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신> 벼랑끝에 내몰린 울산건설플랜트노동자

‘법과 원칙’만을 내세우는 정부, 파업 해결에는 ‘침묵’

5·18 광주민중항쟁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수많은 민중들이 군사정권의 총칼 앞에 이유도 모른 채 쓰러져야 했던 1980년 5월. 그리고 2005년 5월18일,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70m 정유탑에서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경찰특공대에 의해 무력하게 강제 연행됐다.

고공농성단의 강제연행 소식을 듣자마자 오후 9시 울산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시각 울산건설플랜트노조 300여명의 조합원들은 울산남부경찰서 항의방문을 진행, 연행된 조합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었다. 연행된 조합원 3명은 울산의 한 병원에서 응급조치 후 울산남부경찰서로 이송, 조사를 받는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진제공=울산노동뉴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도착한 오후 10시.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강제연행이라는 긴급한 상황에서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헌구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의 표정에서 두달여간 진행한 울산건설플랜트파업이 마지막 한계에 부딪쳤음을 보여줬다.

“파업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울산시청, 울산지방노동사무소, 울산경찰, 전문건설업체를 찾아가 애원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우리가 폭력시위로 매도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파이프를 들고 거리로 나섰겠습니까.”

연일 언론이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거리에 나선 이들의 집회를 불법·폭력시위, 심지어 깡패집단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한 항변이다.

항의방문을 마치고 해산한 조합원들 몇 명이 노조의 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끝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동료들이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감행했어요. 70m 상공에서 18일 동안 위험을 무릅쓰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죽기를 바라는 겁니다. 까짓 죽어서 해결된다면 이 자리에서라도 죽을 수 있어요. 두달 동안 우리 목소리는 들어주지도 않았으면서 무조건 백기투항을 하라고 하는데, 20여년간 참고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는데도 왜 우리가 이러고 있는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누구하나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아요.”

“지긋지긋한 이 싸움 그만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만둬도 갈 데가 없어요. 말 그대로 우리는 하루 일하고 하루 살아가는 노가다꾼 아닙니까. 몇몇 조합원들은 파업을 중단하고 다니던 업체를 찾아가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도 했어요. 들은 척도 안합니다.”

가슴속에 담아놨던 울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어리진 속내를 풀어놨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현재 상황은 답답할 뿐이었다.

19일 자정 무렵 노조의 회의가 끝났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이 18일 오후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앞으로 이후의 모든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내용을 통보하고 최근 불법집회에 가담한 조합원 전원을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노조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사진제공=울산노동뉴스>

끝난 싸움, 죽는 일만 남았다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지역업종협의회 의장은 “두 달간 파업을 벌이면서 울산노동사무소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침묵하고 있고, 울산의 검·경은 강경대응으로 노조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SK와 전문건설업체들은 개별교섭을 요구하며 교섭내용보다는 교섭형식을 가지고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이 싸움은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백의장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정부가 직접 내려와 사쪽과 교섭자리를 만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법과 원칙’만을 내세우며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파업을 해결하기 보다는 노조가 자포자기해 파업을 스스로 정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이상 정부에 기댈 것이 없다며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박해욱 위원장 등 노조간부 7명은 불법시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경찰이 검거에 나섰으며 이미 22명의 조합원들이 구속됐다. 울산남부경찰서는 17일 새벽 1천여명의 경찰을 동원해 두달간 농성을 벌였던 외국인공단부지의 농성장도 철거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SK건설현장 35m 타워크레인 위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농성단이 농성 19일째인 18일 오후 삭발식을 진행하고 ‘단체협약’이 체결될때까지 절대로 내려오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울산건설플랜트노동자들의 외침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허한 노무현 정부의 약속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