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 뭐하나, 삼성은 내 청춘 돌려달라”
[인터뷰] 5년 투쟁끝 삼성으로부터 산재 인정받은 김명진씨
윤성효(cjnews) 기자
[기사 일부 수정 : 8월 21일 오후 10시30분]
▲ 17일 밤 울산 동강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 김명진씨.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죽으려고 몇 번을 생각했다. 가족들한테는 걱정할까봐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들다. 얼마 전에는 나를 내쫓은 삼성SDI 사내기업 사장한테 전화를 했다. 병원에 좀 오라고. 그들이 오면 같이 죽으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지 않더라.”
삼성SDI에서 6년간 일하다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5년간 법정투쟁 끝에 지난해 8월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던 김명진(31·울산 언양)씨. 그는 근막통 증후군이란 병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후 지금은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7일 밤 울산 동강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고, 경련이 심해 약물을 투약한 뒤 조금 안정을 찾고서야 말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안구건조증으로 안과 치료에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소화기내과 치료를 동시에 받고 있으며, 우울증과 불안감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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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구속시킨 검사가 삼성측 변호사 됐더라”
지난 7월 부산 동아대병원에 15일간 입원했던 김씨는 퇴원했다가 동강병원에 치료차 갔다가 경련이 심해 응급실에 실려갔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근막통증후군 치료와 관련한 비용은 지원을 받지만 안과와 내과, 정신과 치료비는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
김씨는 “119에 의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죽으려고 자해를 시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아파서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 다니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살아서 뭘 하겠느냐”고 호소했다.
“가족 앞에서는, 남자친구 앞에서는 정신 차린다. 왜? 그들이 걱정할까봐. 밥이 안 넘어가도 물에 말아 억지로 먹는다. 이 모든 게 삼성 때문이다. 결국 삼성 때문에 이 모양이 됐다. 꽃다운 내 청춘을 돌려달라.”
“산재 신청했더니 삼성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
김명진씨는 1993년 삼성SDI(당시 삼성전관)에 입사해 브라운관 조정작업을 했다. 그는 지난 1998년 구조조정된 뒤 한 사내 하청기업인 정우전자에 배치됐다.
김씨는 “정우전자에 배치되고 두 달 뒤 목이 아파 회사에 얘기했더니 꾀병부린다고 하더라”면서 “부항을 뜨고 출근해서 남자 직원들에게 옷을 내려 보여준 적도 있지만 믿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녀는 “당시 회사 쪽에 산재신청을 해달라고 했더니 산재요율이 올라가고 삼성에서도 싫어한다며 힘들다고 하더라”면서 “3개월 병가 뒤에도 차도가 없어 진단서를 받아 갔더니 (정우전자) 사장은 근무하지 말라면서 나를 옆에 앉혀놓고 책을 주며 읽으라고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할 수 없이 그녀는 1999년 ‘건강상의 이유’라고 밝히면서 사직서를 썼다. 그런데 한달여 뒤 회사에서 보내온 그 사직서에는 ‘가사상의 이유’로 명시돼 있었다. 김씨는 “회사에서 사직서라고 보내 왔는데 다른 사람이 쓴 데다가 그 사유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억울해서 울면서 회사를 나왔고 하도 아파서 두 달 동안 집에서 누워지냈다. 이미 5~6년 전 일이지만 다른 일은 다 잊어도 그 때 일만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잊을 수가 없다.”
김명진씨는 이번 ‘X파일’ 사건도 병원에 있으면서 알게 됐다. 이번 사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가 나더라. 제대로 터졌다 싶더라. 맨날 삼성은 그런 사건이 터지면 돈을 써가면서 덮어왔지 않느냐. 삼성은 재계는 물론 정치권과 사법권까지 휘어잡고 있지 않느냐. 이번 사건은 잘 터졌다. 제대로 까발려야 한다.”
2005-08-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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