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산재승인 ‘오락가락’

청구성심병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유사 사건에 다른 결정

근로복지공단은 2일 보건의료노조 청구성심병원지부 김명희 부지부장 등이 낸 산재인정 신청에 대해 “노조탄압에 따른 정신질환이므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 <레이버투데이 2003년 8월4일자>

근로복지공단은 “쟁의행위 중인 조합원들은 사용주의 지배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산재로 승인되지 않는다”며 불승인 판정을 구두로 지난 27일 통보했다. – <레이버투데이 2005년 6월2일자>

단지 2년이라는 시간차만 있었을 뿐이다. 2003년 8월 근로복지공단 은평지사는 청구성심병원 8명의 조합원이 낸 산재인정 신청에 대해 승인을 통보했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회사쪽의 지속적인 폭언, 폭행, 집단 따돌림 등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정신질환에 대한 첫 ‘산재’결정이었다. 직장 내에서의 ‘왕따’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는 있지만, 개별적인 대인관계가 아니라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집단적으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사쪽이 조합원들에 대해 폭언과 폭력은 물론이고 감시, 차별적인 업무부과, 인사해도 받지 않는 등의 부서 내 ‘왕따’를 유발했으며, 이로 인해 조합원들이 장기간 우울·불안 등 적응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청구성심병원 조합원들의 산재신청 이유였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지난 지난달 10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노조 13명의 조합원들은 “노조 조합원에 대한 사업주의 폭언, 감시, 교섭해태, 조합원 차별 등으로 ‘불안과 우울반응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가 발병했다”며 같은 이유로 산재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같은 달 27일 전원 불승인 통보가 떨어졌다.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들은 ‘적응장애’라는 같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고 노사간 마찰이 심했다는 점에서 유사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근로복지공단 은평지사는 산재인정을 승인하고 2005년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는 산재인정을 불승인 했다.<표 참조>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시디코리아

청구성심병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산재신청이유 노조활동을 이유로 사쪽이 조합원들에 대해 폭언과 폭력은 물론이고 감시, 차별적인 업무부과, 인사해도 받지 않는 등의 부서 내 ‘왕따’를 유발했으며, 이로 인해 조합원들이 장기간 우울·불안 등 적응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 노조 조합원에 대한 사업주의 폭언, 감시, 교섭해태, 조합원 차별 등으로 ‘불안과 우울반응을 수반한 만성 적응장애’가 발병
산재신청자 수 청구성심병원노조 조합원 8명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지회 조합원 13명
신청방법 집단신청 집단신청
노사간 갈등 이유 노조탄압 및 임단협 결렬 노조탄압 및 임단협 결렬
노사간마찰기간
(파업 및 쟁의행위
기간 포함) 1997년~2004년 12월1일 2002년~현재까지
산재승인 여부 전원 승인 전원 불승인

이에 대해 이번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산재인정 승인여부를 조사했던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 관계자는 “우리가 청구성심병원 건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사안이 같은지 여부는 알 수 없으며, 자체 판단결과 하이텍의 경우는 산재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유사사건, 지사 따라 다른 결정(?)

지난달 27일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가 제출했던 <조사복명서> 중 ‘조사자의견’에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소속 조합원들이 제출한) 집단요양신청서의 쟁점에 대해 △개별적 근로관계 하에서 재해자들이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주의 지나친 감시와 차별로 ‘적응장애’가 발현된 것인지 △개별적 근로관계와 관련 없이 약 3년에 걸친 노사간의 불협화음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현된 것인지 △13명(해고자 5명 포함)의 조합원의 다양한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유사질병을 진단 받는 것이 의학적으로 설명 가능한지 여부로 정리할 수 있음”이라고 쓰여 있다.

즉 관악지사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13명의 정신질환이 ‘왜’ 발생했는지 보다는 정신질환과 노사관계가 어떠한 연관성을 지녔는지에 대해서 집중 조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문서에는 또 “2002년의 쟁의행위 과정과 직장폐쇄 철회 후 징계해고 및 조합원의 징계, 수차례의 고소고발 사건, 사업주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피소 등으로 다소간의 스트레스를 받은 점은 인정되나 이는 2002년 쟁의행위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음”이라고 의견을 적시했다.

관악지사 관계자는 “자문의사협의회에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들의 발병일자가 2003년 1월께로 동일하고 또 초진일자도 2004년 8월초에서 9월초로 같았을 뿐더러 발병일 후 초진일까지 약물치료가 없었던 점, 노사갈등 이외에 만성적 적응장애를 일으킬만한 이례적인 충격은 없었던 점 등이 고려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종합적 판단을 통해서 본 결과 업무상 스트레스라기보다는 노사관계의 갈등에서 빚어진 문제이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재해당사자와 회사쪽 양쪽 당사자를 모두 조사하고, 현장조사 및 자문의사협의회의 모든 종합적 판단을 고려해 ‘불승인’ 처리를 한 관악지사와 ‘승인’ 처리를 내린 은평지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2003년 당시 청구성심병원 산재사건을 담당했던 ‘노무법인 참터’ 고경석 노무사는 “당시 청구성심병원의 경우도 노사갈등이 무척 심했으며 재해당사자가 사쪽의 감시, 차별로 인해 업무상 질환이 인정됐다”며 하이텍알씨디코리아와 유사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고경석 노무사는 “청구성심병원의 경우 노사간 갈등을 전제하고 그곳에서 발생된 감시나 차별이 사실이었는지, 그 감시와 차별이 재해당사자들에게 질환을 가져온 것인지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관악지사의 경우는 현장조사를 통해서 사쪽이 CCTV로 감시하고 차별과 폭언, 부당한 업무배치 등을 확인했지만 “사용자와 대립관계가 되는 쟁의단계에 들어간 이후의 노조활동 중에 생긴 재해는 산업재해보상법 제4조에 따라 ‘업무상 사유’가 부인된다”고 판단했다는 것.

고경석 노무사는 “일방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것이 업무상 발생한 재해는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이 질병으로 연결되면 산재로 인정되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회사쪽의 지속적인 감시와 차별로 인해 질환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산재로 승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탄압기간 = 쟁의행위기간(?)

지난 2일 공대위가 근로복지공단 항의면담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장은 “장기간에 걸친 노사갈등으로 인해 조합원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질환이 발병한 사실은 현장조사과정에서도 확인됐다”고 밝혀, 이들의 질환발병이 노사갈등에서 기인한 것임은 인정했다.

하지만 관악지사는 노사갈등, 즉 쟁의행위기간동안은 사용자의 지배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산재’로는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관악지사 관계자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가 2002년 쟁의행위에 돌입한 이후에는 사용자의 지배 아래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그 기간동안 직장폐쇄도 했었고, 또 이 가운데 5명은 해고상태여서 산재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대위 이민정 간사는 “직장폐쇄는 2002년 6월28일부터 같은 해 11월18일까지로 불과 4개월에 그쳤고, 해고자 5명도 중노위에서 모두 복직 명령을 받았음에도 회사쪽이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간사는 “사실상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하는 쟁의행위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오히려 회사쪽의 감시와 차별, 폭언등을 더 많이 당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노사관계, 노사갈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적 관계에서는 산재인정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지난 2일 근로복지공단 항의면담과정 중에서 만난 하이텍알씨디지회 조합원들도 이번 산재결과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36개월간 회사쪽으로부터 받은 감시와 차별을 현장조사를 통해 근로복지공단이 똑똑히 목격하고도 ‘불승인 결정’을 내린 것은 노조말살을 위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회사쪽의 압력과 노동자의 생명, 건강은 신경쓰지 않고 회사쪽의 요구를 들어주기에 급급한 근로복지공단이 함께 만들어낸 또 하나의 노동탄압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현재 공대위와 재해당사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이번 불승인 결정을 철회하고 재심의를 촉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오는 8일까지 관련 답변을 서면으로 제출키로 한 상태. 과연 근로복지공단이 관악지사와 은평지사의 다른 산재 결정에 대해 어떤 답변을 제출할 지 주목된다.

마영선 기자 leftsun@labortoday.co.kr

2005-06-07 오후 2:25:01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