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가 왜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요”

‘두산중공업 산재사망은폐 진상조사단’ 발족…현장조사 등 철저조사키로

지난 5일 부천 두산중공업 위브더스테이트(아파트) 현장(엘리베이터 교체작업, 지하4층)에서 발생한 건설노동자 유용만씨의 사망사건에 대한 산재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산재은폐 의혹을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단’이 26일 출범했다.

이 진상조사단에는 건설산업연맹, 경기중부건설노조, 유족, 단병호 의원실,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양대노총,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이 참여하고 있다.

▲ 진상조사단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진상조사단은 이날 오전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족들은 머리 정수리에 움푹 패인 상처와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있는 유씨를 눈앞에 두고도 ‘외상이 전혀 없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이란 통보를 받았다”며 “일순간에 가장을 잃은, 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사고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호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유용만씨는 머리 정수리 부위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으나 유족들은 외상없는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이란 연락을 받았다.

이날 진상조사단은 다음과 같은 산재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사고발생 6시간 동안 증거은폐 = 지난 5일 오후 6시 전후 사고 발생했으나 경찰에는 밤 12시25분께 신고했고 경찰이 유족과 조사를 나갔을 당시 현장의 핏자국은 이미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회사측이 대책회의를 가진 후 진술조작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사라진 안전모 = 회사측에서 최초 제시한 유용만씨의 안전모에 대해 동료가 유씨의 것이 아니라고 하자 3회에 걸쳐 각기 다른 안전모를 제시한 점도 미심쩍다는 것이다. 동료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당일 유씨와 동료는 각각 자기 이름을 기재한 안전모를 썼으나 회사측에서 제시한 안전모에는 이름이 없었다는 것.

◇엇갈리는 진술 = 최초 사고시간을 처음엔 오후 6시5분으로 했다가 대책회의 후 6시2분으로 맞췄고 최초 목격자도 유씨와 한팀을 이뤄 일했던 김아무개씨라고 했다가 나중에 현아무개 현장기사로 바꿨다는 주장이다.

◇응급구조대와 병원에서의 의혹 = 119가 아닌 사설응급구조대인 129를 부른 점,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것이 병원 최초 기록에서 확인되는데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점도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건설산업연맹은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지적하고 나섰다. 건설산업연맹은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산업안전감독관 집무규정’ 자체가 교통사고나 지병으로 인한 사고의 경우 현장조사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건설현장에선 수많은 산재사고가 은폐되고 많은 사망사고가 교통사고와 지병으로 인한 사고로 은폐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부천노동사무소측은 “집무규정대로 했다”는 주장이다. 회사측의 심근경색으로 인한 신고를 받아 ‘집무규정대로’ 현장조사를 나가지 않았으나 노조와 유족의 요구가 있어 사고 발생 나흘째인 지난 8일 산업안전공단, 유족과 함께 재해조사(현지조사)에 나섰다는 것.

그러나 산업안전공단이 지난 21일 내놓은 재해조사의견서에는 현장관계자 진술내용, 사망자의 위치, 동선, 상해부위 등을 고려했을 때 △낙하물에 의한 재해발생 가능성 △실족해 추락에 의한 재해발생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 엘리베이터교체 작업현장. 낙하물 방지장치 없이 뻥 뚫려 있다. ⓒ 매일노동뉴스

특히 정수리 외상에 대해 “정수리 부분의 무언가에 찍힌 듯 한 상처자국과 등 부위의 선명한 철근자국을 고려할 때 단순히 넘어짐에 의한 사고로 보기에는 그 개연성이 희박하다고 사료됨”이라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사체부검한 결과를 지난 20일 내놨는데,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판단됨”이라고 했지만, “내인성 급사는 안정시보다는 어떠한 자극이 가해졌을 때 비교적 잘 일어난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또 “머리의 정수리 부위의 상처는 쓰러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는지 외력이 가해져 발생했는지 부검소견만으로 밝히기 어려우므로 수사를 통해 확인하기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지만 ‘무엇에 의한’ 심근경색이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 경과

7월5일 오후 6시~6시8분께 사망자 발견
오후 6시20분께 응급구조대 도착. 사망상태 확인
오후 6시35분께 병원 도착. 사망상태 확인. 심폐소생술 시도
오후 6시40분께 가족들 연락받음
오후 9시40분께 가족 도착
7월6일 오전 0시30분께 경찰에 신고 접수
오전 2시20분께 경찰과 유족 현장 조사
오전 8시30분께 노동부에 신고 접수(노동부측 주장)
의사 소견이 사인미상이기에 경찰 부검 의뢰
오전 8시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
7월7일 오후 2시 노조가 노동부에 연락. 노동부 사고 알고 있다고 함.
오후 5시30분께 현장조사 재차 요구. 노동부 거부. 노조 산재은폐 신고 접수
7월8일 오전 9시30분께 노조에서 현장조사 재차 요구
오후 2시30분께 노동부, 산업안전공단, 유족 현장조사 실시
7월11일 노조, 감사원·청와대에 노동부 직무유기 고발
7월20일 국과수 결과 나옴
7월21일 산업안전공단 재해조사 의견서 받음

이에 따라 진상조사단은 사망 이후 과정상 나타난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앞으로 2주일간 △현장조사를 포함해 조사과정에 대한 진상조사와 전문가 직접 사고조사 △사고조사에 대한 노동부, 경찰수사과정에 대한 공동조사 및 사고조사과정에 대한 공개 요구 △사라진 안전모, 사고현장의 혈흔 채취를 포함한 정밀조사 요구 △산재은폐와 관련된 제도개선 등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유가족 유종만씨(사망자 동생)
“진실만 밝혀주세요”

ⓒ 매일노동뉴스

“형님이 사망한 지난 5일 저녁 부천성가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형님이 갑자기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하나 가망이 없다는 겁니다. 또 외상은 전혀 없다는 짤막한 전언이었어요.”

사망자 유용만씨의 동생 종만(41·사진)씨.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병원에 가서 알았다고 한다.

“병원 말대로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돌아가신 형님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병원에 같이 간 조카가 ‘아빠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요’ 그러는 겁니다. 전화상으로 외상이 전혀 없다고 그랬는데요. 형님 정수리에 상처가 있고 침상이 핏자국으로 흥건하더군요.”

이때부터 종만씨는 형이 단순히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 같지 않았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쪽에 이 상처는 왜 난 거냐고 납득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로부터는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단다.

“틀림없이 위에서 떨어진 물체에 맞거나 누가 가격하지 않은 이상 그 위치에 상처가 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업안전공단도 머리의 상처는 낙하물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 않고 있잖아요.”

종만씨 뿐만 아니라 유족 모두 진실을 알고 싶다. 내 아들, 내 남편, 내 형님, 내 아빠…. 어떻게 죽어간 것인지. 누군가에 의해 사인이 은폐됐다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믿는단다.

“진실만 밝혀주세요. 힘들고 밑바닥 인생의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형님이 살아온다면야 더 이상 바랄나위 없지만 그럴 순 없는 거잖아요. 이런 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건설현장 산재은폐 실태와 사례>
“건설현장 산재은폐 80% 이르러”
건설현장 치운 후 신고하거나 교통사고로 위장 등 은폐 심각
건설현장에서 산재은폐는 70~80%에 이르는 등 심각한 수준이란 주장이다.

건설산업연맹은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1일 안전관리자단체에서 주관한 세미나에서 안전관리자들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A건설사의 경우 115건의 산재가 발생했는데 50명만 산재로 보고하고 56%가 은폐됐음이 구체적으로 폭로된 바 있다”며 “2001년 노동부가 건설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종합건설업체는 24.1%, 전문건설업체는 59.6%가 산재를 은폐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또 건설산업연맹이 2003년 조사한 결과 산재를 당한 노동자 중 산재보상은 20.4%에 머물고 46.7%가 공상, 28.7% 본인 치료비 부담 등 75.4%가 은폐됐다고 밝혔다. 또한 2002년 노동부 산재은폐 적발건수 1,033건 중 건설현장이 226건(20%)을 차지하는 것으로, 2001년 국정감사에선 산재은폐 적발건수 400여건 중 사망재해가 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건설산업연맹에 따르면 2003년 부산 포스코 건설현장에서 3명의 산재사망자가 발생해 노조가 바로 신고했으나 6시간 동안 노조는 물론 경찰, 언론사까지 현장출입을 통제당한 뒤 나중에 깨끗이 청소된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도 포스코 건설은 노동부의 벌금형에 대한 산재사고 무혐의를 주장하며 재판을 벌이고 있다는 것.

또 올해 들어 지난 6월 여수 GS칼텍스 현장에선 GS건설이 무재해 1만시간 달성을 신청하고 무재해 인증을 수여받다가 산재은폐 20여건이 신고돼 무재해 인증을 취소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밖에도 건설현장에선 임대장비와 관련된 사고의 경우 산재사고가 아닌 교통재해로 조작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주장. 실제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선 지난해 1월 지게차 운반바퀴에 깔려 사망한 사고를 교통사고로 둔갑, 지게차 운전자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구속까지 됐다가, 사고조사 과정에서 산재로 밝혀진 사례가 있다.

또 이번에 발생한 부천 위브더스테이트 현장에선 콘소시엄 시공 중인 두산산업개발의 경우 지난 1월 덤프로 인한 매몰사고를 교통사고로 신고했으나 조사과정에서 산재로 밝혀진 사례도 있다.

연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