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직업병 앓는 노동자 2억 명 넘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2억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각종 직업병과 산업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직업병은 현재 중국 노동자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위험으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직업병 발생이 매년 평균 13%씩 급증하면서 중국 GDP 성장 속도를 웃돌고 있어 중국 정부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 유독유해물 관련 기업 1600만 개, 세계에서 진폐증 가장 심각= 지난달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0회 직업성 호흡계통 질병 국제회의’에서 중국 위생부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서 직업병이 위험한 수준에 와 있다”고 전제하고 “유독유해 관련 업체가 1600만 개를 넘었으며,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가 2억 명을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위생부 쟝줘쥔 부부장(차관)도 3월 16일 ‘전국 직업병 예방치료 화상회의’에 참석, 1950년대 직업병보고제도를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진폐증(직업병의 하나로, 먼지 가루를 장기간 흡입하여 발생하는 폐의 장애) 노동자가 58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다른 국가들의 진폐증 환자를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다.
이 가운데 14만 명이 이미 목숨을 잃었으며, 현재 44만 명의 노동자가 진폐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해마다 1만 명의 진폐증 노동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진폐증은 현재 중국에서 직업병 중 80%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은 전문가들을 인용, 현재 공장·광산 노동자들의 신체검사율이 낮은 점을 감안할 때 실제 발병자 수는 보고된 수치에 견줘 10배 더 많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진폐증 노동자 실제 숫자도 최소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폐증 외에도 중국에서는 매년 전국적으로 3만 명의 노동자가 화학물질 중독증, 농약 중독증, 방사능과 관련된 직업병에 걸리고 있다. 폐 세포를 손상시키는 석면증으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도 지금까지 10만 명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방에서는 직업병 위험이 심각한 수준에 달해, ‘진폐촌’, ‘중독촌’ 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다.
특히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농민공’들의 직업병 문제가 더욱 심각해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현재 농민공들은 위험하거나 힘들고 더러운 소위 ‘3D업종’의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서 직업병을 가진 노동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유해 기업들이 고의적으로 농민공들과 노동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베이징대학 공공위생학원 허리화 교수는 “회사 측이 농민공들과 노무계약을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농민공들이 직업병을 얻어도 치료와 보상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직업병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국가안전생산감독관리총국 왕더쉬에 부국장은 “중국 내 직업병 발생이 도시공업지대에서 농촌으로, 동부 지방에서 중서부 내륙으로, 대기업·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겨가면서 그 발생 분포지역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왕더쉬에 부국장은 “노동자의 건강 권익이 보호를 받고 있지만,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직업 위생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고 말했다.
▲ 기업과 지방정부의 이해관계 맞아 떨어져 직업병 증가 부추겨= 랴오왕동팡져우간 등 중국 언론들은 일부 기업들이 ‘먼저 차에 오르고, 표는 나중에 산다’는 사고방식을 갖고서 직업병 예방치료법의 규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 직업병 발생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들은 또 직업병 예방치료책임을 다하지 않고 직업위생 예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국가에서 금지한 일부 기술과 재료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특히 외자기업과 자본 유치에 더 관심을 쏟고 있는 지방 정부들의 자세도 직업병 증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중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경제발전을 중시하고 있는 지방 정부들이 기업에게 양호한 ‘투자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직업병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 당연히 법규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도 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위생부 통계에 따르면 ‘직업병예방치료법’ 시행 첫해인 2002년에 위생감독 범위 내 22만여 개의 유독유해 관련 공장·광산 가운데 40%만이 위생감독을 받았다. 벌금이 최종 부여된 곳은 전체 처벌기업 중 1.8%에 그쳤다. 직업성 건강검진 대상 노동자 900만 명 가운데 310만 명만이 검진을 받았을 뿐이다.
즉 기업·자본을 유치해 경제발전을 꾀하려는 지방 정부와 이윤 확대를 우선시하는 사업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노동자를 만성 직업병과 죽음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위생감독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직업병 증가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상하이시의 경우 10만 개의 공장과 400만여 명의 노동자가 있지만, 직업위생감독을 담당하는 인력은 6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현재 직업병 예방치료원도 전국적으로 12곳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중국 위생부는 지난달 직업병 관련 감독과 검사를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직업안전을 보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직업위생시범기업 선정에도 착수해 직업병 개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베이징대학 사회학과 슝웨건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보호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온기홍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