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②
안전한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노동자의 일터는 무너진다…비정규화 증가·근골격계 인정기준 까다로와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날, 세계 곳곳에서 산재로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고 더 이상 노동자가 죽음에 방치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기념해 매일노동뉴스는 ‘근골격계직업병 인정기준 개악안 폐기와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산재보험공투위)와 함께 4.28의 의미를 짚고 안전한 일자리 확보를 위해 ①우리의 일자리는 안전한가 ②안전한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를 주제로 2회에 걸친 공동기획 기사를 마련했다.<편집자주>
노동자의 일터가 무너지고 있다.
IMF 이후, 노동자들의 일터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가 진행됐다.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 다음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고, 힘들어도 힘들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해 더 많은 일을 하라고 강요해 왔다.
그 결과는 참담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원감축, 노동강도의 강화, 저임금에 의한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으로 ‘골병’이라는 근골격계 질환과 심장마비 같은 심혈관계 질환을 증가시켰다.<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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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살아남은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발표한 논문이 실렸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해 심장마비로 죽을 가능성이 두 배나 높게 증가했다는 것이 핵심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7월 두산중공업에 다니던 한 노동자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두산중공업은 2000년 이후 40%가 넘는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했으며, 이 때문에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회사 일이 너무 힘들었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업체 때문에 일도 안 되고 두산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고 이 길을 택한 내가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요”, “나는 가정보다 회사 일을 더 소중하게 처리했고 이런 문제로 당신에게 행복하게 못해준 점 정말 미안하오”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오히려 재해율은 4년 만에 감소?
2005년 오늘, 직장을 다니며 노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올해 초 노동부는 4년 만에 재해율이 감소했다며 자축하는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돌렸다. 하지만, 도대체 이 말을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IMF 이후 현장의 작업조건이 열악해지면서 근골격계 질환이 급증하자, 자본과 정부는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나 산재신청하면 인정받는 것처럼 떠들었고, 병원에 누워있어야 할 환자가 술 마시고, 이중취업을 한다며 난리였다. 그리고 어느새 직업병의 인정기준이 문제 있다며, 더 까다롭게 인정해주는 기준을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바로 2004년 말에 노동부에서 만들어 근로복지공단에 전달한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기준 처리지침’이다. 그리고 또다시 심혈관계 질환도 인정이 너무 쉽다며 기준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량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과 장시간 노동이 확산돼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산업재해들을 더 까다롭게 인정함으로써 산재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노골적 시도가 진행된 것이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재해율 1/2이 달성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사회의 건강함은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사회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구성원 중 반 이상은 노동인구이다.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동자가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은 정부의 적극적 노력 속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재해규모를 줄이기 위해 직업병과 산재를 은폐하고 인정을 까다롭게 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플 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마땅하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 벌금형이 내려진 바 있다. 이처럼 관련법을 더욱 강화해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기업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관련법 중에서는 특히 많은 나라들이 기업의 책임을 더 강화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기업살인법’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업이 노동자를 죽이고 병들게 하는 것에 대해 너무 관대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에 대해 강력히 처벌해 기업이 스스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부터 일터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 노사정이 씨름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일자리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그렇게 일하다가 어느새 병들고 사고를 당해 일도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나쁜 일자리로 인해 불안한 사회가 될 것이고, 세계화된 자본에 단물을 빼앗겨 미래가 없는 껍데기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일자리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임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좋은 일자리, 그것은 고용이 안정되고, 어느 정도의 임금을 받고, 몸이 망가지도록 지나치게 일하지 않고, 그리고 직업병과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일자리이다.
박세민 산재보험공투위 집행위원장
2005-05-01 오후 2:53:52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