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갈등으로 인한 산재도 인정해야
지난 5월10일, 모 업체에서 근무하던 노동조합원 13명이 회사의 조합원에 대한 감시, 차별, 통제로 인하여 ‘적응장애’가 발생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동 적응장애는 노사갈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개별적 근로관계에서 기인한 업무상 재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조합원 전원에 대하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노사갈등에서 기인한 스트레스는 과연 그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와 같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본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 기존에 유지해 오던 결정례 및 법원의 판례에도 배치되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는 결정이었다고 판단한다.
본 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역시 적응장애가 조합원 개인의 기질적 사유가 아닌 회사와의 갈등에 기인하여 발병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갈등은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그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업무기인성’의 범주를 너무도 협소하게 해석한 것으로서, 기본적인 노동법리에도 어긋나는 주장이다.
노동법상 사용자는 근로에 대한 대가인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 이외에도,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하여 노동자가 피해를 당했을 경우에, 그 궁극적인 책임은 사용자가 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접적인 업무와 관계가 없더라도, 사용자는 ‘회사 차원의 운동경기, 야유회, 등산대회, 회식 도중에 발생하는 재해(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37조)’, ‘휴게시간 도중에 발생하는 재해(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35조의2)’, ‘출퇴근이나 휴게시간 중에 시설물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재해(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5조)’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
따라서 노사갈등의 경우에도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서 발생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그 직접적인 당사자 또는 가해자가 된다는 측면에서, 그 업무기인성이 부인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은 본 건에 대해 직장 내에서 적응장애를 야기한 스트레스가 실제로 존재 했는가는 간과한 채, 엉뚱하게도 이와 같은 스트레스가 왜 야기되었는가를 문제 삼았다. 법리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기인성에 대한 판단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스트레스 요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는 단순히 참고 되어야 할 사항이다.
일례로, 과거에 근로복지공단이 승인한 바 있는 ‘사업장내 집단 따돌림 사건’들을 살펴보면, 그 쟁점은 실제로 집단 따돌림이 있었는지 여부일 뿐, 그 집단 따돌림이 어떤 원인으로 발생했는지는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집단 따돌림은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업무와는 별개의 일인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직장 내에서 집단 따돌림이 존재했고 이로 인해 노동자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앞서 살펴본 법적 논거에 의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것이다(2000.07.29 재결 2000 제664호, 2000.06.07 서울행법 판결 99구 21543).
같은 이유로, 2003년 승인된 ‘청구성심병원사건’이나 2005년 승인된 ‘성람재단사건’ 모두 그 스트레스 요인이 모두 노사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장내에서 실제로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그 발생원인을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이다.
결국, 본 건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그릇된 판단은 잘못된 법리의 적용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기존의 판례 및 결정례에도 배치되는 문제가 있는 결정이다.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활동은 직장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는 장이자 살맛나는 직장을 가꾸기 위한 통로이다. 이에, 우리 헌법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것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부당한 침해는 단호히 배격되고 엄정히 처벌되어야 할 문제이다.
노사갈등의 경우, 대부분이 사용자의 부당한 침해에서 비롯된다는 측면에서, 이로 인한 산업재해보상은 단순히 피해에 대한 보상의 문제가 아닌, 노동조합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 정신의 구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노사갈등 내지 노조탄압으로 야기된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존 기준보다 폭 넓게 인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그 재발 방지를 도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본 건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그 법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와 같은 헌법 정신에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신중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vic9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