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도 살인이다> 연중기획 ③
현행법은 기업주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검찰과 법원 산재사망 처벌 솜방망이 머물러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도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을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 수반과 사회전반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매월 2회씩 연중 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관련기사는 www.labortoday.co.kr에 마련된 별도의 공동캠페인 게시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지면을 통해 많은 이야기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심각한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선진국의 연구기관과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한결같이 ‘사업주 책임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현재의 시스템 내에서는 산재사망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자를 죽인 사업주를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산재책임자 처벌현황 형편없이 낮아
현재 한국에서 산재 책임자는 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물론 일부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되고 있는 현황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표 2>를 보면 2000년도 한 해 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가 이뤄진 9,246건 중 구속 상태에서 공판이 이루어진 경우는 단 5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속자 수 역시 상당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 1>
또한 <표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제1심 선고공판이 이뤄진 것은 108건으로 이중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해 실제 처벌수준이 솜방망이라는 비난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수준이 문제
위에서 나타난 결과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처벌되고 있는 수준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처벌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처벌수준을 대폭 강화하면 법원에서의 처벌수준이 다소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 형량수준은 다른 법과 비교해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론이 만만치 않으며, 형량수준을 높인다고 해서 실제 처벌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검찰과 법원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검찰이나 법원이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처벌을 강화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과연 그럴 수 있겠는지 몇 가지 현실을 살펴보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공안사건으로 처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가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공안사건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범죄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검찰은 몇 개의 부서로 나뉘어져 있는데 과거 독재정권의 산물로 노동사건은 공안사건으로 분류돼 처리되고 있다. 공안담당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사업주를 기소할 때 처벌수준을 강화하려 할 것 같은가 아니면 낮게 처벌하고자 할 것 같은가?
한편, 실제 산재사고가 나면 사고조사와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관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다. 물론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초기에는 일반 경찰도 수사를 하지만 일단 그것이 산재사고라고 판명이 되면 대부분 사고조사와 수사는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담당하게 된다. 노동법에 대한 수사는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이 수행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 사법권한 산업안전보건법상 한정
근로감독관의 수사범위는 노동관계법으로 국한돼 있으며, 산재사고의 경우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여부에 대한 수사는 일반 형법처럼 사고에 대한 과실치사상죄의 여부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된 의무이행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발견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으로 과연 검찰이 높은 형량을 구형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법원은 높은 처벌을 선고할 수 있겠는가?
현재 산재 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가 원론적인 주장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은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틀이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일 뿐이다. 그러므로 산업안전보건법의 틀 내에서만 사업주의 책임 강화와 처벌 강화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외국의 경우 산재사망을 ‘살인’범죄로 규정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외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문제가 존재한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에는 산재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 범죄로 규정해 새로운 범죄 형태로서 형법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미 캐나다, 호주의 특정 주에서는 이러한 법이 제정됐고, 영국, 미국 등에서도 이러한 법률안이 제출되어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천문학적 수치를 갱신하고 있는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하여 우리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박두용 한성대 안전보건경영대학원 교수(노동건강연대 기획위원) yo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