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학교 천정에 석면가루 ‘덕지덕지’

■ 석면공해 당신을 노린다 – (상) 노출실태
최근 일본에서 작업중 석면을 접촉하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이 숨진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면서 일본 열도가 석면 공포에 휩싸여 있다. 석면 공해가 직업적 노출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 새삼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일본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강건너 불’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일본에서 다시 석면 공해가 부각된 것을 계기로, 직업적으로 석면을 접촉하지 않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환경 속에서의 석면 노출 실태와 대응 방안을 두 차례로 나눠 점검해 본다. 편집자

▲ 석면이 함유된 천정마감재인 택스가 마구 부서져 바닥에 흩어져 있는 여의도 한 대형빌딩 지하상가 철거 현장.

천정 자재 ‘택스’ 백섬유 5%함유…낡아 부서질때 석면가루 흩뿌려
치명적 발암물질 위험성 불구 작년이후에야 생산 중단

석면 섬유는 먼지 상태로 공기 중에 떠다니다 극미량만 호흡을 통해 폐 속에 들어가도 20여년 뒤 폐암으로 나타날 수 있는 치명적인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석면의 특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서 석면의 위협에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무실이나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부분의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석면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지금 사무실에 있다면 한 번 머리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 보라. 가로 60㎝·세로 30㎝ 정도의 흰색 판자들로 덮여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텍스’라고 불리는 자재다. 국내의 대표적 건축자재업체 두 곳이 지난해까지 생산한 텍스에는 5% 안팎의 백석면이 함유돼 있다.

 한 건축자재업체 임원은 “업계에서는 해마다 1800만~2000만㎡의 텍스를 생산해 왔으나, 석면의 위험성을 더 외면할 수 없어 지난해 이후 생산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 설명을 뒤집으면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30평짜리 사무실이나 교실, 창고 등의 천장 18만~20만개가 석면 함유 자재로 덮인 셈이다. 석면 전문가인 백남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천정 텍스에서 항상 석면 먼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지만, 텍스가 오래 돼 낡았거나 충격을 받을 경우 조금씩 부서지면서 석면 먼지를 흩뿌릴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자재 가운데 석면이 함유돼 있는 또다른 대표적 자재는 농어촌 주택이나 창고 지붕에 많이 쓰인 슬레이트와, 칸막이벽 등에 흔히 사용된 밤라이트다. 이들 제품에는 10% 안팎의 석면이 섞여 있다. 이들 자재는 텍스보다 1년 가량 앞서 생산이 중단됐지만, 마지막 생산년도인 2003년에만도 730만장이나 생산·판매됐다. 이처럼 석면 함유 자재의 사용이 일반화돼 있지만 건물을 철거할 때 석면의 위험성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가 2003년 7월부터 석면 함유 자재가 쓰인 구조물을 해체하기에 앞서 노동사무소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놓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온 석면 함유 건물 철거허가 신청은 전국에서 단 8건에 불과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6월말까지 6건에 그쳤다. 이처럼 노동부가 단속의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하루에 수십만 인파가 지나다니는 도심의 대형 건물 철거현장에서까지 이 규정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지난 4일 12시30분께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대형빌딩 지하상가의 리모델링을 위한 작업 현장. 인부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떠난 지하1층은 이미 상당 부분 철거가 진행된 상태였다. 천정에 붙어 있던 텍스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바닥에 깔려 있었지만, 작업장은 밀폐되지 않았고 공사장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 작은 바리케이드 하나만 놓여 있었다. 최영준 남부지방노동사무소 산업안전과 감독관은 “업체에서 건물에 석면 함유 자재가 없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했으나 표본채취 과정 등을 신뢰할 수 없어 직접 표본을 채취해 전문기관에 분석을 맡긴 상태”라면서도 “그렇다고 철거 작업을 중지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철거과정에서 나온 석면 함유 자재는 운송 도중에 날아가기 쉬운 가루 상태로 변한 것들까지도 지정폐기물로 처리되지 않고 다른 건설폐기물과 섞여 수집·운반업체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이는 환경부도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해마다 수많은 건물 철거작업이 벌어지고 있지만 환경부가 펴낸 <지정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을 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근 3년간 폐석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된 곳은 용산구와 동작구 등 2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석면이 함유된 마감재가 뿜칠돼 있는 여의도 한 대형빌딩 지하주차장의 천정. 한국석면환경협회 제공.

차량 브레이크도 ‘골칫덩이’
제동 걸때 먼지로 떠돌다 사람들 폐속 파고들어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태령에 있는 건설폐기물 야적장에서는 트럭들이 쏟아놓은 건설폐기물들을 굴삭기가 잘게 부수고 있었다. 건설폐기물 수집·운반업체인 남경그린의 김영남 관리부장은 “매립지에서 부피가 큰 건설폐기물은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석면 함유 폐기물들을 지정폐기물용 차량이 아니라 일반 트럭으로 운반할 때, 또 야적장에서 다시 부술 때 날리는 석면 먼지는 인근 주민은 물론 도로변 시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이 석면공해에 노출될 수 있는 또다른 경로는 차량의 브레이크다. 지금 굴러다니는 화물차, 버스 등의 대형차량은 물론 전동차 가운데 석면 함유 브레이크가 장착된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석면환경협회는 최근 철도청의 협조를 받아 용산역에서 채취한 전동차 브레이크 라이닝의 표본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분석해 석면을 검출했다. 신현욱 석면환경협회 이사장은 “전동차 브레이크에 함유된 석면은 전동차가 승강장에서 제동을 할 때 먼지가 돼 언제든 사람들의 폐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면서 “무방비 상태인 우리나라 석면 공해 대응실태를 생각하면 곧 일본을 능가하는 석면 공해 희생자들이 속출할 것 같아 아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