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도 살인이다> 연중기획 ⑥
비정규노동자 건강권 위협 심각

위험하고 힘든 일 비정규직이 맡아…산재 노출빈도 많아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도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을 지난 4월27일부터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 수반과 사회전반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매월 2회씩 연중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관련기사는 www.labortoday.co.kr에 마련된 별도의 공동캠페인 게시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사례1.
지난해 7월 창원 STX조선 선체조립공장에서 15m 높이의 크레인 보수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소속 한 노동자가 440볼트 고압선에 감전돼 사망했다. 이 조선소에선 2개월 전에도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노동자 2명이 잇따라 희생돼 노동부 특별감독까지 받은 바 있다.

#사례2.
지난해 7월 기아자동차 도장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공조기 물 빼기 작업을 하던 중 감전돼 사망했다. 감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장마철에 발생한 사건으로 그 역시 비정규직이었다.

산업현장에서 비정규직이 ‘소리 없이’ 희생되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상태로, 이 같은 비정규직의 증가는 산업현장에서의 비정규직의 건강과 안전을 더욱더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확한 비정규직의 건강과 안전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안타깝게도 현재 비정규직 재해규모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아직도 전체 비정규직의 정확한 규모가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고용형태별로 재해규모를 정확히 분류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산재사망률, 정규직의 10배 넘어

그러나 그동안의 몇 가지 조사를 통해 비정규직의 산재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01년 산업안전공단은 당시로선 매우 중요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비정규직의 안전보건 실태조사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결과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못했다. 그만큼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의 사망·재해가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산업안전공단의 ‘비정형 근로자 안전보건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재해율은 비정규직이 1.24%로 정규직의 1.16%보다 높았으며 사망만인율은 정규직이 0.29명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무려 10배가 넘는 3.09명이었다. 매우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금속산업에서 원청업체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발생 현황 비교

사망만인율 재해율(%) 공상율(%)
원청 노동자 1.91 0.74 36.9
사내하청 노동자 8.00 1.70

자료 : 노동과건강연구회, 1998.

이같은 사례는 다른 실태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998년 노동과건강연구회(현 노동건강연대)가 실시한 금속산업 원·하청 산재발생 현황조사에 따르면 원청노동자의 재해율은 0.74%였던 반면 하청노동자는 2배를 훌쩍 뛰어넘는 1.70%를 보였고, 사망만인율은 원청노동자가 1.91%인데 반해 하청노동자는 무려 8.00%를 기록했다. 산업안전공단 조사결과와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표1 참조>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와 함께 1999~2003년 5년 동안 통계청 사망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종사상 지위를 기준으로 상용직에 비해 임시 및 일용노동자의 사망위험은 3.01배, 기타군(기타비정규직)은 2.75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고용형태는 알 수 없지만 비정규직의 사망위험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노동계는 “위험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그 일자리를 사내하청으로 전가하는 동안 하청노동자는 빈번한 중대재해와 사망사고에 노동력과 목숨을 잃고 있다”며 “이는 하청노동자가 원청노동자보다 위험한 작업이 많으며 산재발생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더 어렵고 힘든 일에 노출

실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듯, 비정규직은 더 높은 위험에 노출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속산업연맹이 2002년 내놓은 ‘사내하청노동자 노동안전보건실태’에 따르면 하청노동자 응답자의 60.8%가 ‘하청노동자가 직영노동자보다 산재사고 위험수준이 더 높다’고 응답했다. 특히 조선업종 노동자들의 경우 68.6%로 가장 높았다.

이들은 그 원인으로 업무량 과다(1.97, 1~4점까지 1에 가까울 수록 위험), 장시간 노동(2.16), 위험업무 다수(2.24), 불규칙 노동(2.27), 안전조치 미흡(2.33), 이의제기 불가(2.38) 등의 순으로 꼽았다. 반면 숙련도 미흡(2.63)은 상대적으로 낮은 축에 끼었다. 결국은 ‘비정규직’이라서 작업기술이 미숙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작업시간이 길고 작업량이 많으며, 하는 일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재해율이 높은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비정규직은 주로 노동강도도 세고 작업도 어렵고 무거운 것을 다루게 되는데, 근골격계질환 등에 더욱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거죠.”

하정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교선팀장의 말이다.

또한 이의제기 불가란 측면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으로 현장 노동자들이 핵심으로 꼽고 있기 원인이기도 하다. 하 팀장은 “산재를 당해도 하청노동자들은 산재처리하기 힘들어요. 원청사가 협력사에 대해 ‘업체고과점수’를 매기는데 산재처리가 되면 협력사는 사실상 철수해야 하거든요. 그러니 산재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구워삶아 공상처리하려고 하죠. 설사 산재처리가 됐다고 해도 서둘러 돌아오려고 합니다. 일자리를 잃으면 안 되니까요”라고 밝혔다.

특수고용직은 산재보험에서조차 배제

비단 사내하청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아직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아예 산재보험에서조차 제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경기보조원은 골프채 등 무거운 짐을 메고 많이 걷고 뛰고 하다 보니 관절의 통증을 호소하거나 만성피로, 생리불순, 위장장애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잔디 관리를 위한 농약 살포로 경기보조원의 상당수가 구토나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특히 날아오는 공에 맞아 타박상이나 골절상해를 입는 ‘타구 사고’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01년 전국여성노조와 노동건강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기보조원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성수기(4~11월) 59.4시간에 이르며, 평균 1주일 라운딩 횟수는 8.4회로 한 회 18홀 라운딩시 5~6시간이 소요되므로, 일주일 3회는 오전 18홀, 오후 18홀로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수동카트(8kg), 보충용 흙주머니(4kg), 물통(3kg), 비옷(1kg), 비커버(1kg), 골프백(약 20kg) 등 경기보조원 1명이 끌고 다니는 무게는 총 55~60kg 정도로 나타났다. 이들은 입사 후 경기보조업무 과정에서 72%가 재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72%가 타구 사고였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77%가 자비로 치료했으며, 내장객이 치료해주는 경우가 18%, 회사에서 치료하는 경우는 5%에 그쳤다.

이혜순 여성노조 사무처장은 “한 때는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 방안을 검토하더니 뾰족한 결론 없이 지금은 쏙 들어간 상태”라며 “하지만 특수고용직에 있어 산재보험 적용은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단계 하도급, 산재은폐는 기본?

대다수 비정규노동자가 일하는 건설업에서의 산업재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건설업 사망재해자는 779명(27.6%)으로 업종별로 따질 때 가장 많았으며 제조업이 672명(23.8%)으로 그 뒤를 이었다. 건설업 사망자의 52.4%(408명)는 추락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재해율 뒤바뀌었다. 제조업이 3만7,579명(42%)으로 가장 많고, 건설업이 1만8,896명(21%)으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제조업과 건설업 총 종사자수 비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재해자수가 사망재해자수에 비례해서 나타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에서는 재해율이 더 적은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건설현장 산재처리 현황

건설산업연맹-노동건강연대(2003)
산재경험자 전체 100.0(167)
산재보험 보상 20.4
공상처리 46.7
민사해결 0
보상받지 못함 28.7

( )안은 설문응답자 수.

건설업의 경우는 특히 산재 은폐율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다. 건설산업연맹에 따르면 2003년 건설현장 산업안전보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산재를 당한 노동자 중 산재보상을 받은 경우가 20.4%에 머물렀으며, 46.7%가 공상처리, 28.7%가 본인치료비부담이라고 응답, 전체 재해발생의 75.4% 은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표2 참조> 노동부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노동부가 2001년 건설사업주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종합건설업체는 24.1%, 전문건설업체는 59.6%가 산재를 은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표3 참조>

산재사고 건수 및 산재 은폐율

구분 종합건설업체 전문건설업체
총 응답업체수 206 86
공상처리를 경험한
업체수 64 16
총 사고건수 772.5 57
총 공상처리건수 186 34
업체당 평균사고건수 3.75 0.66
업체당
평균공상처리건수 0.90 0.40
건수기준 산재 은폐율 24.1% 59.6%

(노동부 연구보고서, 2001)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건설산업연맹은 다단계 하도급을 주범으로 꼽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은 제조업이나 건설업에서의 대표적인 간접고용 구조로, 차별이 고착화돼 있어 산재 대응의 취약성을 더해준다는 지적이다. 건설현장에서는 7~8단계의 불법하도급이 횡행하고 있고 건설현장 일자리는 ‘십장’이나 ‘오야지’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산재발생시 십장과 건설노동자의 인간관계를 이용해 산재은폐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산업연맹에 따르면 건설사업주는 십장이나 오야지에게 <시공참여자 계약서>나 <도급 계약서>를 통해 4주 미만의 산재는 십장이나 오야지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자본의 분리전술, 노동자 건강권 위협

이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원-하청 구조라는 자본의 분리전술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권 차별이 고착화되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또한 비정규직과 비정규직 산재 규모조차 모를 정도로 정부의 통계와 대책이 취약한 것도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높다.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산안부장은 “공사원가에는 산업안전관리비가 책정돼 있고 안전장구를 지급토록 하고 있으나 유수 건설현장에서마저 7~8단계의 하도급이 내려오다 보면 방진마스크조차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원·하청구조 속 이윤배분의 과정에서 안전관리가 실종되고 결국 맨 아래에 있는 건설노동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원·하청 구조에서는 원청이 하청에게, 하청은 십장이나 오야지에게, 그리고 결국은 가장 아래에 있는 건설노동자에게 책임이 떠넘겨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정기 현대차비정규직노조 교선팀장은 “결국 간접고용이 핵심”이라며 “중대재해 발생시 책임은 하청업체가 지고 있는데 하청업체는 재정적 여력도 없는데다 원청에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어떡하든 산재은폐를 하려고 한다”면서, 다단계 하도급이 비정규직 산재 해결의 근본적 방해가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부실한 산재통계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은 산재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며 “비정규직의 산재사고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정진주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도 “산재 공식통계에는 산재보상보험 적용대상자의 요양율과 성별 정도만 잡히는데 고용형태별 통계는 없다”며 “통계상 고용형태별로 어떤 차이가 나는지 밝히고 비정규직을 보건안전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일한 안전보건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현재로선, 비정규직 건강권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와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렵다. 고용불안이 존재하는 속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혜순 여성노조 사무처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결과적으로 차별 문제인데, 악을 쓰면 재계약이 불안해서 재해가 발생해도 대응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고용안정이 우선이 돼야 산재 문제도 해결되기에 상시적 업무일 경우 상시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인정과 산재보상보험법 적용이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는 것.

비정규직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자본의 분리전술 역시 중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사용자는 정규직의 경우 안전교육도 시키고 시설도 갖춰야 하지만 비정규직을 사용해 이 같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때문에 비정규직은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은 원청과 동일한 안전보건시스템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도개선과 정부의 적극적 감시·감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세민 금속산업연맹 산안국장은 “비정규직은 산재보험을 잘 모르고 신청하기도 어렵고 보호받지도 못한다”며 “사업주 확인날인 제도가 없어지고 누구나 산재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선보장 후평가’ 등 근본적 산재보험제도 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오민규 전비연 집행위원장도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해도 현재로선 실효성이 없다”며 “산재보험제도 개혁이 관철되고 정부는 노조와 함께 현장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제기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노동부는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나 아직 뾰족한 답을 찾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안전과 한 관계자는 “현재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산재문제와 관련해 외국사례를 연구하는 등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다”며 “클린사업장을 만들거나 협력업체 지원사업도 비정규직 보호의 그 일환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실은 “최근 산재보험제도 개정안에서 제시한 산재 미인식 노동자를 구제하겠다는 것도 주로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가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이밖에 산재 요양기간 중 계약기간이 다 돼도 해고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