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재해 승인 기관 근로복지공단서 ‘제3의 기관으로’

단병호 의원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 마련…재해인정 방식도 큰 폭 변경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업무상 재해 인정 방식의 전환 및 평가 기관의 독립성 확보 △선보장 후평가 △재활급여 신설 등을 뼈대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단병호 의원실은 개정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6일 오후 2시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번에 단 의원실이 마련한 개정안은 산업재해 보상 체계의 내용과 방식 등 틀 자체를 변경시키는 내용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업무상 재해 인정 방식 전환

개정안의 커다란 특징을 꼽자면 기존 업무상 재해 인정 방식 및 재해 승인 기관이 변경된다는 점이다.

현재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이라는 두 개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에 규정돼 있는 기준을 근거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고 있다. 법원은 대체로 공단 규정에 얽매이지는 않으나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단병호 의원실은 “노동자가 당한 재해가 업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는 경우에도 재해노동자가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못한다”며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적 성격을 고려하면 이처럼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그 입증을 재해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개정안에는 의사 등이 산업재해분류기준표(노동부령으로 정함)에 따라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 기준표에 부합할 경우 ‘반증’이 없는 이상 일단 업무상 재해로 취급하도록 한 것.

하지만 의사 등의 판단이 최종 절차는 아니며 마지막 판단은 공단과 독립적인 제3의 기관인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신설)이 하도록 법안은 명시했다. 즉 공단은 의사 등이나 재해노동자로부터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받은 뒤 7일 이내 심사평가원에 요양 또는 요양연기 여부 결정을 요청해야 하고 그 요청을 받은 심사평가원은 20일 이내 판단해줘야 한다. 따라서 실질적인 재해승인기관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심사평가원으로 바뀌게 된다. <그림 참조>

재해 인정 방식 전환에 따라 절차상 변경도 불가피하다. 현재는 절차상으로 요양신청서→사업주 확인→의료기관 확인→요양신청서 제출→승인 또는 불승인(공단)→불승인시→ 심사청구 제기의 과정을 거친다. 개정안에 따르면 환자→의사→공단→심사평가원(업무상 재해 적정성 여부 판단) →공단→의료기관·노동자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단병호 의원실은 “이처럼 제3의 독립적인 기관에 업무상 재해 여부 결정권을 부여한 것은 보험기금을 운용하고 집행하는 공단이 업무상 재해 여부를 결정할 경우 재정 상황 등 외부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업무상 재해 여부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단이 업무상 재해 여부 결정 권한을 포기하고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 업무에 주력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공단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재 미인식 노동자 구제

재해 인정 방식이 변경되면 그동안 자신이 당한 재해가 업무상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를 몰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보험급여를 청구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단 의원실은 내다봤다.

단 의원실은 “현재의 구조에서는 노동자들이 상당한 의지를 가져야지 산재보상 보험급여 신청을 할 수 있다”며 “의사 등이 산업재해분류기준표를 보고 건강보험에 해당하는지, 산재인지 판단한다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바로 재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산재 미인식 노동자를 구제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 달 이상 중증 환자들이 집중돼 있다. 미국의 경우 10일 미만 요양이 필요한 경미한 재해가 60%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75% 이상을 넘는다. <표 참조>

우리나라와 미국의 중증도에 따른 산업재해자 분포 비교

년도 우리나라 미국
10일 미만 11일~30일 31일 이상 10일 미만 11일~30일 31일 이상
1997년 63.1 18.4 18.5 4.64 19.95 75.41
1998년 63.2
17.7 19.1 4.55 20.17 75.28
1999년 62.7 17.7 19.6 4.15 20.04 75.81
2000년 61.6 17.4 21.0 3.71 19.26 77.03
2001년 60.6 17.4 22.0 3.86 20.31 75.83

경미한 재해가 산재급여 청구로부터 제외돼 있는 이유 중에는 각종 직업성 질병을 환자들이 알지 못해 청구를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 포함된다고 단 의원실은 분석했다.

‘선보장 후평가’로 변경

개정안에는 의사 등이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면 그 즉시 노동자에게 요양급여를 보장받게 했다. 현재는 노동자가 당한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여지가 많은데도 공단의 승인이 있기 전까지는 산재급여를 지급받을 수 없다. 물론 ‘선보장’이 이뤄질 경우 나중에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정산관계가 다소 복잡해 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단병호 의원실은 “무조건 선보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분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 판정이 번복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선보장 대상이 요양급여에 한정되는 만큼 금액도 많지 않으며 업무상 재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최소한 치료를 받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편익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선보장 후평가’에 대해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지난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사업주가 지급보증을 한다면 ‘선지급 후평가’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개정안에는 현행 보험급여에 포함돼 있지 않은 ‘재활급여’를 신설했다. ‘재활급여’는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해 요양 중이거나 요양종료 후 재활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지급하게 돼 있다. 재활급여는 요양 중에 치료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의료재활’과 구분되는 것으로 순전히 재활 그 자체의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의미하며 △직업재활 △사회재활 △심리재활로 구분했다.

단 의원실은 “산재보험의 궁극적 목적이 산재노동자를 건강하게 사회와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라 할 때 직업재활과 사회심리재활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며 “재활급여가 재해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본질적인 틀이 바뀌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단병호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 논의가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6일 공청회에는 노동건강연대 임준 대표(현 산재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향)와 단병호 의원실 강문대 보좌관(개정 법률안에 대한 이해)이 주제 발표에 나선다. 토론자로는 노동부 권영순 산재보험과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박은철 조사연구실장, 서울대 백도명 보건대학원 교수, 한맥 손경미 노무사, 민주노총 김은기 산안부장, 한국노총 임성호 산안부장, 경총 김판중 안전보건팀장 등이 나온다.

김소연 기자 dandy@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