 했습니다.” 이아무개씨는 사실상 ‘강요’에 의한 계약서 서명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향우용역 관계자는 “강요는 말도 안 된다”며 “다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데 동의가 돼 계약서에 싸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반발하고 있는 사람은 계약서를 쓰지 않은 6명 등 일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과천청사 청소노동자 가운데 약 95%가 일손을 놓고 있었다.
재향군인회 “우리도 억울해”…계약방식이 문제
재향군인회와 향우용역노조 관계자들은 “자신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조달청 계약방식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냐”고 호소했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계약방식이 변경돼 단가가 낮아져 인건비를 줄이게 된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라며 “우리도 수익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의계약으로 23년 동안 남긴 ‘수익’을 일부 환원할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매년 연말이 되면 수익금을 모두 보훈성금으로 내기 때문에 연초는 항상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며 “청소원들에게 줄 임금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청소노동자들은 전혀 믿지 않고 있지만 재향군인회 주장도 새겨볼 대목이 있다. 용역, 도급 등 간접고용 관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청이 단가를 낮추면 하청은 인건비를 줄이는 ‘악순환’의 고리. 정부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고 재향군인회는 계약관계 탓을 돌리고 있는 상황. 정책을 생산하는 과천정부청사에서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데 민간기업 등 다른 곳은 보지 않고도 상황의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여성연맹 이찬배 위원장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하고 정부가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민간기업 하도급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정책을 생산한다는 곳에서조차 이 모양이니, 한심할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도 지난해 조달청 대상 국감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심상정 의원실 관계자는 “인건비에 대한 규정이 용역계약 과정에서 계약서상에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아 나타나는 문제”라며 “조달청, 나아가 정부관련 기관은 입찰 과정에서 인건비 지급액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표준인건비 기준금액’ 미만일 경우이거나 이전 인건비보다 상당부분 저하될 경우 등에 대해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는데 익숙한 사람들, 50년 이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투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 만큼, 그들은 억울하고 절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 호소할 데라도 있어야 좀 덜 답답하죠. 화는 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여성연맹 위원장도 도와주고, 노동부 공직협 회장님도 많이 애써주고, 무엇보다 이렇게 함께 싸우니 생각보다 무섭지 않습니다.” 안내동 로비에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처음 써보는 피켓위에는 꼬불꼬불 하지만 이들의 요구가 분명히 담겨져 있다.
“재향군인회는 과천청사 청소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들의 요구에 정부와 재향군인회가 답할 차례다.
김소연 기자 dandy@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