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①
우리의 일자리는 안전한가
“4월28일 우리 모두 촛불을 드는 것에서부터”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날, 세계 곳곳에서 산재로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고 더 이상 노동자가 죽음에 방치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기념해 매일노동뉴스는 ‘근골격계직업병 인정기준 개악안 폐기와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산재보험공투위)와 함께 4·28의 의미를 짚고 안전한 일자리 확보를 위해 ① 우리의 일자리는 안전한가 ② 안전한 일자리를 확보해야를 주제로 2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마련했다.<편집자주>
일자리 수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질이 더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불안한 고용과 실업이 문제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화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약이나 운동본부 같은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자리와 관련해 사회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일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자리 수’로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일자리 질’이라는 중요한 논의는 결여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나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봐야 저임금 때문에, 인권침해 때문에, 또는 열악한 환경에 의한 질병과 사고의 문제 때문에 결국은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지난 2000년 국제노동기구(ILO)의 후안 소마비아 사무총장의 입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 ILO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실업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일자리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좋은 일자리, 안전한 노동(Decent work, Safe work)” 운동을 제기하였다. ILO에 따르면 좋은 일자리에는 고용안정, 사업장 내 노동자의 기본권 증진, 사회보장에 의한 노동자 보호 등이 보장돼야 하며, 노동자 보호 중에서도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기 위한 노동안전보건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한다.
1년 3천명 사망, 좋은 일자리는 멀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대는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되고, 고용불안을 증대시킨다. 게다가 기업도시와 같이 환경안전 규제가 소용없는 자본천국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지옥 같은 노동조건으로 몰아가게 된다.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고용의 불안이 없는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생명보다는 돈”이라는 자본의 문화적 지배가 압도적이었고, 좀처럼 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60~70년대에는 노동자는 산업전사여서 죽는 것이 당연했고, 81년 전두환 정권에서 도입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당시 “기업활동에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만들었다”는 국회 회의록에서 드러나듯, 노동자 목숨보다는 경제가 더 중요했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한 투쟁에 의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조금씩 바뀌긴 했으나 IMF의 된서리를 맞고서는 규제완화의 칼날 앞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3천명의 노동자들이 죽고 있는데, 영국보다 30배 가량 높다고 한다. 캐나다나 다른 나라들이 노동자 사망에 대해 기업주를 살인죄로 처벌하는 것이 최근의 동향인데도,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죽는 것에 대해 눈도 꿈쩍도 안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공약으로 재해율 1/2 감소를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불안한 고용과 저임금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과로사를 하든, 유해물질을 너무 많이 마셔 중독으로 사망하든, 노무현 정부는 인권위원회조차 문제가 있다고 하는 비정규법안을 통과시키려고 막무가내이다. 멀어도 너무 멀다. 안전한 일자리와 좋은 일자리를 말하기에는 말이다.
4월28일 촛불을 드는 것에서 출발하자
지난 93년 5월 심슨가족 인형을 만들던 태국 케이더 장난감 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188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죽었는데 이렇게 대규모 희생이 발생한 것은 공장관리자가 노동자들이 장난감을 훔쳐갈까봐 밖에서 공장문을 잠그고 일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96년 4월28일 유엔의 지속가능한발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국제자유노련 대표자들은 촛불을 밝혔다. “노동자가 죽어나가고 병들고 있는데,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외침은 전 세계 70개국으로 퍼져나갔고, 촛불을 들게 만들었다.
캐나다에서는 91년부터 4월28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행사를 해오고 있었다. 이 날은 캐나다의 산재보상법이 통과된 날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ILO 등 전 세계 노동운동 단체와 기구는 4월28일을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이날 죽은 노동자가 일하던 자리에 안전화를 갖다놓고 촛불을 올려놓으며,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죽는 현실을 사회에 알려내며, 노동자 목숨이 소중한 사회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4월28일에는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도 하지만, 각 나라별로 필요한 제도를 제안하거나, 문제 있는 정책이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도 열리고 있다. 일자리가 노동자와 그의 가족을 위협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8년 7월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이후 매년 7월 추모행사를 해오고 있었으나, 국제적 추세에 맞추어 4월 행사로 바꾼 지 이미 여러 해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제를 전국의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모여 해본 적이 없다. 민주노총은 올해 처음으로 전국 주요 도시별로 산재사망노동자를 기리는 추모 촛불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는 국회 앞에서 촛불이 밝혀질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가? 일자리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 보다 안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대 속에 기업들이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 양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이 부도덕함에 대해 나눠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이윤보다는 사람 목숨이 더 소중한 가치를 가져야 함을 나눠야 한다.
4월28일 우리 모두 촛불을 들자.
박세민 산재보험공투위 집행위원장
2005-04-28 오후 2:37:3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