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산재발생률이 낮은 이유

[일다 2005-08-03 22:57]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

일을 통해 생계를 영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은 교육받고 일자리를 얻기 위한 기본조건일 뿐 아니라, 일자리를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일이다.

산업재해 기준 ‘생산직 남성노동자’ 중심

여성의 산업재해 발생률과 사망률은 남성에 비하면 극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고, 여성이 남성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한다거나 신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판단한다면 왜곡된 생각이다. 오히려 산재나 직업병을 ‘남성노동자’의 문제로 간주하고,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대해선 ‘임신’과 ‘출산’만을 연관 짓는 기존 논의와 정책들이 역설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의 불건강한 현실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작업장에서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산재보험은 업무와 관련된 부상, 질병, 사망에 대한 고용주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사업주가 산재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급여 및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표 1>을 보면, 1982년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산업재해비율은 12.2%에서 14.3%로 거의 변화가 없다.

이는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인 부상이나 질병 목록이 남성노동자들 중심의 굴뚝산업에서 나타나는 재해나 신체장애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 통계에서 집계하고 있는 산업재해통계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업장이나,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직종의 산업재해 종류는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주요하게 나타나는 재해는 공식 자료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직업병

남성과 다른 일과 노동조건으로 인해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질병이나 직업병은 주로 정맥류, 스트레스, 경견완장애, 실내공기오염, 임신출산관련 질병, 전이성 질환 등이다. 특히 단순반복업무를 주로 하는 사무직의 경우, 컴퓨터 단말기를 이용한 작업과 과다한 업무량, 시간적인 압박으로 인해 경견완장애 등 만성적인 직업병에 노출되기 쉽다.

‘골병’이라 부르는 근골격계 직업병 역시 주로 여성에게 나타난다. 특정한 신체 부위의 반복 작업과,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자세, 강한 노동강도와 과도한 힘, 불충분한 휴식, 진동 등이 원인이 되어 목,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허리, 다리 등 주로 관절 부위를 중심으로 근육과 혈관, 신경 등에 미세한 손상이 생겨 통증과 감각 이상을 호소하게 된다. 주로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급식조리원, 청소용역, 조립라인, 경락/스포츠 마사지 등 직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골병은 기본적으로 너무 많이, 힘들게 일을 해서 생기는 병이다. 완치될 때까지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저임금의 비정규직 여성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파도 일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일을 하는 이상은 몸이 호전되기 힘들다.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신체 마비증세까지 동반하는 퇴행성 신체증상들로 고통 받게 된다.

일과의 관련성 입증하기 어려워

이처럼 여성들의 질병은 단기간에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장기간 누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에서, 어떤 회사에서 발병한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강제출국 당했던 타이 여성노동자들의 유기용제 중독이나, 사무직 노동자의 VDT 증후군은 직업병으로 판정돼 산재보험의 보장을 받게 되었지만 아직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따라서 일과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힘든 직업병들도 많다.

많은 경우 여성들의 질병은 주로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고용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노동이동이 빈번해진 1990년대 이후 자신이 하는 일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하기 힘들어 치료나 최소한의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경제위기 이후 ‘꾀병을 부린다’ 혹은 ‘만성질환’ 등으로 판정해서, 산재보험의 적용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치료기간이 매우 짧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노동능력을 판단하고,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는가.

보건복지부의 <2005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에 따르면 전통적인 생산직 중심의 직업병과 희귀난치성 질환이 아닌 경우, 산재신청 노동자는 ‘노동능력이 있는 자’로 분류돼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배제된다. 어떤 상태를 ‘건강하다’고 평가하고 판단하는가 하는 사회적 기준이 ‘장애’판정을 준거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여성노동자라 할지라도 복지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일단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비정규직이나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여성의 경우 보험료를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지역의료보험의 제한적 혜택을 받거나, 실업급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노동시장의 낮은 지위와 연동된 실업급여 체계로는 실업상태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지속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할수록 건강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초래되고, ‘불건강’ 상태는 다시 공식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된다.

노조없는 영세사업장은 사각지대

경제위기 이후 고용불안정과 저임금, 특히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및 영세사업장 집중현상은 여성들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자의 7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정과 더불어 장시간 중노동으로 인한 ‘건강악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이들의 다수가 산업재해 현황파악조차 어려운 영세, 중소사업장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이자 예방수단인 정기적인 작업환경 지원제도의 도움도 거의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나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조차 가장 많이 실시되고 있는 건강권 보장 제도가 ‘건강검진’이니, 작업환경 및 산재관련 제도(정기적인 작업환경 측정, 산재관련 안전장비 지급, 안전교육 실시 등)의 실시 비율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한국여성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건강보험을 제외한 산재관련 제도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이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 및 영세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퇴직금, 연월차 휴가, 연장 야간근로수당 등 조항이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산 및 출산과 관련된 모성보호나 육아휴직, 병가 등도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이처럼 기업의 규모 및 노동조합의 유무에 따라 복지제도의 선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현실은 상당수 여성노동자들을 제도적 혜택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일하는 빈민’층이 되는 비정규직 기혼여성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건강을 보호 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복지의 수혜 역시 거의 받지 못하는 노동시장 내 지위 때문에, 질병이나 재해 정도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점차 주변화되거나 퇴출 당한다. 여성의 경제활동기간이 짧아질수록 노후 연금수혜혜택도 축소시키게 되므로, 결국 여성의 경제적 빈곤이 가중된다. 질병이나 산재로 인해 취약해진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뒤 가정으로 복귀해도, 여전히 다른 가족구성원들에게 보살핌 노동을 제공하는 상황에 처하기 일쑤다.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실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정규직 기혼여성의 경험은 저숙련, 저학력, 고연령 여성이 ‘일하는 빈민’(working poor)으로서 노동시장에 불완전하게 포섭되는 있는 양극화 현상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여성노동자의 건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저임금의 미숙련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일하는 여성이 전업주부보다 더 건강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위치해있는 “문제적인” 여성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여성노동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5%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더 이상 개인적인 것으로, 기구한 여성의 ‘팔자’로 치부할 수는 없다.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지위, 가족 내 성별관계에서 비롯되는 여성의 불건강 현실은 ‘건강한 삶을 향유할 권리’로 변화되어야 한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개선 급선무

건강한 삶을 향유할 권리를 누리려면, 적절한 휴식과 여가를 통해 미리 예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직장과 가정에서의 적절한 휴식과 여가는 여성에게 전가되는 이중, 삼중의 부담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때에야 가능하다. 가족 내 성별관계의 변화 없이 여성의 문제를 노동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다.

노동자의 건강관리는 직장에서의 예방대책, 질병발생 이후 보상문제, 건강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등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특히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은 여성의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하향 이동하거나,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시점에서부터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여성들에게 보장되는 노동조건과 의료보장 혜택의 수준이 열악하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을 때 회복할 정도의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취약한 여성노동자의 불건강이 곧 실직과 빈곤, 생계 난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갖가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으로 최소한 동일한 작업장에서 동등한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동조합의 운동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의 고용형태와 산업, 직종, 기업규모가 평생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해버리는 사회에서, 여성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건강한 삶을 보장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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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